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길을 묻다
루앙 프라방의 새벽은 탁발(托鉢)로 시작된다. 탁발은 쉬운 말로 동냥이다. 사원(절)에서 공부하는 승려(중)들이 이른 새벽 발우(鉢盂, 동냥 통)를 들고 줄지어 나온다. 대장이 앞에, 신참은 뒤에서 일렬종대로 이동하며 밥을 얻는 것이다.
탁발에 참여한다는 것은 승려의 발우에 정성을 표시하는 행위이다. 착한 일이다. 그러니 좋은 일도 많이 생길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새벽 여섯 시 이전 길바닥에 나와 앉아 기다리는 사람이 많은 까닭이리라.
모든 일이 그렇지만 탁발을 경험하려고 해도 미리 준비가 있어야 한다. 무엇을 보시(布施)할 것인가? 대표적인 것은 찰밥과 과자이다.
나는 찰밥과 과자를 준비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가져간 ‘생각하는 부처님’을 준비했다. 눈이 맑은 동자 스님께 보시하려고 작정한 것이다.
이윽고 탁발 행렬이 다가왔다. 승려들의 걸음이 생각보다 빠르고, 조금도 아쉬운 기색이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는 사람이 공손해지게 하는 알 수 없는 결기가 느껴졌다. 첫 번째 탁발 행렬이 얼떨결에 지나갔다. 멍하고 얼떨떨한 느낌이었다.
이번에 미리 준비했다. 차분히 앉아 보시 올릴 찰밥을 미리 덩어리지게 준비했다. 승려의 발길보다 늦지 않게 발우에 넣어야 한다. 과자도 순서대로 집을 수 있도록 챙겼고 서울에서 가져간 ‘생각하는 부처님’도 따로 건사했다.
다시 다가오는 탁발 행렬, 나는 전과 달리 조심스러웠고 조금은 경건해졌다.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말이 없다. 서로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공손한 손길로 담고 무심한 눈길로 받는다. 그리고 여운을 허락하지 않는 발길을 옮길 뿐이다. 나는 준비한 공양물 모두를 깨끗이 보시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행복하구나! 이미 훤히 밝은 루앙 프라방의 새벽 공기를, 가슴 가득 들이마시며 흐뭇한 행복감을 만끽했다.
그러나 자기만족의 시간은 그다지 길지 못했다. 불과 몇 분 후 내가 경험했던 것은 탁발의 껍데기라는 죽비를 얻어맞고 만 것이다.
탁발을 마친 승려들은 길 끝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 사라졌다. 몇 걸음을 옮겨 오른쪽 골목으로 따라가 보니 전혀 상상치도 못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골목길에는 굶주린 어린아이들과 병색이 짙은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고 간절한 눈길로 지나가는 승려를 바라보았다.
승려들은 예의 빠른 걸음과 무심한 눈길 그리고 아무 말 없이, 툭툭 빈자(貧者)의 발우에 조금 전 보시받았던 찰밥과 과자들을 넣어주었다.
부끄러웠다.
5불을 주고 과자를 사고 찰밥을 산 착한 마음, 서울에서부터 뭔가를 가지고 왔다는 지혜로운 생각, 그리고 경건하고 정성스레 보시했다는 행복감. 이런 모든 것이 착각이었고 교만이었다.
불현듯 눈물이 맺혔다.
어리석고 교만했던 나의 보시 공양물을 그 짧은 순간에 빈자의 식량으로 회향하는 라오스 승려들의 뒤 모습이 너무도 고맙게 느껴졌다.
나는 루앙 프라방의 어느 길에 교만과 어리석음을 벗어 놓고 왔다. 그 길을 지나던 스님들은 그것을 갈무리해 빈자들의 발우를 채워 주었다. 어린 가난뱅이는 신이 나 먹을 것이 가득한 봉투를 품에 안고,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사랑하는 가족에게 갈 것이다.
루앙 프라방에서 나의 교만과 어리석음은, 그렇게 누군가의 아침 한 끼의 허기를 다스렸다.
대문 그림 : 동트기 전부터 줄지어 앉아 탁발 행열을 기다리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