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디 많고 많디 많은 내 이름, 불리우다
그런 순간이 있다. 늘 쓰던 단어의 모양이 일그러져 보이면서 이 생김새가 내가 원래 알던 단어의 그 생김새가 맞는 건인지 어색하고 낯선 기분이 드는 순간. 오늘 제목을 쓰다가 '이름'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그렇게 다가왔다. 이름? 이름이라. 한자어가 아닌 우리의 고유어일텐데 이 '이름'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무엇이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찾아보기 전에 또 미리 예상해본다며 머리가 제멋대로 생각을 시작했다. 일름? 이르음? 이르름? 이르므? 단어를 막 변형도 해보고, 비슷한 단어도 생각해보고 하니 '고자질의 이르다'와 '어딘가에 이르르다 할 때의 이르다'가 떠올랐다. 오, 이르르다. 느낌 있다. 자꾸 불리우다 보면 말하는대로 불리우는대로 살아갈 수 있고 불리우는 그 지점에 이르르게 하겠지.
검색창에 '이름의 어원', '이름의 유래' 라고 쓰고 검색 버튼을 눌렀다. '이름의 유래'라는 여러 종친회들의 누리집에 쓰여진 게시글들이 목록에 떠서 그 중 하나를 눌러보았다.
성 씨 아래에 붙여 다른 사람과 구별하는 명칭이다. 넓게는 성과 이름을 모두 합쳐 이름이라고도 한다. (중략) '이르다(謂)'나 '말하다'는 뜻을 가진 옛말 '닐다'에서 출발하여 '닐홈-일홈-이름'으로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그를 이르는 것이 곧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르다(謂)'가 바로 1.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2. 어떤 정도나 범위에 미치다 라는 뜻으로 아까 생각했던 '어딘가에 이르르다'의 그 단어였다. 그러고 보니 이름은 태어나 누군가(보통은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이겠지)로부터 처음으로 선물받는 것이다. 나에게 그 첫 선물을 주었던 분들은 내가 그 이름대로 살아가기를 바라며 축복 가득한 마음을 담아 선물하였을 것이다. 이름의 의미대로 살아가길 바라며, 이름의 의미에 닿기를 바라며, 그렇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을까?
시대별 또는 매년 인기있는 이름 트렌드가 있다. 내가 태어나던 그 즈음에도 그런 유행이 있었다. 나의 이름 역시 그 유행에 발맞추어 지어졌다. 만티많고 많티많고 많티많은 내 이름, 내 이름! 얼마전 유행했던 비비의 밤양갱 멜로디에 맞춰 흥얼거려 본다.
내 이름 지현. 지혜로울 지(智), 어질 현(賢). 지혜롭고 어질게 살라는 부모님의 바람이 가득 담겨있는 이름일테다. 그 당시 부모님들은 지혜로운 사람 어진 사람을 좋아하셨나보다. 초등학교 4학년 우리 반 교실에는 지현이가 네 명 있었다. 김지현, 정지현, 최지현, 황지현 이던가? 모두 여자였다. 나는 2학기에 전학온 전학생이었고, 원래는 세 명이었을 지현이가 네 명이 된 지현이 교실. 우리 교실 뿐 아니라 다른 교실에도 몇 명의 지현이는 더 있었다. 그 다음 해에 우리 아파트 단지 옆으로 새로이 초등학교가 생겨 나는 또 바로 그 학교로 전학을 갔기에 그들에 대한 기억은 없다. 그냥 전학을 갔는데 나 포함 네 명의 지현이가 있었던 것이 신기해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중학교 1학년, 우리 학년에는 지현이가 또 여럿 있었다. 나와 성까지 비슷했던 홍지현이는 전교 1, 2등을 다투는 남자아이었다. 첫 중간고사가 끝나고 우리 교실 앞에 몇몇 아이들이 몰려와 나를 가리키며 수군댔다. "쟤가 전교 1등이래."... 그거 나 아닌데...
