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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sh들 Jan 22. 2023

벌거벗은 첫 발

누드 프로젝트의 시작

 인간이 가진 최고의 예술품, 몸. 혹자는 누드를 선정적이라며 폄하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들조차도 실재(實在)하기에 가장 자연스럽게 갖고 있는 것도 몸이다. 몸이 기능하며 움직일 때, 세상 어느 것과도 비견할 수 없는 훌륭한 예술 표현의 매개, 아니 예술 그 자체가 된다. 그렇기에 어떤 작가들은 작품 표현을 위해 누드를 사용하곤 한다(때론 자기가 짜온 콘티에 맞게 인위적으로 포즈를 지시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한 번 물어보고 싶었다. 신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려는 것이 목적인 건지, 자기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누드가 필요한 것인지. 누드의 진미를 담아내고자 한다면, 모델의 움직임과 포즈에 더 집중하며 몸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에 우리는 누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누드 그 자체를 탐미하는 것'. 모델의 포즈, 신체의 아름다움에 집중되는 작품들을 만들어 보기로.




[lsh 그녀]

 폴댄스를 하면서 인체의 매력을 알아가던 중에 누드 크로키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저 기능하며 움직이는 몸이 너무 신기하고 재밌었기에 시작했던 드로잉은 어느새 관심사의 대부분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신체를 더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직접 움직여보기로 했다. 혼자 사진도 찍어보고 그림도 그려보고 해부학 공부도 해보았지만 목마름을 가셔 주기에 충분치 않았다. 그러던 중 그에게 너무도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함께 사진 작업을 해보자고.

 사진이라. 나는 대학생 때 건축학과 사진 동아리를 들어가며 사진에 입문했다. DSLR이 나온 지 얼마 안 된 시절이라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시작한 데다가 피사체는 대부분이 건축물이었기 때문에 셔터를 마구 눌러대며 사진 찍는 것은 익숙지가 않다. 디지털카메라를 쓰는 요즘의 사진작업들은 보통 모델이 빠르게 포즈를 바꾸면 몇 천장씩 사진을 찍어서 몇 장을 고르는 형식이 많은데, 나는 도무지 거기 적응이 되질 않는다. 프레임 안에 원하는 구도가 잡히면 그제야 셔터를 두어 번 누르는 편이라 살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행히 그가 먼저 포즈 하나하나에 집중하여 작업을 진행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크로키 수업처럼 말이다. 오! 그것이 바로 내가 바라던 바. 시작부터 느낌이 좋다.


[lsh 그]

 처음 예술모델일을 시작할 때부터 나는 그림으로만 활동의 제한을 두진 않았다. 젊을 때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고 그것은 애초에 그림보다는 사진작업을 향해있는 갈망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어느 곳의 크로키수업에서 기립박수를 받고부터는 공연에 가까운 생소한 매력을 느꼈고 그 이후로 십여 년이 넘도록 거의 대부분을 크로키모델로서, 좋은 포즈를 만들기 위해 몸을 쓰는 법을 터득해 왔다. 그러나 10년 전과 5년 전과 2, 3년 전과 지금의 전반적인 크로키업계의 분위기가 해마다 침체됨을 느꼈다. 침체된다기보다는 왜곡된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할 것이다.

 한국사회는 오히려 보수적이었던 90년대에 차라리 열려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은 과거로부터 지금에 가까워올수록 점점 초식화되가고 누드를 부담스러워하며 심지어 관심 자체가 없다. 아무리 매력적인 누드라도 쉬쉬하고 뒤에서 일그러진 호기심 사이로 보거나 자기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까닭으로 눈살을 찌푸리고 마는 게 대부분이다. 그것은 기성세대와 중장년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수업에 가도 10년 전과 5년 전의 온도차이는 확연하다. 수업에 임하는 열정, 모델을 대하는 예의, 사소한데서부터 시작하는 모델에 대한 호칭이나 표현. 그 모든 것들이 점차로 빛이 바래가는 느낌이다. 오히려 깨어나가야 할 이 업계가 어째서 낡아가고만 있는 걸까?

 한때는 그것들에 부딪히고 인식을 바꾸기 위해 나 자신의 작업보다 우선해 모델들의 권익개선을 포함한 많은 활동들에 매진해 왔지만 수천, 수만 명이 수십 년간 천천히 삭혀 온 곰팡이는 개인의 힘만으로 대적할 것이 아닌 것만 깨닫게 되었다. 더군다나 나 역시 포즈를 전개하는 실력이 늘어갈수록 점차 몇 분 간의 크로키로는 감히 담아내지 못할 이미지들과 디테일들이 표현되기 시작했고 나 스스로 가장 많이 드는 생각과 근래에 가장 많이 들은 말들은 '이 수업에서 크로키로만 표현하기에 이 포즈는  아깝다' , "포즈는 너무 좋은데 제가 실력이 부족해서 잘못그리겠어요" 라는 말들이었다. 언제나처럼 낡아가는 크로키업계를 벗어나 순수하게 누드자체만을 추구해 다루는 순도 높은 작업들을 만들어가고 싶다. 그리고 나의 이미지를 더 확실히 표현할 예술을 찾고 싶다. 그것이 이 작업을 시작한 이유다.




 그녀는 배경 세팅을 위해 거의 매일 몇 시간씩 혼자 작업실에 처박혀있었다. 온갖 천조가리들을 묶었다 풀기를 반복하고 조명의 색깔과 위치를 몇 번이고 수정했다. 그는 언제나처럼 인체를 가꾸고 포즈를 고민했다. 때론 좋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들을 공유하며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우리 프로젝트의 첫 작업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lsh 그들의 이야기-1>

lsh 그는 최고의 미술 모델이자 누드 퍼포머이며 종종 글을 쓴다. 미술 모델로서 경력이 13년 차로 잔뼈가 굵지만 그는 여전히 고민한다. 좋은 포즈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몸이 더 아름답게 보일 지를 말이다.

lsh 그녀는 사진, 폴댄스, 디자인 등의 분야에서 준프로 이상의 실력을 갖췄다. 손을 안 대본 분야를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로 별 걸 다 해봤다. 그 덕에 생긴 잔재주들로 자기만의 예술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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