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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빨요정을 아시나요?

몰랐었어, 미안해.

by 늘해랑




이빨 요정을 아시나요?


지난 금요일, 우리 둘째는 친구집에 놀러갔다. 자러 갔다. 파자마파티. 서로 너무 익숙한 집이라 일곱살임에도 서로의 집에서 벌써 여러 번 잤기에 그녀도 나도 서로의 시간을 터치하지 않았다. 그녀도 그녀의 친구와 즐겁고 나도 나의 시간을 즐겼다. 그런데 어느 순간 '카톡!'.


"우리 노는데, 갑자기....ㅋㅋㅋㅋㅋㅋ 현이 계속 이 만지더니, 현이가 뻈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현이를 봐주고 있는 언니에게서 카톡이 왔다. 앞니가 쏙 빠진 그녀의 사진이. 코딱지와 함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양쪽 앞니가 얼마전부터 계속 흔들리고는 있었는데 크게 신경쓰지 않았더랬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집에서 쏘옥 빠져올 줄이야.


흔들거리는 앞니가 신경쓰이니 혼자 만지작만지작 거리다가 피가 났고, 피가 계속 나니 계속 흔들어보고 싶고 그러다보니 많이 흔들리게 되어 화장실에 가서 혼자 쑥 뺐다는 거다. 대단하다. (감히 예상해본다면, 집에서 저런 일이 있었다면 엄청 어리광부리고 징징대고 난리가 났을 거다.)


그렇게 다음 날 아침 만나자마자 지퍼백에 고이 챙겨온 앞니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집에 아빠 있어?" "응, 너 이빨 자랑하려고 그러지?" "히히, 응!" "집에 아빠도 있고, 오빠도 있어." 집에 들어가자마자 달려들어갔다. 귀여운 녀석. 그러고는 이빨을 쏙 빼서 베개 아래 넣어둔다. 그렇게 놓으면 침대, 이불, 베개 어딘가에 굴러다니며 분실될 것임을 알기에 살살 설득하여 지퍼백에 넣고 놓아두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 아이가 흘러가듯 이빨요정 이야기를 했지만 그 순간 '아 내일 아침 발견하게 사탕이라도 넣어놔야 하나.' 잠시 생각만 하고 별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아이는 또 바로 할머니댁으로 가서 하룻밤 자고 왔기에 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할머니 집에 다녀온 아이가 베개 아래 그대로 있는 지퍼백 속 앞니를 보더니 이빨요정이 오지 않았다고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헉! 진심이었구나. 넌 정말 믿고 있었구나. 근데 그러고 또 까먹었다. 나란 엄마, 이벤트는 좋아하지만 그렇게 섬세하진 않은 엄마. 저녁에 갑자기 떠올랐다. 내일 아침에도 없으면 무슨일이 안 생길거 같지 않았다(=생길것이다...). 그냥 엄마의 직감. 얼른 쿠팡 어플을 켜서 새벽배송 상품을 찾았다. 원목 치아보관함과 이빨요정의 금화 그리고 치아요정 관련 그림책 한 권을 주문했다. 하루 이틀 늦은 미안함에 가격은 생각하지 않고 일단 주문했다. 근데 또 섬세하지 않은 엄마. 아이가 일어나기 전에 얼른 포장을 정리해서 베개 아래 넣어뒀어야 했는데, 같이 늦게까지 늦잠을 자버렸다. 하하.


그래도 나는 이벤트의 여왕이다. 들키지 않고 미션을 성공하리다 다짐하고 끝방에서 몰라 쿠팡비닐을 뜯었다. 아이가 보지 않을 때 얼른 들어가 지퍼백을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원목 치아보관함에 아이의 앞니를 넣고 책과 선물을 차곡히 쌓아 또 아이가 보지 않을 때를 노려 얼른 들어가 베개 아래 놓아두고 도망쳐나왔다. 그리고 아이들이 발견하기 전까지 그방으로는 발길 한 번 아니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오전 내내 그 방에서 레고를 가지고 놀던 아이들은 베개 아래를 전혀 신경쓰지 않았고 그 선물은 점심을 먹고 한참 후에야 발견되었다.


둘째, "엄마!!!엄마!!! 이거 뭐야?"

첫째, "나는 알지! 범인은 바로 엄마! 아니면 아빠!"


이놈 시키, 동심파괴자 모드 온이라니. 그렇지만 예상한 반응이었으므로 나는 시치미를 딱 떼며 무슨 소리냐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나 오늘 너네 방 한번도 안들어갔는데? 알잖아. 너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베개 아래 아무것도 없는 거 봤잖아. 그리고나서 엄마가 너희 방 들어갔어? 나 안들어갔는데?"

"그럼, 아!빠!" (고마해라, 아들. 동생의 동심을 지켜달라고)

"아빠도 안 들어갔는데? 너네만 거기서 주구장창 레고했잖아!"


아이들의 방에 우리 어른들은 단 한 차례도(사실, 나는 몰래 두번 들어갔지만)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아이들도 보았기에 순순히 물러났다. 진짜 그들이 보기엔 그랬으니까 말이다. 동심이 지켜진 둘째는 기분 좋게 원목 치아보관함과 치아요정의 편지, 그리고 그림책을 꼭 껴안고는 자기의 보물상자에 또 차곡차곡 쌓아넣었다. 아, 책은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ㅋㅋㅋㅋㅋ


그러더니 자기의 또 흔들리는 다른 치아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얼른 달려가 영어로 된 치아요정의 편지를 읽어주었다. 'FIRST'를 강조하며. 두번째는 없다, 아이야. 두번째는 빠지면 그냥 잘 씻어서 지금 받은 그 원목보관함에 넣는 걸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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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파괴자이지만 아직 동심이 그래도 조금은 남아있는지도 모르는 아들이 물었다. "왜 나 때는 없었지?" "아....응....? 하하하. 너...너는 치과에서 의사선생님이 빼주셔서??? 음...그 때 치과에서 선물 받았잖아....(말끝흐림)" 다행히 아들은 그냥 넘어갔다. 넘어가줘서 고맙다,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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