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양자강’이라고 부르는 강을 중국에서는 창장(长江) 즉 긴 강이라고 부른다. 이 양자강은 아득한 옛날부터 그 발원지부터 많은 도시를 흐르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양자강의 남쪽 지방을 중국 사람들은 강남(江南)이라고 부른다. 또한 강남은 수향(水乡) 즉 물의 동네라고 부르는데 여러 마을들이 강 굽이마다 크고 작게 깃들어 있기도 하다.
사실 몽고의 대초원과 만주의 드넓은 벌판부터 허베이(河北) 평원을 지나 중원(中原)에 이르기까지, 내가 받아왔던 인상은 매우 척박하고 건조한 느낌이었다. 이는 색으로 표현하면 누른 황토 (붉디붉은 우리의 황토색과는 다르다), 소리로 표현하면 입속에서 웅얼대며 꿀꿀대는 돼지 또는 낮게 으르렁거리는 이리의 소리, 냄새로 표현하면 고기와 향신료 같은 비리고 짙은 냄새, 맛으로 표현하면 혀에 무겁게 얹히는 기름 맛(腻), 몸에 닿는 느낌은 ‘건조’함이었다.
그러나 강남의 그것은 아주 달랐다. 우선 공기가 촉촉하고, 그래서 말소리들이 귀에 착 붙는 느낌이었다. 꿀꿀거리는 음색이 아니라 ‘짹짹’ 거리는 경쾌한 음색이고, 음식도 유채기름처럼 가볍고 고소한 맛에 녹색이 많아 편한 느낌의 것이 많이 보였다.
강북 (양자강 북쪽)의 남자는 머리가 크고 목이 짧고 덩치가 크다. (많은 사람이 머리를 짧게 깎고 다녀 우리나라 ‘깍두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여자도 덩치가 비교적 크고 풍만한 체형이 많다. 그러나 강남의 경우 덩치가 작고, 특히 머리가 작다. 또한 가늘다. 이러한 비주얼은 특히 돼지 같은 마누라만 알던 강북의 사나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기 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강남의 미녀를 일컬어 수항 미녀 (苏杭美女) 즉 항주(杭州)와 소주(苏州)의 미녀라 하는데, 이 둘을 굳이 나눈다면, 항주의 미녀는 경쾌하고 명랑하며 밝고 깜찍하다. 소주의 미녀는 그윽하고 청아하며 조용하고 단아하다.
2003년부터 항주 근처에 지사를 둔지라 나는 항주 출입이 잦았다. 물론 많은 항주의 미인을 친구로 가질 수 있었고, 그중에 왕 하이 (王 海)라는 친구도 있다. 그냥 편하게 angela (안젤라)라고 부른다. 내가 항주에 갈 때, 또는 그녀가 하는 업무 (국제 운송업무를 한다)와 관련이 있는 일은 꼭 그녀를 찾을 만큼, 그녀는 매우 깔끔하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하고, 특유의 명랑함은 주위를 환하게 하는 그런 항주의 미녀이다.
2014년도에 중국의 피혁원자재 시장에 진출할 목적으로 항주에 동희 형과 동행한 적이 있고, 이때도 당연히 안젤라를 만났고, 상담을 겸한 저녁을 서호(西湖) 주변에서 하기로 약속을 했다. 동희 형님은 원래 출생이 이북인 데다가, 누구보다 고구려, 즉 북방의 기질이 강한 ‘정의로운 사나이’를 모토로 인생을 사는 분이다. 불의를 보면 흥분해 말을 더듬고, 정의로운 일을 보면 일단 술을 한잔씩 해야 하는 성격의 소유자로, ‘천하를 달리는 말은 마구간을 돌보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집안에 소홀해, 늘그막에 "되빠꾸" (인과응보의 우리말 표현 중의 하나)를 심하게 당하시는 분이다.
안젤라가 운전하고, 나는 조수석에 앉고, 동희 형님은 뒷자리에 않아, 저녁식사 장소인 서호 주변 현지인들도 아는 사람만 아는 뒷골목에 숨어있는 라이브 뮤직과 양꼬치 그리고 와인을 즐길 수 있는 바(BAR, 酒吧)로 이동하던 중에 문제가 발생했다. 이 장소는 항주의 서호(西湖)와 그 주변의 버드나무의 자태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숨은 장소이나, 그만큼 공간이 협소해 주차에 매우 곤란은 겪는 장소이다. 이날도 주차할 장소가 없어 안젤라는 바(BAR)의 주인과 휴대전화 통화를 하며 차에서 내려 주차위치를 확인했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차에 앉아 있었다.
