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끄면 나타나고 불켜면 사라지는 너에게
* 어떤 학술적 근거 없이 아주 주관적인 노하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 미리 밝힙니다.
새벽 1시, 눈을 감으면 어김 없이. 서서히. 괴로운 소리가 나를 옥죄어온다. 숨바꼭질 시작이다. 위잉- 소리가 주위를 맴돈다. 불을 켠다. 양손을 휘젓는다. 모기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그때부턴 지옥이다.
내 생각엔 모기도 생존을 위해 진화해온 것 같다. 인간의 행동 패턴을 면밀히 분석해 성공적인 흡혈을 위해!
하지만 그런식이면 인간은 괴로워진다. 여름만 되면 없던 불면증까지 생길 것 같다. 이럴 때 인간은 모기보다 영리해져야 한다.
며칠밤을 모기에게 KO 당하고 나서야 나름대로 모기에 대처하는 요령이 생겼다. 물론 모기약을 뿌리거나 설치하거나 기타 등등의 손쉬운 방법이 있지만 무엇보다 나는 게으르다. (게으르고 또 게으르다..) 게다가 다음날이 되면 모기에 대한 걱정은 깨끗이 잊어버리는 관계로 직접 모기를 잡는 아주 고전적인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모기를 잡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불이 꺼져있고 나는 누워있다는 가정 하에) 모기 소리가 들리면 최대한 몸을 천천히 움직인다.
2. 서서히 일어나 모기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모기는 반경 1m 내에 있다. 손을 형광등 스위치에 갖다댄다.
3. 재빨리 불을 켠다. 불을 켜면 모기도 당황해서 아직 주변을 떠나지 못한다.
4. 사실상 이 때가 가장 중요하다. 마음이 급해서 손을 휘둘렀다간 그 날은 밤을 샐 수도 있다. 아주 천천히 모기가 있는 곳으로 손을 뻗어간다.
5. 모기가 공중에 있는 동안은 잡기 힘들다. 양 손으로 모기를 한번에 잡는 일은 떨어지는 스마트폰을 잡는 것보다 어렵다. 만약 조바심을 내어 모기 잡기를 시도한다면 모기는 텔레포트를 써서 어디론가 순간 이동을 할지도 모른다..
6. 여튼 모기를 천천히, 아주 서서히 구석으로 몰다보면 모기가 벽이나 천장이나 문이나 어딘가에 앉는 시점이 온다. 이 때가 절호의 기회다.
7. 모기가 눈치채지 못하게 모기가 앉은 곳을 향해 손바닥을 편다. 반동을 이용하지 않은 채로 순식간에 모기를 때려잡는다.
8. 성공률이 꽤 높은 방법이긴 하지만, 순간적으로 모기가 날아가 버린다면 잠자기는 그른 셈이다. 그러니 침상 옆에 파리채 하나쯤 두고 자면 좋다.
9. 만약 놓쳤을 경우, 다시 불을 끄고 눕는다. 다만 이번에는 모기의 주파수에 귀를 기울인다. 존재를 알고 난 후에는 더 먼곳의 모기 소리도 들을 수 있다. 간혹 가전기기 소리(이를테면 냉장고 같은)와 혼동할 수 있으니 주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