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입학해 1년을 보냈던 그해, 우리 반 담임선생님이 누구셨는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궁금증으로 남아 있다.
물론 생활기록부에 선생님의 존함이 명시되어 있지만, 같은 반 친구들의 기억 속에는 서로 다른 선생님으로 남아 있었다.
입학 첫날 교실에서 담임 소개를 하셨던 분일 수도, 장기간 우리 반을 맡으셨던 분일 수도, 혹은 2학년 진급 때 우리를 인솔하셨던 분일 수도 있었다.
정확히 몇 분의 선생님이 우리 반을 담임하셨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 기억 속에는 적어도 네 분의 선생님이 머물러 있다.
어느 날, 부담임선생님께서 아침 조례 시간에 들어오셔서 말씀하셨다.
"오늘부터 내가 너희 담임선생님이야. 인사부터 하고 시작하자!"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반 친구들이 내 쪽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쑥스럽게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는 "○○이, 얼굴 빨개진 거 봐." 하며 놀려댔다.
나는 '있다가 두고 보자!'는 눈빛을 보냈지만, 이미 반 전체와 선생님까지 웃고 계셨다.
그럴 만도 했다.
나는 부담임선생님을 좋아했었고, 그 마음이 너무 티가 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피해 다니기도 했는데, 담임선생님이라니.
부담임선생님은 음악을 가르치셨다.
항상 깔끔한 양복 차림에 흐트러짐 없는 모습이 세련되고 젠틀했다.
중저음의 목소리로 '오 솔레 미오(O Sole Mio)'를 부르실 때면, 마치 성악가의 무대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시절 대부분의 선생님은 엄격하고 무서운 존재였지만, 음악선생님은 달랐다.
유머러스한 말투로 우리에게 웃음을 주셨고, 복도나 교무실에서 마주칠 때마다 내 이름을 불러주며 따뜻한 말을 건네셨다.
그런 선생님을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아마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오 솔레 미오'의 가사를 다 외우지도 못한 채 흥얼거리며 다녔고, 선생님이 담당하신 방송반에 들어가 3년간 활동을 하기도 했다.
아마 여기까지는 그 마음이 티 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수업 시간'이었다.
반장의 부재로 부반장이었던 나는 수업 시작과 끝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해야 했다.
선생님 얼굴만 봐도 볼이 빨개졌고, 목소리가 떨리거나 기어들어갔다.
그렇게 나의 마음은 자연스레 들켜버렸다.
실기평가 날, 선생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한 명씩 가곡 '선구자'를 불러야 했다.
'차렷'과 '경례' 두 단어를 외칠 때조차 떨렸는데, 노래를 불러야 한다니, 부담감은 커지고 심장은 두근거렸다.
내 차례가 되어 피아노 옆에 섰지만,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쑥스러움과 민망함에 나도 웃음이 터져 도저히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결국 선생님께 양해를 구해 마지막 순서로 미루었고, 그 사이 마음을 다스렸다.
다시 피아노 옆에 섰을 때, 타종소리가 울렸다.
선생님은 친구들을 교실로 돌려보내셨고, 나를 기다리던 몇몇 친구들만 남아 내 평가를 지켜보았다.
내가 떨고 있다는 걸 아시고 부담을 덜어주시려는 배려였을 것이다.
하지만 떨림의 원인이 바로 '선생님'이었기에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는 주어진 기회에서도 노래를 제대로 부르지 못했다.
성대가 불규칙하게 떨리며 엉뚱한 소리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남은 친구들과 선생님이 웃음을 터뜨렸고, 나는 몇 번의 시도 끝에 결국 선생님과 피아노를 등지고 창문 밖을 바라보며 겨우 노래를 마쳤다.
예상대로 실기 점수는 낮았고, 지필평가에서 만회하기로 다짐했다.
2년이 지나 고3이 되자, 선생님을 조금은 편하게 대할 수 있었다.
얼굴이 붉어지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하는 날들이 많았다.
졸업을 몇 달 앞둔 어느 날, 복도에서 선생님께 인사를 드렸지만 평소와 달리 아무 반응이 없으셨다.
그때의 서운함은 꽤 오래갔다.
그 후로는 일부러 인사를 하지 않는 날들도 있었고, 무표정과 단답형으로 대답하곤 했었다.
지금 돌아보면 선생님께도 사정이 있으셨겠지만, 그땐 그저 서운했고, 마음 한켠이 삐뚤어 있었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집에 가던 중이었다.
창밖을 보던 내 눈에 여고 앞에서 교통지도를 하고 계신 선생님이 들어왔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창문을 열고 '선생님!'이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시간의 간극이 만들어낸 망설임이 반가움을 앞섰다.
그저 창문 밖으로 선생님의 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나는 다시 고등학생으로 돌아가 있었다.
해를 넘긴 어느 날, 용기를 내어 여고로 전화를 걸었지만 다른 학교로 전출을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출 가신 학교로 다시 연락을 해 통화를 시도했지만, 선생님은 나를 기억하지 못하셨다.
짧은 통화였지만, 서운하지는 않았다.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니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래도 선생님의 묵직하고 중후한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반가웠다.
지금은 아마 정년을 하셨을 것이다.
학창 시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했던 선생님은 음악선생님이었다.
비록 몇 달뿐이었지만, 나의 고1 담임선생님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