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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 May 28. 2016

스페어 키

6g

[pixabay]

얼마 전부터 우리 가족은 열쇠 하나를 돌려쓰기 시작했다. 10여 년 전, 이곳에 처음 입주했을 때만 해도 여분의 열쇠가 여러 개 있어서 가족 구성원이 하나씩 차지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하나둘 씩 잃어버리더니 결국 하나의 열쇠만이 남은 것이었다.


열쇠 두 개가 남았을 때만 해도 큰 불편이 없었다. 항상 집에 먼저 오는 것은 나와 대학생인 남동생이었고, 일터에서 늦게 돌아오는 엄마는 구태여 열쇠가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열쇠가 하나 남자 불편한 점들이 하나둘 늘어가기 시작했다.


우선, 현관 구석에서 열쇠를 꺼낼 때에는 주변을 먼저 살펴야 했다. 다소 공개되어 있는 집의 구조상 누군가에게 열쇠가 있는 곳을 들켜서는 안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끔씩 지인들을 집에 데려올 때에는 반드시 먼저 달려가 문을 열어야만 했다. 게 중에서는 왜 이렇게 유난이냐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곳이 하나 남은 열쇠의 유일한 비밀 공간이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가족들은 집 안에서 열쇠를 신줏단지 모시듯이 했다. 혹여나 집 안에서 잃어버리면 외출도 마음대로 못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도 그런 적이 있었다. 모두가 밖에 나가야 할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열쇠가 보이지 않았다. 온 가족은 집 안을 이잡듯 뒤집어 놓았고, 결국 약속의 중요도가 가장 낮은 내가 집 안에 남기로 합의를 보았다. 하지만 열쇠는 전혀 뜻밖의 곳에서 발견되었다. 열쇠는 현관 문고리에 그대로 꽂혀있었던 것이다.


열쇠가 하나이기 때문에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열쇠를 그대로 가지고 나왔을 때였다. 하루 만의 외출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 상태로 여행을 떠난다면 얘기가 달라졌다. 집에 남은 가족들은 무심결에 열쇠를 주머니에 넣고 여행을 떠난 나를 비난했고, 결국 나는 여행의 끝을 함께하지 못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열쇠를 잃어버렸을 때, 집의 보안이 허술해진다는 그럴듯한 이유 때문에 가족들이 열쇠를 의식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들은 열쇠에 대한 집착이 심해졌고, 갈등의 십중팔구는 열쇠로부터 시작되었다.


해서, 나는 드디어 큰 결심을 하게 되었다. 가족들에게 스페어 키를 만들자고 한 것이었다. 다들 진작에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집 근처나 행동반경 내에 열쇠를 만들 수 있는 곳이 없어서 아무도 실행에 옮기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가끔 큰 불편을 제외하고는 열쇠를 공유하는 것이 너무도 익숙해졌기 때문에 스페어 키에 대해 언급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언급을 하는 순간, 그 자신이 다녀와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회사에 월차까지 내고, 스페어 키를 만들기로 하였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평일 오전의 햇살은 너무도 따사로웠다. 골목골목을 지나다 보니 옆 동네 철물점 앞에 다다랐다. 가끔 지나갈 때면 닫혀있는 모습만 보았는데 금방이라도 임대를 내놓을 것 같이 오래된 철물점이 이렇게나 활짝 열려있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다. 하루에 몇 명이나 방문할까 싶은 그곳을 들어서서 손바닥만 한 TV를 보고 있던 철물점 사장님께 말했다.


열쇠를 복사하고 싶은데요.


철물점 사장님은 말없이 손을 내밀었고, 나는 하나뿐인 우리 집 열쇠를 타인에게 건넸다. 사장님은 여러 종류의 열쇠 꾸러미를 찬찬히 훑어보더니 그중에 하나를 꺼내 열쇠를 파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보는 광경에 신기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사장님은 열쇠 두 개를 건넸다.


삼천 원.


삼천 원만 내면 이렇게 불편할 일도 없었을 텐데, 진작 올걸 그랬다는 생각도 잠시. 부푼 기대감을 안고 현관 문고리에 열쇠를 밀어 넣었을 때 나는 밀려오는 실망을 감출 길이 없었다. 열쇠는 구멍 안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왔던 길을 돌아 다시 옆 동네에 있는 철물점으로 갔다.


이거, 열쇠가 안 드는데요.


사장님은 다시 말없이 열쇠를 가져가더니 아까와는 조금 다른 꾸러미에서 열쇠 하나를 꺼내 다시 열쇠를 파기 시작했다. 나는 아까와는 달리, 약간의 불신을 가지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내가 지갑을 꺼내자 사장님은 그냥 가라는 듯이 손 사래를 쳤다.


이번에도 안되면 나도 별 수 없어. 이 열쇠는 너무 오래된 모델이라 팔 만한 열쇠가 없어. 아마 다른 데를 가도 마찬가지일 거야.


철물점 사장님의 말이 맞았다. 열쇠는 열리지 않았고, 덕분에 나는 열리지 않는 두 개의 스페어 키만 얻게 되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나는 하나뿐인 오리지널로 문을 열었다. 후다닥 들어와 냉수를 꺼내 마시고 나서야 좀 살 것 같았다. 땡볕 아래 소득 없이 같은 곳을 두 번이나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소모가 컸다. 


그날 밤, 가족들은 긴 대책 회의 끝에 번호 키를 설치하기로 했다. 번호 키는 최후의 보루였다. TV에서도 보안 문제에 대해 말이 많았을 때였고, 중증 의심병 환자였던 우리 가족에게 6자리 비밀번호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열 수 있는 열려라 참깨 같은 주문이었다.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한 번 마음먹은 일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나는 당장 다음 주에 다시 월차를 쓰기로 했다.


평온한 나날이 얼마쯤 흘렀다. 번호 키에 대한 걱정도 점차 사라지고, 어느덧 빨리 이 불편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나는 주머니 속에서 이 세상 어느 집의 문도 열지 못하는 스페어 키를 만지작거리며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날씨는 좋았다. 번호 키를 달아주기로 한 기사님도 점심시간 무렵에 오시기로 되어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번호 키를 뭘로 정할까에 대한 고민을 했다. 나는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려있는 우리 집 오리지널 열쇠를 바라보았다.


더 이상 너도 쓸모가 없겠지.


인터넷에 찾아보니 번호 키는 보통 생년월일로 많이 설정한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나 남동생이나 나의 생년월일을 아는 사람이 만약에라도 눌러서 들어온다면 참 곤란한 일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표시되지 않은 흰 달력을 바라보다가 탁자에 놓인 종이에 까만 펜으로 가만히 숫자를 적어보았다. 590625. 무심코 써 내려간 숫자는 아빠의 생일이었다.


이때였다. 잠잠했던 현관에서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기사님이 벌써 오셨나? 현관으로 향하는 내 귀에 익숙한 금속의 소리가 났다. 나는 가던 길을 멈췄다. 열쇠가 구멍으로 들어가면서 딱 떨어지게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문이 열렸고, 나는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아빠였다. 아빠의 손에는 우리 집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려있는 열쇠와 정확히 같은 종류의 열쇠가 들려있었다. 10여 년 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 가족끼리 나눠가진 스페어 키 중 하나였다. 나는 잊을 뻔한 그 얼굴보다 아빠의 손에 들린 스페어 키를 더 많이 바라보았다. 나는 그 열쇠를 바라보며 반가워해야 할지, 성가셔해야 할지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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