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일 유엔 무역 개발회의(UNCTAD)에서는 우리나라를 선진국에 포함시켰다. 순간적으로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1996년 12월 12일은 우리나라가 세계 29번째로 선진국 클럽이라는 OECD에 가입했다고 좋아했던 기억이다. 그리고 1년도 안된 1997년 11월 IMF사태를 맞았다. 설마 앞으로 1년도 못가 또 뭔가 사달이 나는 것은 아닌가?
내가 아는 한 진즉부터 우리 사회에 선진국의 담론을 제기한 선각자로 최진석 선생이 있다. 그는 모두가 경제 관련 숫자만으로 선진국을 말할 때 숫자를 단 한마디도 말하지 않으면서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을 잔인할 정도로 정확히 통찰했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수학을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출판된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는 그의 선진국 이론의 결정판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따라 하기에서 선도적 추구로, 일반성에서 고유함으로, 구체적 감각의 단계에서 추상적 사유의 단계로, 선례 찾기에서 선례 만들기로, 정답 찾기에서 문제 찾기로...(중략)...
이것이 현재를 사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시대의 의식이다.
여기에 우리의 패션을 대입해 보면 어떨까? 옷을 파는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 패션은 칼라와 디자인 등 비주얼에 있어서는 선진적이다. 하지만 선도적 추구, 고유함, 추상적 사유, 선례 만들기, 문제 찾기 등과는 거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차이가 진정한 선진 패션과의 거리가 아닐까?
그러나 ‘안전성’ 측면에서는 긍정의 미소보다는 아쉬움 또는 속상한 한 숨이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우월한 디자인의 효과는 그날, 그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나타나지만 안전 문제는 잘못하면 한 방에 훅 간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좀 다르지만)
미국 J.C Penney에 Bomber Jacket을 수출하는 것을 시작으로 일본, 유럽, 심지어는 레바논까지 의류를 수출하면서 나는 소비자를 보호하는 ‘안전성’ 측면에서의 선진국을 일찍부터 체험하였다.
30년 전인 1991년 미국 시장에 옷을 팔기 위해서는 먼저 공장 인증을 통과해야 했다. 그다음엔 자재와 제품의 각종 검사에 합격해야 했고 그 후에 지시된 방법에 의해 포장해 수출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지금도 그렇게 하는 패션 브랜드는 많지 않다.
일본의 경우는 자재와 제품에 대한 까다로운 검사 과정을 거치는 것은 물론 추가로 검침 과정을 거쳐야 했다. 옷 안에 혹시라도 부러진 바늘 조각이 포함돼 있는지를 고성능 금속 탐지기로 확인하는 것이다. 일본 국민이 수입 의류에 포함된 바늘에 의해 피해를 입은 후 생긴 조치이다. 우리나라는 ‘앓느니 죽는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유럽의 경우는 오코텍스 스탠더드 100(OEKO-TEX® Standard 100)을 만족해야 선적할 수 있다. 원자재, 중간재, 완제품을 검사하며 유아/ 피부 직접 접촉 제품/ 피부 비 접촉 제품/ 장식 섬유로 구분해 환경적 안정성을 인증한다. 특히 유아용 제품의 경우 매우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 성인 제품의 경우도 발암물질, 중금속은 물론 세밀한 앨러지 물질들에 대한 테스트까지 진행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러한 복잡한 이야기는 끝까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의 경우는 어떨까? 지금의 코로나 이전인 2003년에 사스가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쯤으로 기억하는데 라쿤(Racoon, 너구리) 털 가격이 90% 이상 갑자기 폭락한 적이 있었다. 그 이유는 라쿤의 수요가 급증하자 '개'를 잡아 개털을 염색해 수출했다가 걸려서 라쿤 털까지 전부 반송되고 오더가 취소/중단됐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봉제 인형의 내부를 채우는 충전물에 산업 폐기물을 사용했다가 걸리기도 했다.
그랬던 중국인데 지금 중국의 백화점에서 옷을 팔기 위해서는 모든 제품에 GB-18401-2010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표시를 해야 한다. 원래 이름은 '국가 방직산업 생산품 기본 안전 기술 규범(国家纺织产品基本安全技术规范)'이다. 만일 이 테스트를 받지 않고 성분 또는 혼용 율을 틀리게 표시해 판매하다가 적발되면 판매한 가격의 3배를 배상해야 한다.
