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입는 옷

by 누두교주

작년 장마기간에 『인문학자가 보여주는 새 이야기, 인간 이야기』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중에 ‘극락조’라는 범상치 않은 이름의 새를 소개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아름다운 극락조 수놈은 암컷을 위해 구애의 춤을 춘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화려한 빛깔의 털, 비현실적으로 긴 꼬리, 거기에 무아의 지경에 빠져 추는 정열적인 춤에 넘어가지 않을 암컷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두 가지 이상한 사실이 있다. 눈에 잘 띄는 색과 요란한 춤은 포식자에게 자기의 위치를 알리는 꼴이 될 것이고 거추장스럽게 긴 꼬리는 도망치기에 매우 불편할 텐데 어떻게 우성 유전을 이어왔을까? 이 비장한 아름다움의 이유에 대한 설명은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난리를 치고도 아직 살아 있으니 암컷 극락조가 볼 때는 용을 잡아온 중세의 기사와 같은 멋진 모습으로 멋진 징표가 아닌가? 물론 그때 포식자가 나타난다면 암컷은 도망가고 수놈은 식사 거리가 되겠지만......



그런데 사람의 경우는 어떨까? 크기와 물리적 능력은 남자가 우월하다. 꽃이나 선물을 사들고 쫓아다니는 경우는 대부분 남자들이다.(극락조처럼 지극하진 못하지만)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옷을 입은 외모의 경우는 여자가 남자를 압도한다. 자연 상태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경우이다.


남자가 화장을 하고 속눈썹을 붙이고 어딘가에 뽕을 집어넣고 돌아다니기는 쉽지 않다. 하루에 거울을 10번 이상 보고 밥 먹을 때마다 새로 구찌 베니를 다시 바르고 옷 밖으로 다리의 많은 부분을 내놓고 다니고(사시사철) 옷과 가방과 구두의 칼라에 대해 민감하게 구는 남자가 있다면 틀림없이 정신이 나갔거나 아니면 나가야 할 정신이 오랫동안 안 나간 경우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동이 유일하게 인류의 암컷에게서만 관찰될까? 리처드 도킨스는 만일 생물학자적인 시각으로 지금의 인류를 바라본다면 ‘여성이 남성을 상대로 경쟁하는 사회라고 생각할 것이다 ‘라고 했다. 즉 암컷이 칙칙하고 못생겨도 되는 것은 수컷을 가지고 경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고 수컷이 밝고 화려한 이유는 암컷에게 수요가 있고 암컷이 짝을 선택하는 데 까다롭기 때문인 것과 반대 현상이라는 것이다.


백화점의 여성복 의류 매장을 돌아보면 극락조 깃털을 파는 것 같은 착각을 느낄 때가 있다. 고도로 훈련받은 전문가의 심미안으로 수놈에 대한 수요와, 짝을 선택하는데 까다로운 수놈의 비위를 맞추기에 적합한 밝고 화려한 옷들로 매장이 가득 차 있다.


여기에 더해 ‘근접 기획’이라는 이름으로 잘 팔린다 싶은 스타일은 순식간에 베껴 내놓는 통에 조금만 한눈을 팔면 금세 남이 가진 깃털이 나만 없는 경우가 될지 모르는 조급함에 빠지게 된다. 이와 같은 것은 패션이라기보다는 허영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http://www.pennmike.com/news/articleView.html?idxno=44850

지난 G7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우리나라 대통령은 부인과 같이 영국에 출장 갔다. 그런데 일 보고 바로 오지 않고 오스트리아, 스페인도 들려서 왔다. 그런데 눈에 띄는 패션 관련 소식은 영부인이 10번 넘게 옷을 갈아입으며 ‘한국의 패션, 특히 한복의 아름다움을 세계만방에 떨쳤다’는 점이다. 참으로 고마운 것이 화려한 색조에 대한 절제이다. 내가 볼 때 한복에서 가장 화려한 색조를 가진 의상은 무당이 입는 옷인데 거기까지는 안가준 것이 고마웠다. 그런데 그많은 그 옷값은 누가 냈을까?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2&aid=0003595576

반면에 영국의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는 9만 3천 원짜리 재킷을 입고 아들과 함께 축구장에 나타났다. 화려해 보이진 않았지만 건강해 보였고 고급져 보이진 않았지만 당당했다. 옷이 사람을 가린 것이 아니라 사람이 옷을 입은 모습이었다. 영국에 아직도 전 근대적인 왕실이 존재하는 이유의 큰 부분을 여기서 발견했다.

이전 23화실크와 레깅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