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정(保定)의 개다리 작전

by 누두교주

중국에서 북경 사람은 '북경 뺀질이(京油子)'라고 부른다. 보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천진 사람은 '구라 꾼(수다쟁이, 卫嘴子)이라고 부른다. 10명 북경 뺀질이가 1명 천진 구라 꾼을 못 이긴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뺀질이와 구라 꾼보다 한 수 높은 것이 '보정 개다리(保定 狗腿)'라고 한다. 과거 보정 사람들이 중국을 침입한 외국군의 길잡이를 한 것에 대한 경멸의 표현이다. 따라서 지금 현재 중국의 3대 거대 경제권의 하나인 징, 진, 지 (京, 津, 冀 = 북경, 천진, 하북)의 사람들은 뺀질이, 구라 꾼, 그리고 개다리들이 포함돼 이루어진 것이다.




중국은 땅 덩어리가 쓸데없이 크다. (대한민국의 96배이다) 중국의 성(省)은 수십 개가 되는데 우리나라 면적보다 작은 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지역격차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여기서 지역격차는 의, 식, 주, 언어, 풍속, 그리고 법률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활을 포함한다. 예를 들면 각 지역별 최저 임금이 다르고, 지역별 절도범죄의 형사 범죄 구성 비율이 다르다. (쉬운 예로 시골에서 500위안을 훔치면 절도범으로 형사 기소되지만 북경에서 500위안을 훔치면 기소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전국을 커버하는 백화점은 매우 적고(王府井그룹 정도) 각 지역별 대표 백화점이 상권을 장악하고 있다. 하북 성의 경우는 '북국 선천하(北国先天下)' 백화점이 가장 대표적이고 수준 높은 백화점이다.(북경과 천진은 직할시로 하북성이 아니다) 그래서 북국 선천하 보정점에 입점하기로 결정했다. 북경 뺀질이와 천진 구라꾼들에 이어 보정 개다리들에게 한국의 앞서가는 패션을 경험시켜 주겠다는 숭고한 이상을 실천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한국의 파트너인 브랜드 담당 이사는 어렵게 입점한 백화점의 상태와 매장 위치를 확인하고 지원사항을 협의하기 위해 서울에서 비행기 타고 해외 출장을 왔다. 와서 사진 찍고 백화점에서 밥 먹었다. 나에게 어떻게 이렇게 좋은 백화점에 입점했는지 대단히 신뢰가 간다고 듣기 좋은 소리 하더니 바로 북경으로 간다고 했다. 북경에 가서 자금성과 만리장성 등을 돌아볼 아주 중요한 업무가 있다고 했다. 나는 잘 가라고 했다.




그런데 개장을 위한 업무에 처음부터 문제가 생겼다. 2층 에스컬레이터 앞, 가장 좋은 자리에 100평방 미터의 박스 매장을 잡았는데 인테리어 작업이 늦어지고 그 수준도 엉망이었다. 백화점은 약속한 개점일에 맞추어 한국 브랜드 입점에 따른 특별 행사를 기획하고 있는데 아주 난감할 상황이었다. 밤샘을 거듭해 겨우 개점일은 맞추었지만 지속적으로 시설과 집기를 보완해야 하는 상황을 만났다.

나는 필요한 시설과 집기의 보완 수정을 완료하면 공사비 잔금을 주겠다는 당연한 주장을 하며 진행 일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보정의 인테리어 업자는 일단 공사비를 전액 다 결재해 주면 수정, 보완 일정을 제시하고 틀림없이 잘해주겠다는 주장이었다. 지금 해놓은 꼴이 늦고 엉망인데 뭘 믿고 돈을 먼저 주냐는 질문에 인테리어 업자는 항일 투쟁에 나선 공산당 영도의 표정과 억양으로 자세히 설명했다.


"공기가 지연된 것은 자재상이 납기를 지키지 않은 이유이고, 설치에 불량이 발생한 것은 설치기사 어머니가 중병에 걸려 일에 집중하지 못해 그런 것이다. 수정, 보완 일정을 미리 못주는 것은 우선 자재업자와 설치 기술자에게 먼저 돈을 줘야 잘못된 것을 보완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어떻게 돈 안 주고 일 시키나?"