중국 패션 시장에는 '따지아(打假)'또는 품질 파파라치(质量狗仔队-직역하면 품질 개새끼 팀)가 지금도 돌아다닌다. 특히 고급 백화점일수록 중국 실정을 모르는 해외 브랜드가 많고 상품의 단가가 높아 그들의 밀도가 높다. 그들은 보통 2인 1조로 한 사람은 탈의실에서 옷을 자세히 보고 증거를 수집하고 증거를 잡으면 한 사람이 현금으로 결재한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잘 팔리는 모델이 나타났다고 좋아하다가는 며칠 후 여기저기서 반품과 동시에 배상을 요구받게 되는 구조이다.
나는 한국 브랜드의 완제품 옷을 수입해 중국 백화점에서 팔면서 당연히 한국의 상품 관련 정보가 중국에 비해 정확한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한국어로 표시된 섬유의 혼용 율과 원산지등 제품 정보를 그대로 중국어로 번역, 판매했다. 그러다가 작게는 몇 천 위안(수십만 원) 가장 많이는 72,000위안 (약 1,200만 원)을 허위 상품정보 표기로 인해 배상한 적이 있다. 제품을 공급한 한국 브랜드에 이러한 사실을 통보하고 시정을 요구 했더니 아래와 같은 정중한 답을 받았다.
"한국시장은 성분 표시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더욱이 혼용 율 틀리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중국일은 너희가 알아서 하라"
한국 최고 패션회사를 자부하는 바바 패션 브랜드의 시각이다.
그런데 해외에서 한국으로 옷을 수출하는 경우는 제품의 안정성 문제로 인해 힘들어하는 업체는 기본적으로 없다. 왜냐하면 제품의 안전성에 대한 엄밀한 테스트를 요구하는 경우가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형식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그저 스와치 테스트받고 시제품 테스트하는 정도이다.
따라서 인체에 유해한 화학성분이 포함된 제품(예를 들면 시체를 처리하는 방부제인 포름알데히드 또는 발암물질인 크롬-6)이나 개털이 염색돼 달린 제품도 유통될 수 있는 구조이다. 혼용 율이 맞건 틀리건 별 관심 없다. 따라서 울(wool) 100%라고 해서 샀는데 실제로는 8%인 경우, 걸리면 환불 또는 교환 정도이지 그 이상의 보상이나 대책은 없다. 좀 더 전문적인 이야기를 한다면 캐시미어 양털과 다른 종류의 양털을 어떻게 구분할까? 오리털이나 거위 털의 솜털과 깃털의 함량을 어떻게 구분하며 믿을 수 있을까? 아무도 자발적,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소비자는 옷을 뜯어 광학 현미경 또는 주사전자현미경이 있는 전문 검사 기관에 의뢰하기 전에는 확실히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시 선진국 논의로 돌아가 보자.
따라 하기에서 선도적 추구로, 일반성에서 고유함으로, 구체적 감각의 단계에서 추상적 사유의 단계로, 선례 찾기에서 선례 만들기로, 정답 찾기에서 문제 찾기로...(중략)...
이것이 현재를 사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시대의 의식이다.
우리의 패션(세련된 이름으로 K-Fashion)은 선진국의 그것 인가? 아니면 개발도상국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는 누구인가?
분명한 것은 K-Fashion은 안전성에 있어서는 선진국이 아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제대로 따라 하고, 일반성과 구체적 감각의 단계에 충실하고 선례 찾기에 성실해야 하며 제대로 된 정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현재를 사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시대의 의식이다.
이 이야기는 패션 관련 제품이 소비자의 위험 자각 개념과 관련해 패션 기업이 진정성을 가지고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에 대한 독백이다.
패션 소비자의 위험 자각 개념은, 사회적, 재정적, 신체적, 심리적, 그리고 성과 위험이 있다.
위험이 감추어져 있거나 위험에 상시 노출되어 있거나 위험할 때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면 선진국이라고 할 수 없다.
참고 논문 : 유희정, 심수인, 2020, (전북대학교) [수입 의류 제품의 에코라벨 인증마크 부착 여부, 제품군, 원산지 국가가 소비자의 신체적 위험지각, 제품에 대한 태도 및 구매의도에 미치는 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