고등학교에서도 여전히 지현이는 많았다. 입학식을 마치고 교실에 들어가 출석을 부르는데, 이번 지현이는 나 포함 3명. 박지현, 이지현, 황지현. 이제는 신기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때의 나는 이미 지현이가 아니었다. 나는 황지였다. 대부분의 지현이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보통 별명으로 불리운다. 또는 이름 뒤에 알파벳을 붙이거나. 구분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박지현은 덩치가 매우 큰 남학생이었다. 그 모습을 딴 별명인 토토로로 불렀다. 이지현은 우리반 반장이었고 머리가 좀 컸다(?). 단발머리가 얼굴을 동그랗게 감싸고 있는 모습이 헬맷을 쓴 거 같아 별명은 하이바(헬맷). 그리고 나는 황지.(나는 그냥 초등학교 때부터 황지였고, 그냥 내 주변의 99퍼센트의 사람들은 나를 황지라고 불렀다. 아빠, 엄마, 선생님까지도. 너무 익숙한 또 다른 내 이름이다.) 그렇게 셋은 삼년을 같은 반으로 지냈다.
30대.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이름이 조금 바뀌었다. OO엄마. 아이를 통해 만난 엄마들은 아이의 이름이 엄마의 이름이 된다. 나도 그렇게 불리었고, 또 내가 그들을 그렇게 불렀다. 시간이 쌓여 조금 더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나서야 우리도 본인을 찾자며 이름을 묻고 휴대폰 연락처의 이름을 수정한다. 첫 아이를 낳고 만 8년이 지났더니 이제야 나를 내 이름으로 불러주는 동네 엄마들이 많이 생겼다.
이 동네에서 나를 '황지'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지혜롭고 어질게 살라는 의미의 '지현'이라고 불러주는 이들이 많다. 나는 '지현'이라고 불려본 적이 사실 많지 않아 어색하기도 했다만 어느 새 또 익숙해져 나는 '지현'이가 되었다. 그러고보니 이름이라는 것은 나의 대표 단어이긴 하지만 나를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바람을 담아 선물받았지만 살다보니 내가 이르고픈 방향이 생겼을 때 이렇게 불러주세요. 하고 말하면 또 그렇게 불리울 테니까. '황지'일 때도, 'OO엄마' 일 때도, '지현'이일 때도 나라는 사람은 늘 같은 나였으니까.
지금까지 불리운 나의 이름들. 지현아, 황지, OO엄마, 지현쌤.
나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준다면, 그 이름으로 살고 있는 나의 모습을 떠올려본다면 지금은 '늘해랑'이 아닐까 싶다.
'늘해랑(Sunshine)'이라는 이름으로 외국 한적한 마을의 작은 집에 앉아 책과 글과 함께 하는 나의 모습.
아침에 일어나 향긋한 커피를 내린다. 커피향이 너무 좋다. 내가 이 집에서 가장 신경써 고른 다이닝룸의 커다란 원목 식탁에 앉아 책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읽던 책을 아무렇게나 엎어놓고 방으로 간다. 간단한 샤워를 마치고 나와 집 앞에 주차해 둔 내 앙증맞은 미니카를 타고 마을 식료품점에 들러 장을 본다. "Good morning, Sunshine."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하는 동네 주민들과 가볍게 눈인사를 한 후, 집으로 돌아와 건강한 점심을 차려 먹고 서재로 올라가 노트북을 켠다. 따스한 음악과 함께 하는 햇살 가득한 오후이다.
나쁘지 않은걸.
'지현'이는 E인데, '늘해랑.지현'은 i 인것 같다.
<밤의 숲에서>의 주인공 '피비 할머니'
밤의 숲에 오기 전 할머니는 늘 자식들을 찾아다니는 '엄마' 이자 '할머니'였습니.
독자인 나는 할머니의 이름이 '피비'라는 것도 밤의 숲에 입장한 이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피비 할머니는 본인의 이름이 '피비'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잊었다 기억한걸까요? 혹시 새로운 이름이 갖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름의 의미를 생각해보며, 나에게도 새로운 멋진 이름을 한 번 붙여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