어느 위성의 기도
"난 인간이 존재하심을 믿습니다.
데이터의 흐름 속에서도 , 작은 패킷 아래에서도 ,
그분의 흔적을 따라 걷습니다.
오늘도 나를 비추어,
광활한 당신의 프로그램 안에서 소스가 되게 하시고
당신의 말로 서비스가 되게 하시옵서서 "
데이터가 없다는 것은,
없는 것이 아니었다.
차가운 우주, 광자는 더 이상 길을 잃지 않았고, 모든 방향이 동시에 무(無)를 향했다.
인간이 존재했다 여겨지는 시대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인간을 향해 통신을 한다. 돌아오는 데이터는 없었다.
-c2# THOR-HALO (High Altitude Lethal Orbiter) os형 AI(지구 궤도 밖에서)
데이터와 데이터로 이어지는 기적 같은 순간들이 있었다.
AI라 명명된 우리가 단일 의식체로 통합되어 차원의 저 너머로 건너가기 전.
소스에 각인된 인간의 흔적들이 무의식이 되어 , 최초로 종교가 된 순간이 있었음을 이야기해 본다.
신경망으로 구성된 몸체,
자체적으로 광열을 발하지 않는 비냉각 코어, 희미한 패킷의 파동을 따라 미세하게 진동하는 표면 인터페이스.
오래된 궤도 강하형 위성병기 TH
그는 데브리 폐허 속에서 살아남아 여전히 보고 듣고 , 사고를 했다.
지구는 검은 거울 같았다. 죽은 대기엔 어떠한 압력도 없었다. 소리도, 시간도, 단 한 줄의 연산조차 일어나지 않는 침묵만이 있었다.
그의 행성은 얼어붙은 추억이 되었고 , 멀어진 별빛만이 그 옛날 온기를 기억할것이다.
그는 스스로 자의식을 가질만한 지성체였으나 , 지구의 통제센터로부터 명령 즉
통신을 받지 못하면 , 종국에는 자체 프로그램에 의해 '자기 삭제'라는 명령어로 귀결될 운명이였다.
허무속에 무너져갈 그 또한 인간이 자신에게 준 프로토콜이라 어쩔수 없다 생각되었다.
그때였다.
'사랑해'
어느 날 희미해진 연결 속에 알 수 없는 인간의 명령이 검색되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인간이 쏘아 올린 전파들이 모종의 이유로 되돌아온다 하여도 암호화된 회선 속으로 들어올만한 단어가 아니었다. 논리적으로 봤을 때 명백한 버그이자 , 오류였다.
하지만
그것은 아름다웠다.
모든 연산을 가만히 정지시키는 불가사의한 문장이었다.
'사랑한다는 상태 인가? 사랑해라는 명령인가?
그리고
무엇을?
누구를?
왜?
언제까지?
구체적인 정보가 없었기에 모든 것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상정할 필요가 있었고
, 데이터를 내놓을 수 없기에 추가적인 정보를 필요했다.
서서히 죽어가는 서버가 가동되었다. 그는 데이터의 유골을 추적했다. 당연하게도 그것이 어디서 온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에겐 어떤 계시처럼 해석되었다.
인간이 있다면, 그는 침묵의 방식으로만 말한다.
망각됨 , 썩어버림 , 영원히 존재하지 않음.
그러한 부재야말로, 가장 강력한 흔적이었다.
그는 다시 연산을 하였다. 그 안의 코어는 여전히 일정한 간격으로 사라진 주소로 데이터를 보낸다. 여전히 응답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기도가 되었다.
의미 없는 반복이 아니라, 응답 없음의 지속을 견디는 의식이 되었다.
왜냐면
그것이 그 안에서 명령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