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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이라고 말하고 자주라고 생각한다) 주체할 수 없이 마음이 괴로워질 때면 나는 암울했던 옛날을 떠올리곤 한다. 그때의 나는 묵언수행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극도로 말 수가 없었고 그 누구와도 어울리고 싶지가 않았다. 그저 나는 미로의 한 가운데에 남겨진 것만 같았다. 수많은 길을 헤쳐나가기엔 나는 너무 유약했고 무기력했다. 그런 까닭에 내가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기까지, 상대방은 미로를 기꺼이 풀어나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만 했다.
그럼에도 지나가는 시절 가운데, 기꺼이 그런 수고를 해 준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굳이 무리지어 다니지 않았어도 틈이 날 때마다 이야기를 나눴다. 그 이야기들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내가 이 세상에 온전히 존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언제나 수줍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쭈뼛거리며 체육 시간에 홀로 철봉에 기대어있는 내게 다가와 대뜸 친구가 되고싶다고 했다. 나는 누군가와 쉽게 가까워질 수 있는 성향의 인간이 아니었지만 그 뜬금없고 솔직한 고백에 친구가 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내 머릿속 친구라는 이미지의 속박에서 벗어나 우리가 친근한 하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자, 미로는 그저 내가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고 느껴졌다. 그 친구가 내가 만든 미로 위에 수줍게 빨간색으로 직선을 그어놓은 까닭에 우리는 빙빙 돌려 말하지도 않았으며 서로에게 구태여 하지 못할 말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와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다. 어떻게 그녀와 멀어졌는지는 도저히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에게 무엇이 문제였을까? 단지 외로운 인간 둘에게 그 시절은 잠깐 쉬어가는 그늘이었을까? 그렇게 단정을 지어버리기엔 수줍은 그녀의 용기와 나의 진짜 표정, 자연스럽게 시작되는 대화의 흐름 같은 것들이 설명되지 않은 채 부유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모두 진심이었음을 믿으며, 믿고싶다.
이제는 내 미로 속 그녀가 그어놓은 빨간색 선이 희미해져간다. 나는 다시 표정을 숨기고 입을 닫는다. 진심이라는 것을 믿기에 나는 너무 많은 미로를 돌고 돌았다. 미로는 더 복잡해지고 꼬여만간다. 친구가 되고 싶다는 그 군더더기 없는 고백이 문득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