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5학년 아이에게 추천한 책은 위대한 개츠비였다.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해는 물론, 텍스트 이면의 중의적인 의미까지 읽어내야 하는, 어른들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소설이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믿었다. 당시 또래 친구들과 함께 현대문학 주관 독후감 대회에 참여해 단체상(우수상)을 거머쥐었던 아이였다. 당시 초등학생이 소화하기엔 꽤 분량이 많고 깊이 있는 책을 읽으며 심도 있는 토론을 나눴던 기억이 있기에, 이 아이라면 위대한 개츠비도 충분히 읽을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첫 수업, 30분간 정독을 마친 아이에게 소감을 물었다.
평소 읽던 책이랑 좀 다르지? 어땠어?
아이의 대답은 생각보다 강렬했다.
첫 문장부터 충격이었어요. 너무 강렬해요.
첫 문장은 개츠비의 아버지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내용이었다. 그 문장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아이의 마음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30분 동안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썼을 때, 아이는 솔직했다. 돈 걱정 없이 사는 개츠비가 부럽다고 했다. 소설의 도입부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
두 번째 수업 시간, 나는 1920년대 미국의 시대상과 '아메리칸 드림'의 이면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화두를 던졌다.
개츠비는 정말로 '위대한' 걸까?
이 생각을 해보면서 읽으면 더 재밌을 거야.
세 번째 시간부터 아이의 문장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개츠비가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벌었는지, 데이지를 향한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면서부터였다.
"그 단어가 생각이 안 나는데... 개츠비가 데이지한테 하는 행동 있잖아요."
"집착?"
"맞아요! 집착인 것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했어?"
나는 꼬리의 꼬리를 무는 질문으로 아이의 생각이 스스로 확장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완독한 날, 나는 특별히 아이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 중 하나는 개츠비는 정말 데이지를 사랑한 걸까? 아니면 데이지의 배경을 사랑한 걸까? 였다.
아이는, "와, 너무 어렵다..."라며 한참을 고민에 빠졌다. 나는 조용히 힌트를 주었다.
"수업할 때, 답하기 전에 질문에 들어간 단어를 잘 확인해보라고 했던 것 기억 나? 사랑이 뭔지 먼저 정의해봐."
아이는 잠시 후 무언가 깨달은 듯 글을 써 내려갔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사랑하지 않고, 집착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사랑하면 상대방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
그런데 개츠비는 데이지가 싫어하는 행동을 했다. 그리고 집착했다.
그래서 개츠비는 데이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몇 달이 지난 지금도, 초등학생이 정의한 이 '사랑'의 논리가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사랑하기 위해서 소유하고 싶어 하는 이기적인 욕심을 아이는 꿰뚫고 있었다. 아이의 글 속에서 오히려 세상을 배우는 건 나였다.
수업을 마치며 아이에게 물었다. "이 책 어땠어?" 아이는 다시 한 번 내 기대를 뛰어넘는 말을 남겼다.
학원에서 읽은 책 중에서 제일 재밌었어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고민해야 할 것들을 미리 생각해보게 되었거든요.
흔히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허들이 낮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에게 깊이 있는 사고의 근육을 만들어주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수업 전, 어떤 질문을 던져야 아이가 깊게 생각할 수 있는지 매번 치열하게 고민하고 워크북을 만든다. 그리고 아이들을 통해 이런 멋진 문장을 만나는 날, 나는 다시 확신한다.
아이들은 느린 게 아니라, 누구보다 깊게 읽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