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아방궁을 건립한 지역이며, 지금 습근평이 열심히 쇼를 하는 이른바 '일대일로(一带一路)'의 내륙 중심부는 '서안(西安)'이라는 도시이다. 과거의 장안, 낙양은 고대의 영화를 뒤로한 지방 도시에 불과한 상태이지만 서안은 당당히 현재 섬서성(陕西省)의 중심이다.
서안 시장을 장악하면 서북으로는 산서성, 남으로는 호북, 호남성, 서남으로는 중경을 지나 사천성을 경영할 수 있다. 물론 나는 이점을 알고 있었지만, 사업 초기인 시점이라 우선은 매출을 많이 올릴 수 있는 북경과 동부 연안 도시에 집중하고 있었다. 또한 당시 서안 백화점들은 경쟁력 있는 브랜드(특히 해외 브랜드) 유치에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이러한 와중에 서안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탁관상(托管商)①이 협업 제안을 해 왔다. 이 탁관상은 경쟁력 있는 해외 브랜드 입점을 백화점으로부터 요구받고 있었으며 동시에 브랜드 교체를 원하는 점주 자원을 여럿 가지고 있었다. 이 탁관상은 일단 북경에 와서 우리 매장을 살펴보고 서안에 돌아가 우리를 초청한 것이다. 탁관상 동사장(董事长- 오너)은 위해룡(魏海龙)이었고 총경리(总经理-C.E.O.)는 왕야(王野)였다. 당연히 안 갈 이유가 없었다. 나는 동희 형(가명)과 함께 서안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서안 공항; 중국의 공기질은 좋지 않다. 내륙은 특히 좋지 않다.
서안 중심엔 종을 매달아 놓은 종루(鍾樓)가 있다. 그리고 종루 옆에는 호텔이 있다. 이름은 종루 호텔이다. 우리를 초청한 위해룡 동사장은 우리 숙소로 종루 호텔을 예약했다. 겉보기는 나쁘지 않으나 내부 시설은 매우 낡은 호텔이었다. 다만 시장조사를 하기엔 더할 수 없이 좋은 위치였던 것은 사실이다.
왼쪽에 뾰족하게 생긴 게 종매달린 종루, 오른쪽 건물이 종루 호텔이다. 가운데 불빛이 개원 백화점이다. 종루 호텔 맞은편 길 건너에는 세기금화(世纪金花) 백화점이 있다. 섬서성 최고급 백화점이자 전체 금화백화점 체인의 맏형 격인 백화점이다.
요게 서안 최고의 백화점인 세기금화 백화점이다. 서안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체구가 크지 않은 편이다.
세기금화 백화점 대각선 맞은편에는 최고급 백화점은 아니지만 판매 수량과 금액에서 서안시 1등인 개원(開元) 백화점이 있다. 그냥 들어가 보기만 해도 붐비는 고객의 수효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인 백화점이다.
멀찍이서 본 개원 백화점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화중(华中)지방② Flag shop을 세팅한다면 당연히 세기금화백화점을 선택해야 할 것이고, 당장 손익을 고려한다면 개원 백화점이 좋아 보이는 상황이었다.
하루 종일 걸어야 하는 고된 시장조사 일정을 마친 후 위해룡 동사장은 우리를 저녁에 초대했다. 다양한 육류 바비큐를 main으로 풍성한 식탁을 구성했다. 거기에 더해 현지 맥주와 현지에서 가장 유명한 서봉 백주(西鳳白酒 - 고량주)를 준비했다. 거기에 더해 개원 백화점의 영업담당(招商)책임자까지 동석했다.
뭐든 눈에 보이는 것은 전부 구워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현지 맥주와 현지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고량주이다. 중국 어디 가든 지네 동네 고량주는 중국 8대 고량주의 하나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중국 8대 고량주를 다 아는 사람은 못 봤다. 고단하고 갈증이 날 때 맥주 한잔은 더할 나위 없이 시원하다. 난 중국 백주를 마시지 않지만, 그 맛을 아는 사람은 "중국 음식엔 백주가 최고"라고 한다. 동희 형이 그랬다. 알코올 도수가 58%인 술은 많이 마시면 자기 이름도 까먹을 정도인데 동희 형은 절대 본인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저녁 자리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빠른 시간에 서안 시장에 진입해 수익을 내고 싶었다. 위해룡과 왕야는 한국의 좋은 브랜드를 가지고 서안을 중심으로 섬서성 각지에 전개, 규모 있는 비즈니스를 꿈꾸고 있었다. 개원 백화점 영업책임자는 매출이 부진한 자리에 말로만 듣던 한국 브랜드를 유치하고 싶어 했다. 각자는 각자의 목표를 생각하며 잔을 들었고 그렇게 취해갔다.
몇 가지 문제가 겹쳤다. 고된 일정에 맥주가 무척 시원했다. 그래서 많이 마셨다.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고량주를 마시면 잘 넘어갔다. 그래서 많이 넘겼다. 개원 백화점 영업 담당 책임자는 30대의 호리호리한 체격의 여자였는데 흰색 블라우스와 짙은 색 재킷의 정장을 입고 왔다. 처음엔 깍듯이 예를 지켰지만, 시간이 갈수록 백화점 영업책임자가 여자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동희 형 이야기이다.
왁자한 저녁 자리는 늦은 시간에야 파했다. 모두 조심은 했지만 취하지 않은 사람은 없어 보였다. 정신줄 놓도록 취한 사람이 둘 있었는데 하나는 개원 백화점 영업책임자와 동희 형이다. 하지만 일어날 때쯤 해서는 둘이 서로 못 알아보는 눈치였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어둠이 무척 깊어 보이는 공간이 보였다. 불 꺼진 공원 같기도 하고 숲처럼 보이기도 했다. 동희 형은 숲이라고 단정하고 뭔가 기여하길 원했다. 나는 반대하지 않았다. 동희 형은 대륙의 심장을 향해 오줌을 갈겼다.
다음 날 아침, 또 다른 백화점들과 쇼핑몰들의 시장조사를 진행하며 계획된 일정을 소화했다. 일과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어젯밤 보았던 어둠이 깊어 보이는 공간은 숲이 아니라 대자은사(大慈恩寺)라는 절이라는것을 깨달았다. 느낌이 싸~했다.
더욱이 대륙의 심장이라고 생각했던 장소는 대륙의 심장이 아니라 손오공과 저팔계를 데리고 인도 여행을 다녀온 현장법사(玄奘法師)의 코앞이었다. 현장법사는 다 본 것이다.
몇 번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우리는 결국 서안 시장에 진출하지 못했다.
뱀발: 『도덕경』은 '착하게 살라'면서 끝난다. 『논어』는 '말을 잘 이해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끝난다. 『주역』은 술 조심하라고 하면서 끝난다.
① 위탁관리(委托管理)의 준말이다. 브랜드의 요청에 의해 백화점 입점 업무를 진행하기도 하고 백화점의 요청에 의해 브랜드를 찾아 소개하기도 하는 양방향 업무를 한다. 입점 업무만 하는 경우 소탁관(小托管), 입점은 물론 판매관리까지 대행하는 경우는 대탁관(大托管)이라고 한다.
② 중국의 지역 구분이다. 상해, 항주는 화동(華東), 광주 심천은 화남(華南), 하북성과 내몽고 등지는 하북(華北) 등으로 부른다. 경계선이 있는 것도 아니고 행정구역도 아니다. 대강 방향 설명하며 폼 잡을 때 많이 쓰는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