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비엥의 야자 불(椰子 佛)
길 위에서 길을 묻다
이전에 어땠는지 모르지만, 지금의 방비엥은 젊음의 도시이다. 산과 강이 어울려진 한국의 ‘가평’과 같은 곳이다.
그래서 먼 하늘엔 기구가 떠 있고, 쏭강에는 튜브와 보트가 어울려 떠다닌다. 포장이 되지 않아 먼지가 펄펄 날리는 시골길은 트럭 버스, 오토바이 그리고 관광객들의 버기카가 연신 오간다. 하지만 이곳 사람은 소음과 먼지의 불편에도 무심하다. 건기에 바싹 야윈 채로 풀을 찾는 소들하고 별반 차이 없어 보이는 표정이다.
방비엥의 흙길이다. 모든 것이 바싹 말라 먼지가 풀풀 나는데 이 길을 트럭버스, 오토바이 그리고 버기카가 달린다.
나는 이른바 ‘먹방’이 먹을거리에 대한 존경을 감소시키는 것 같아 마땅치가 않다. 같은 이치로 젊은 연예인들이 몰려다니며 호들갑을 떨며 관광지를 안내하는 프로그램도 좋아하지 않는다. 순기능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오는 사람마다 가지를 밟고 물에 뛰어내리는 ‘블루라곤’의 나무 입장에서도 생각해 볼 일이다.
TV에 많아 나온 곳이다. 멀리 다이빙하려는 사람이 나뭇가지 위에 올라간 것이 보인다. 사람이 들이 수영하는 곳을 '화장실' 팻말이 가리키고 있다.
천성이 게으른 나는 한국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야자열매나 하나 까 들고 빈둥빈둥 돌아다니는 것이 더 좋았다. 야자 사러 가는 길에 상추 파는 곳이 있어 점심 반찬으로 살까 했는데 알고 보니 물고기 밥으로 파는 것이었다. 물에 상추를 던지면 물고기 떼가 빠르게 모여든다.
신기한 채식 물고기 구경을 마치고 야자를 하나 샀다. 긴 마체테(정글 칼)로 야자를 툭툭 잘라 빨대를 꽂아주는 손길이 정겹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다. 누군가 장난 삼아 만든 것 같은데 재미있게 생겼다. 뚱뚱한데 미련해 보이지 않고, 슬픈 표정인데 웃는 것 같다. 복(福)에 관심도 없는데, 복이 졸졸 따라다닐 것 같은 얼굴이다. 특히 헤어 스타일이 내가 아는 어떤 화가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만든 사람을 물어보았더니 젊은 총각이 수줍게 웃는다. 사고 싶다고 했더니 한참을 망설이다 2달러를 불렀다. 값을 깎기에는 너무 마음에 들어 흔쾌히 허락하고 조각의 등에 사인을 해달라고 했다. 그 총각은 긴장한 듯 손을 조금 떨며 정성스레 사인을 해 주었다. 루앙 프라방 야시장에서 손으로 깎은 불상을 못 사 아쉬웠는데 이 야자 불(椰子 佛 – 야자 부처님)이 아주 그만이다.
집에 와 야자 불의 품에 쏭강의 거북이를 안겨 주었다. 야자 불은 물론 거북이도 싫지 않은 것 같았다.
오후 시간에 야자 불을 잘 챙겨, 쏭강의 물길을 따라 보트를 타고 숙소로 내려갔다. 뒤에서 노를 젓던 사공이 갑자기 배를 세우더니 ‘화장실’하고 한국말로 외치더니 냅다 강둑 위로 달려 올라간다.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고, 시원히 편히 일 보길 기원했다. 돌아온 사공은 손도 안 씻고 노를 저었다.
고단한데다 조갈이나니 당연히 라오 맥주가 생각났다. 한글로 ‘원조 집’이라고 써진 식당에서 삼겹살을 먹는데, 삼겹살보다 황토에서 자란 채소가 더 맛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 집에서 아주 신기한 동물을 발견했다. 토끼와 거북이의 잡종이다.
분명히 토끼와 거북이 잡종이 맞지 않는가?
진화에는 방향이 없다는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가 보면 쾌재를 지를 것 같다. 그분은 남·여가 땀 흘리고 운동하면 정분난다고 절대 못 하게 하는데, 토끼와 거북이도 그렇게 같이 경주를 하더니 이렇게 결실을 본 것 같다.
밤이 깊어가면 젊은 배낭족 무리 들은 함께 모여 술 마시고 춤을 추고 노래한다. 나도 술 잘 마시고, 춤 잘 추며, 노래 잘하기에 기웃거렸는데 아무도 반가워하지 않는다. 아직 나이들이 어려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방비엥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나는 괜찮은데 저 친구들이 불편할 것 같아 안 들어갔다.대문 사진 : 야자 불이다. 그 뒤로는 야자 불의 전생, 야자들이 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