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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쟁이

욕심쟁이가 어때서

by 늘해랑



출근길에 오랜만에 차를 이용하지 않고 버스를 탔다. 조금 더 걷고 조금 더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버스로 출근하면 좋은 점이 있다. 운전대를 잡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 다행히 버스에 앉을 자리가 있었다. 아주 조금 남은 드라마를 마저 볼까 하다가 책을 꺼냈다. 요즘 너무 책을 읽지 못했다.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은 가득히 채워져 있는데 시간이 없었다. 가방을 고쳐 안고 책을 꺼냈다. 오늘 내가 집어 나온 책은 황보름 작가님의 에세이, <단순 생활자>였다.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의 작가님으로 알고 있던 작가님이라 읽어봐야지 했던 책이었다. 드디어 책을 펼칠 수 있게 되다니 살짝 설레기까지 했다.


책을 읽으면서 글쓰기에 대한 작가님의 갈증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며칠 전 내가 사용했던 ‘욕심’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작가님은 ‘욕심’이라는 단어보다는 ‘갈망’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渴望(목마를 갈, 바랄 망).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간절히 바람’. 작가님은 정말 글쓰기가 목말라 보였다. 나는 글쓰기에 갈증까지 느끼나? 그 정도는 또 아닌 것 같고. 책읽기를 잠시 멈추고 생각을 뻗어갔다. 내가 썼던 욕심이라는 단어. 欲心(하고자 할 욕, 마음 심). 분수에 넘치게 무엇을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 뭐야. 욕심이라는 단어 너무 부정적으로 설명하고 있잖아. 괜히 부아가 치민다.


욕심이라는 단어도 맥락에 따라 순수한 열망이나 간절함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단순한 탐욕이 아니라 한자어대로 ‘하고자 하는 마음’, 그러니까 ‘잘하고 싶다.’라는 순수한 열정의 마음을 나타나는 긍정적인 느낌으로 풀어갈 수도 있다. 분수에 조금 넘치더라도 이건 현실적인 바람이고 직접 행동으로 이어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진 단어란 말이다. 이루고 싶고 더 노력하고 싶은 마음. 과하지 않게 욕심을 부린다면 성장을 위한 연료가 될 수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갈망까지는 아니어도 욕심이 나는 글쓰기. 타는 듯한 목마름이 아닌 이유는 밥그릇이 아니라 그런가. 배때기가 불러서 그런가. 글쓰기를 좋아하기만 해서 그런가. 아직 글쓰기를 사랑하지는 않는 것일까. 그래도 이런 생각들을 이렇게 풀고 있는 걸 보면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인 건 맞다.


갑자기 어릴 때의 에피소드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고향이 부산이다. 학창 시절을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나의 담임 선생님이 우연히 만난 우리 엄마에게 나는 뭐든지 열심히 하는 아이라며, 내가 ‘애살’이 있는 아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애살’이라는 단어가 무엇인지 몰랐던 나는 엄마에게 처음 들은 그 단어의 느낌이 좋았다. ‘애’가 왠지 ‘사랑 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았다. ‘애살’은 그렇게까지 사랑스러운 단어가 아니라는 것을. ‘샘을 내다’ 할 때의 ‘샘’의 경상남도 방언이라고 했다. ‘샘’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두 번째 의미가 이러하다. ‘자기의 것보다 나은 것을 몹시 부러워하거나 시기하여 지지 않으려 함. 또는 그런 마음.’이다. 이거네. 욕심. 나의 담임 선생님의 눈에 내가 어떤 아이였을지 (초등학교 교사인 나는) 알 것 같다.


아무튼, 아침에 읽은 책과 며칠 전 나의 답답했던 마음이 연결이 되어 이렇게 길게 풀고 나니 살짝은 시원해졌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글쓰기에 욕심이 났기 때문에 성장의 한 계단을 만나게 된거다. 읏쌰! 허벅지에 힘을 딱 주고, 계단을 한 발 딛고 올라서야겠다. 나는 어릴 때도 사랑스러운 ‘애살’ 쟁이, 지금도 순수한 열정의 '욕심'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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