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글을 잘 쓰는 사람인가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 경험을 좋아하는 사람. 뭐든지 일단 해보면 뭐라도 좋겠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그래서 옛부터 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그렇지만 막상 거창한 것은 해볼까 하는 생각만으로 끝나기도 다수였다. 지나고 나 돌이켜보니 해봐서 좋았던 것도 많지만 시도도 해보지 않고 상상만으로 끝내본 것도 많다.
그 중 하나는 바로 '드라마 작가'였다. 드라마를 보며 또 소설책을 읽으며 스토리 속에 숨겨진 복선의 조각을 찾고 이야기를 예상하고 그게 딱 들어맞았을 때의 쾌감. 그리고 작가의 문체를 좇으며 이야기를 따라가다 킬링포인트의 대사와 타이밍을 딱 맞추어 '지금이지!' 먼저 내뱉었을 때의 희열. 마침 누군가가 함께 있을 때면 그 누군가가 날려주는 나를 향한 감탄과 엄지척에 나도 모르게 올라가는 입꼬리, 그 뿌듯함. 이런 감정들이 합해지며 '오, 이정도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살짝의 빈약한 근거있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막상 도전을 하지는 않았었다.
그리고 지난 몇년 아이들과 그림책을 많이 보면서 생각했던 '그림책 작가'. 하지만 이 역시 그냥 아이디어만 몇개 끼적일 뿐 완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6월, 이제는 그래도 시도는 해보자 하며 나름 꾸준히 써내려가 완성한 <그냥, 좋아서 씁니다. 완벽하지 않을 용기로> 라는 48페이지 짜리 미니 에세이집. 자비 출간으로 4부 인쇄. 하하. 정말 그냥 완벽하지 않을 용기로 나의 새 도전의 에필로그로 만들어본 그 미니북. 시작을 해서인가 조금 더 용기가 더해졌는지 이제는 책 한 권을 온전히 내어보는 '작가'를 꿈꾸고 있다.
하지만 사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지 정보를 찾는 곳도 어디인지 모르겠다.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지도 그 누군가도 어느정도로 알려줄 수 있는지도 아무것도 모르겠다. 검색도 잘 못하겠다. 그래서 일단 써보고 있으려고 한다. 총알부터 마련해두지 뭐. 불발탄일지 비비탄일지 실탄일지 아님 대포탄일지. (실탄 이상이면 좋겠다.) 지난 주엔 서점에 가서 책도 사보았다. 도움이 될 책인지 그냥 막연한 이론만 나열해놓은 책인지 다 읽어봐야 알겠지만 책이란건 읽는다는 건 뭐라도 나에게 도움이 될 테니까. 또 이렇게 무모하게 시작해 보며 나를 테스트 해 보련다.
나는 내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거의 매일 일상을 기록하는 창구들에 쉬지 않고 글로 떠들어 댔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잘 쓴 글이 아니고 단지 나의 투머치토커 기질을 내보일 방법의 하나로 사용한 수단으로써의 그저 글자의 나열이라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그걸 말로 다 할 수 없으니 그냥 글로 떠들어 댔던 것이고 단지 그 떠듬의 결과로 기록된 글자의 모음이라고 나의 글을 평가했다. 그 글자의 모음들을 읽어온 사람들이 한 번씩 '니 글 재밌어. 그냥 편하게 따라가며 읽게 돼.' 와 같이 평을 해주어도 쑥스러워 그랬는지 '에이, 초딩일기야.' 하고 웃으며 그 평가를 흘려보냈다.(그 평가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좀 더 나은 글로 나아갈 생각을 했더라면 지금과는 달랐을까?)
그런데 요즘은 좀 달라졌다. 조금 더 나은 글을 쓰고 싶고, 조금 더 탄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고, 그 글을 평가받아 또 더 나아가고 싶다. 나만 보는 나의 기록으로만 남는 글 말고, 내가 쓴 글을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누군가 읽어주고 공감해주고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를 생각해보았다. 타인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적인 글을 잘 쓰는 사람, 글의 구조를 깔끔하게 배치하여 읽는 사람이 이해를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글을 잘 쓰는 사람, 본인이 알고 있는 전문적인 지식을 알기 쉽게 나누어 주는 사람, 서정적인 표현과 아름다운 문장을 사용하여 읽는 사람에게 생생한 감동을 선물하는 사람, 위트있는 문장으로 웃음과 재미를 주는 사람, 탄탄한 구조와 상상력으로 독자에게 상상의 세계를 펼쳐주는 사람, 일상의 포인트를 잘 꺼내 공감되는 글을 잘 쓰는 사람. 지금 나열한 모두가 훌륭한 글을 쓰는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 나열한 모든 능력을 온전히 다 갖춘 글쓰는 이는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중 어떤 글 쓰기 능력을 (조금이라도 더) 갖춘 사람인지 생각해보자. 이 중 하나쯤은 내가 갖추고 있으리라. 그 하나쯤으로부터 시작해서 부족하지만 익혀갈 다른 능력을 더해가며 나만의 글을 써간다면 나도 글을 잘 쓰는 사람이지 않을까 한다. 지금까지 나 자신을 낮추고 하대(!)했다면 지금부터는 나부터 나를 인정해주고 다독여주며 자신감을 가지고 시작해야지. 그래야 내가 쓴 내 글도 그렇게 평가받을테니까 말이다.
나는 어떤 글을 잘 쓰는 사람일까? 내가 쓰고 싶은 내 글은 소소한 포인트에서 찾는 '공감', 재미있는 '스토리' 그리고 '위트'있고 '생생한 표현'이 맛깔나는 그런 글. 지금까지 일상기록으로 써왔던 글과 나름 결이 맞아온 것 같다. 다행히 나는 이러한 기준에서는 글을 못 쓰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나의 등을 떠밀어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일상기록창구에 글을 썼고, 새로운 도전인 창작노트에 첫 커서를 놓고 일단 썼다.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아직 아무것도 모르면서 일단 노트에 아이디어를 싸지르고, 노트북 워드문서를 열어 첫 문장을 써보았다.
조금 전에 읽은 책, <스토리 설계자>의 '그 어떤 부분도 처음부터 완벽할 필요가 없고 그럴 수도 없다.' 라는 문장이 이런 나를 응원해주었다. 형편없이 쓰다가 읽고 고치고 또 쓰고 읽고 버리고 새로 쓰고. 이러한 모든 과정은 일단 써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언갈 시작한 언젠간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될 오늘의 나를 칭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