도무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고 따라서 책임질 일도 하나도 없는 태도였다. 오히려 계약서에 지급하기로 한 잔금을 주지 않는다며 나를 연체한 채무자 대하듯 하는 논리는 차라리 존경스러웠다. 계약서대로 잔금을 안주는 이유는 아직 인테리어가 끝나지 않았고 수정 보완이 남아 있지 않느냐고 항변하면 당연히 "공기가 지연된 것은 ~~"으로 다시 돌아가는 논리이다.


이러한 실랑이의 끝은 인테리어 업자가 북경에서 타고 간 우리 회사차를 훔쳐가 버린 것이었다. 차에서 기다리고 있는 기사에게 "사장이 차키 가져오래"라고 하니 기사는 차키를 줬고 인테리어 업자는 그 차를 몰고 달아났다. 그리고는 나에게 전화해 인테리어 잔금을 주면 차를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우리 일행은 기사 포함해 5명! 북경과 보정의 거리는 150킬로미터가 넘는다. 일단 기사에게 역에 가서 고속철 표를 예매하라고 지시하니 차비를 달라고 해서 줘 보냈다. 그다음엔 당연히 경찰서를 찾아 신고했다. 아래 딱 공산당처럼 보이는 반욱량 치안 민경이 우리 사건 담당자로서 중화인민공화국을 대표했고 나는 피해자 대표로서 신고 접수를 요구했다.


반욱량 치안 민경은 신분증 확인부터 시작해 사건의 자세한 경위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리고는 차량 절도에 대한 신고를 받아주지 못하겠다고 선언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법에 따르면 인테리어 업자가 우리 차를 훔쳐간 것은 절도행위가 아니고 경제 분규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당사자들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이지 공권력은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절강성 공안의 사건 처리와 하북성 공안의 사건 처리는 일치했다.


참고로 이러한 사건에 대한 도움을 받기 위해 대한민국 영사관에 연락해봐야 결과는 달라질 것 없다. 우선 전화연결이 잘 안 된다. 전화연결이 되면 내용 설명을 다 듣지도 않고 일단 중국과 우리나라 법이 다르다는 것을 교육한다. 그리고는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조국의 음성을 듣는다.



나는 공사 잔금과 자동차 값. 그리고 매장의 보완 수정 비용을 예상하며 현실적인 판단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국가의 경제인으로서 테러범들 그리고 우리 회사 자동차 훔쳐간 보정 개다리들과는 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다만 그들이 고의적으로 매장 경영에 부정적인 행동을 할 것을 고려해 백화점의 브랜드 유치 담당 담당 임원인 염립예 경리에게 연락해, 상황을 설명하고 입점을 재고하겠다는 뜻을 표시했다. 멀쩡히 있던 염립예 경리가 날벼락을 맞은 꼴이 된 것이다. 그런데 보정 북국선천하 염립예 경리는 생각보다 침착했고 핵심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했다. 그녀는 우선 일행 중에 다친 사람이 있는 지를 묻고, 이어서 저녁 식사는 했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북경까지 가는 기차표 구매를 확인한 후 기차역까지 백화점 차로 전송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녀는 인테리어 업자의 태도에 유감을 표하고 우리 브랜드가 이 백화점에 입점해 높은 매출을 올리는 것은 우리 회사와 백화점 모두가 바라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는 두 회사의 공통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는데 누구라도 백화점 내에서 부정적인 언행을 한다면 단호히 대처할 것이며, 만에 하나 우리 매장이 피해를 입는다면 백화점 차원에서 변상하겠다고 했다. 공산당은 회의를 많이해서 말을 잘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사태파악은 정확했고 내가 원하는 제안을 한 것은 틀림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하북성 보정시 북국선천하 매장이 개장되었고 보정 개다리들에게 한국의 앞서가는 패션을 경험시켜 주겠다는 숭고한 이상은 실천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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