이때 동희 형님의 특유의 ‘협객’ 본능이 발동해 안젤라를 돕기 위해 차에서 내리려고 뒷문을 여는 순간! 뒤에 달려오던 전동차 (电动车)가 동희 형님이 연 문에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비명 소리에 놀라 차에서 내려보니, 전동차와 사람은 넘어져 있고, 전동차 앞 바구니에 담겨있던 수박은 기우뚱 거리며 구르고 있었다. 나는 급히 전동차를 세워놓고, 깨진 수박을 수습해 가지고 오니 안젤라는 쓰러진 아주머니를 부축해 상처를 살피며 나와 동희 형님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는 눈짓을 보냈다. 동희 형님은 ‘고의가 아니었다’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으나 이는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우리가 외국인인 것이 드러나 이로울 것이 없다는 점을 설득하고 잠자코 안젤라의 처리를 지켜보기로 했다.
항주 미녀인 안젤라와 항주 아줌마는 다음과 같이 대화를 이어 나갔다.
우선, ‘뼈나 근육은 이상 없고, 다만 피부에 찰과상이 있다 그러나 이건 약 바르면 된다’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사고를 당한 (동희 형님의 표현은 ‘지가 와서 부딪힌’)항주 아주머니는, 그건 그렇다 치고 비싼 ‘보테가 베네타’ 핸드백에 상처가 난 것은 어떡할 것이냐? 였다.
안젤라는 ‘보테가 베네타’ 디자인은 맞지만 ‘짝퉁(假货)’이라 몇 푼 안 할 것이라 했지만, 아주머니는 짝퉁은 맞지만 초 A급(山寨)이라 200위안 (약 36,000원)도 넘는 비싼 것이라고 엄숙히 이야기했다.
안젤라는 이미 사용한 것임을 감안해 150위안(27,000원)을 배상하겠다고 제의했고, 아주머니는 반대하지 않았다.
다만, 전동차 앞 시장바구니에 담겨있다가 떨어진, ‘수박’에 대한 문제 제기를 했다. ‘깨져서 상했으니 어떡할 것이냐 였다. 결국은 수박 값 50위안 (8천 원)을 추가해 총 200위안에 합의를 하고 이 문제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안젤라는 200위안(약 3만 8천 원)을 아주머니에게 넘겨주며, ‘운이 좋지 않은 날이지만 그나마 크게 다치지 않았고 원만히 마무리돼 고맙게 생각한다’라고 덕담을 했고,
아주머니는 ‘이슬비가 내려 길이 미끄럽지만 않았어도 피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해 미안하다’고 화답을 했다.
그때 비로소 그때까지 들리지 않던 서호의 물결 소리가 아득히 들려왔고, 머리 위에 하늘거리는 버드나무 가지의 흔들림을 느낄 수 있었다. 잘못하면 경찰 조사에, 병원 치료비에, 아주 낭패를 볼 일을 순간적으로 판단해 민첩하고 야무지게 처리 재준 안젤라가 너무 예쁘고 고마운 순간이었다.
나는 다소 흥분한 톤으로 안젤라가 달성한 합의의 과정과 결과를 동희 형에게 설명하고, 나와 같이 감동한 동희 형의 칭찬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나브로 어둠이 스며드는 항주 서호, 호수 특유의 너무나도 잔잔한 물결소리, 그 호수 변의 안개 같은 이슬 비속에 흐느적거리는 버드나무의 움직임, 그리고 낮게 부릉거리는 전동차의 시동 거는 소리…이런 아득한 강남의 늦은 봄날 저녁을 가르는 동희 형님의 준엄한 일갈은 내가 안젤라나 아주머니에게 통역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면 수박은 놓고 가야지!!”………
** 제목 배경 사진은 항주 주변의 소흥(绍兴)에 있는 소흥 빈관(绍兴宾馆)이다. 중국의 대문호 루쉰(鲁迅)의 고향이기도 하고 유명한 소흥주(绍兴黄酒)의 산지이기도 하다. 항주에 가면 반드시 들려야 할 곳 중의 하나이다.
** 아래 사진은 항주 교외에서 수박 노점을 하시는 '항주 아줌마'이다. 중국에서는 수박을 한 개에 얼마가 아니라 한 근에 얼마, 즉 무게를 기준으로 팔기 때문에 항상 저울이 필요하다. 중국의 비약적인 경제 발전은 노점 수박 장사도 디지털 저울을 사용하기에 이르렸다.
** 아래 사진은 소흥빈관에서 먹었던 음식의 일부인데 북쪽의 음식과는 여러 면에서 많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