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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 Apr 13. 2017

평일 오전 11시에 카페 창가자리에 앉게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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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99% 픽션입니다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할 때면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여유롭게 노트북을 열어 영화를 틀고, 커피를 홀짝, 그러면서 스마트폰을 보고, 턱을 괴어 다시 커피를 홀짝. 이면서도 내가 탄 만원 버스를 바라보는 사람(혹은 사람들)이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지 궁금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평일 오전 11시에 모닝세트를 시켜놓고 창가 자리에 앉아보니 이제야 좀 알 것 같았다. 창가 자리에 앉아 여유롭게 노트북을 열어 영화를 틀고, 커피를 홀짝이면서 스마트폰을 보고, 턱을 괴어 이따금씩 누군가가 출근하는 그 모습을 보는 기분에 대해.



이 자리는 내가 정말 앉고 싶던 자리였다.



출근해서 복사하고, 또 복사하고 한번 까이고 다음엔 타이핑하고,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까이고 그다음엔 또 까이고…. 누군가가 그렇게 사는 동안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양 앉아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같은 하늘 아래 어쩜 이렇게 달리 살아갈 수가 있는지.



뭐, 굳이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해서 내가 이 자리에 앉게 된 것은 아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나는 잘렸다. 아니, 해고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게 퇴사하게 된 것이다.



잘 됐네요. 제가 먼저 그만두려고 했는데요!



라고 소심한 반항도 못한 채 언제나처럼 어정쩡하게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얼굴로 이별하게 된 것이다.



고모는 화병이라는 게 괜히 생기는 게 아니라고 했다. 하고 싶은 말을 제때 하지 못하면 그게 쌓여 병이 된다는 것이다. 쉼 없이 달려오는 동안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얼마나 하고 살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밤에 자다가 갑자기 화들짝 깨거나, 그렇게 일어나면 다시 잠들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 알 것 같았다.



나는 비어있는 퇴사 사유란에 '건강상의 이유'를 적었다가 다시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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