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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심경(雪山心境)

설산의 절경 앞에 산의 마음을 받아 내려왔다

by 늘해랑



설 연휴 주간이다. 명절이라는 이유로 전국이 시끌벅적하다. 멀리 사는 가족들을 만나러 가기도, 아니면 긴 연휴를 기회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올해 우리 가족은 이 두가지를 함께 하기로 했다. 경기 북부에 위치한 우리 집에서 남쪽 끝 부산에 있는 아이들의 외가까지 가는 길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보통 중간지점 도시에서 하루 찍고 내려간다. 이번 설 명절은 그 중간도시 여행일정을 조금 더 길게 잡았다. 그렇게 우리의 설 연휴 주간 여행이 시작되었다.


첫 일정만 정하고 출발했는데, 월요일 날씨가 어마어마하다고 했다. 뭐 얼마나 춥겠어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어마어마할 줄은 몰랐다. 덕유산 자락에서 새하얀 눈을 맞이하고는 마냥 신났다. 눈토끼마냥 쌓인 눈을 뽀드득 뽀드득 밟고 굴리며 신나게 뛰어다녔다. 그리고 이어 급 결정한 대둔산 자락에서 대설을 맞이하고 아주 놀란 토끼눈이 되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 맞이한 바깥 풍경은 나의 3X인생 가장 두툼하게 쌓인 눈이었다. 케이블카 타고 전망대는 고사하고 이 곳을 벗어날 수 있을지도 의문일 정도의 대설이었다.


놀랍게도 케이블카는 운행을 멈추지 않았다. 오전 10~11시 즈음, 차위에 쌓인 눈더미를 치우러 간 아빠와 아이들이 지금은 탈 수 있을 것 같은데 한 번 가보자고 했다. 호텔 바로 뒤편이 탑승장이라 너무 좋았다. 매표소에서는 바람이 너무 세면 운행을 중지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상행선을 타고 올라갔다가 혹시나 멈추면 걸어 내려와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 그러려나? 일단 가봐! 정신으로 우리는 매표를 하고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로 올라갔다.


구름다리와 삼선계단이 유명하지만, 등산까지 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우리의 목표는 오로지 딱 전망대 거기까지 였다. 욕심내지 않는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데, 하얗게 덮인 바위산의 모습이 감탄을 자아냈다. 정말 하얀색과 검은색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낼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신랑이 말했다. "옛날 사람들이 이렇게 산 속에 앉아있으면서 시를 읊었다는 게 이해가 된다." 고 했다. 그러게. 가만히 앉아 바라만 봐도 시간이 그냥 흐를 것 같고, 그러다 문득 붓을 들어 줄줄 명문을 쏟아낼 것만 같았다. 비록 오늘의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말이다.



대둔산.png



대둔산에서 내가 받은 그 감탄을 나누고자 한다. 수묵화를 그려보고 싶게 만드는 절경이다. 명문을 쏟아내고 싶게 만드는 장관이다. 그런데 아직 경지에 오르지 못한 나는 시 한 구절도 뱉어내지 못했다. 이것이 너무 슬펐다. 그저 감탄만 하고 내려왔다.


이대로는 또 무언가 아쉬워서 오늘은 나의 친구, 나의 보조작가 챗GPT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깊은 겨울 산 기암절벽 아래 절경을 마주한다.

오로지 흑과 백으로만 이루어진 눈 앞의 풍경에 마음이 편해진다.

머리 위로는 눈송이가 춤을 추고, 발 아래로는 은빛 산맥이 나를 받쳐주니,

땅과 하늘이 맞닿은 이곳에서 나아갈 마음을 얻는다.

이 내용으로 한시를 만들어 줄 수 있겠니?


물론입니다. 당신의 묘사에 어울리는 한시를 지어보았습니다.

雪舞空巔抱玉山 (설무공전포옥산), 눈송이는 하늘 끝에서 춤추며 옥 같은 산을 감싸고,

銀峰萬壑映清寒 (은봉만학영청한), 은빛 봉우리와 만 갈래 골짜기가 맑고 차가운 기운을 비추네.

黑白虛實同天地 (흑백허실동천지), 흑과 백의 허실이 천지와 함께 어우러지니,

心隨景遠志悠然 (심수경원지유연), 마음은 풍경을 따라 멀리 나아가고 뜻은 한가로이 흐르네.

이 시는 눈 덮인 산의 절경과 당신의 마음속 평온함을 담아낸 표현입니다.


와, 챗gpt야, 오늘도 고맙구나. 한자를 잘 모르는 나이기에 그저 복붙을 했지만 나의 글에 맞게 이렇게 멋지게 한시를 만들어주다니 정말 대단하다. 오늘의 글을 뿌듯하게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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