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와 레깅스

by 누두교주

최근에 괜한 궁금증 때문에 멍 때릴 귀중한 시간에 자꾸 이것저것 찾아보는 일이 잦아졌다. 예를들면,


“왜 지금 우리 fashion에는 비단(緋緞, silk) 제품이 많지 않을까?”


하는 것이 그것이다. 자연이 만드는 천연소재인 실크는 동물성 소재다. 실크 원단을 개다 보면 탱글탱글하게 움직이는 것이 여간 감각적이지 않다. 빛이 섬유의 표면을 따라 굴러가는 은은한 광택, 몸과 대화하며 찰랑거리는 촉감 그리고 염색이나 자수를 더했을 때 펼쳐지는 화려함은 다른 어떤 소재보다 탁월하다. 그런데 이 좋은 소재로 제작된 제품을 매장에서 흔하게 볼 수 없다는 것은 매우 속상하는 일이다.

비단옷을 입고 그 위에 망사를 걸친다(1)

화려한 비단으로 지은 옷에 아름다운 수까지 더했으니 얼마나 화려할까? 하지만 그 럭셔리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보다는 씨-쓰루(see -through) 소재를 사용한 홑옷을 위에 걸쳐 살짝 가린다는 의미이다. 옷을 통해 돈 자랑하려는 천박함과는 대비되는 훌륭한 인격을 갖춘 군자(君子)의 코디 감각을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소인(小人)의 얕은 소견을 가진 나는 이런 수준 있는 글을 읽고 감동해 따라 배우는 대신 엉뚱한 생각을 했다

지금은 망사를 안에 입는데 과거에는 망사를 겉에 걸쳤구나........

망사로 된 속옷이나 스타킹을 상상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진 않겠다.




업무 관계로 최소한 일 년에 두 번은 독일에 걸음 하면서 독일 맥주의 다양함과 그 기막힌 맛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특히 검은빛을 띠는 알트(old의 뜻) 맥주를 좋아하는데 밀키 한 거품과 혀끝에 맴도는 감칠맛 그리고 깊은 향은 듣기 불편한 독일어를 음악처럼 들리게 한다.


맥주 파트너이기도 한 디터가 항상 거만한 표정으로 반복하던 독일의 3대 자랑! 맥주, 소시지, 그리고 자동차에 있어 독일의 우수성은 자동차 빼고는 다른 의견이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다양한 맛과 향을 가진 소시지와 함께하는 맥주의 기막힌 조합은 독일을 떠나는 그 순간부터 그리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레깅스(leggings) 착장의 유행은 나에게 소시지의 추억을 좀 더 자주 소환하게 한다. 패션이 소시지의 추억을 소환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전에는 알지 못했다. 나아가 레깅스 입은 사람을 쳐다보며 맥주를 생각하는 사람이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옷은 몸을 보호하고 추위와 더위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재, 자신을 개성을 표현하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fashion소재, 조직과 기능 또는 자신의 신분을 표현하는 제복 등 여러 가지 용도로 기능한다. 하지만 가끔 입는 사람의 의도와는 다른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쩌면 이런 시각의 불일치가 역동적이고 다이내믹한 패션의 동력이라는 생각도 한다.


비단으로 레깅스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그러면 수(繡)는 무엇을 놓아야 하나? 비단위에 입을 망사는 1+1으로 줘야 하나 별도 판매를 해야 하나? 레깅스 하나 사면 같은 빛깔로 포장한 튼실한 소시지를 선물한다면 판촉에 도움이 될까?


대한민국 패션 소재를 화두로 시작한 고민이 길을 잘못 든 것이 분명한 것 같다. 저녁에 맥주 한잔하며 무엇이 잘못됐는지 처음부터 차분히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1) 원문은 의금경의(衣錦褧衣)이다. 여기서 경(褧)은 안감이 없는 홑옷의 의미도 있으나 경(檾) 즉 모시 종류의 옷감으로 성기게 찌서 안이 비쳐 보인다는 집전(集專)의 해석을 따랐다. 출전은 시경(詩經)의 위풍(衛風)의 석인(碩人)과 정풍(鄭風)의 봉(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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