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임 없이 800번대 문학코너

도서관에서

by 눙디

엄마 곁에는 항상 책이 놓여 있다.

잠시라도 짬이 나면 책장을 펼치신다.

한 권만 읽는 것이 아니라, 이곳저곳에 다른 책들을 두고 동시에 두세 권을 읽기도 하신다.

두께가 제법 되는 책도 이틀이면 다 읽어내시는 날이 많다.

엄마는 종종 읽은 책의 내용을 이야기해 주신다.

마치 오디오북을 듣는 듯 그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나도 그 책을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책 읽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을 늘 품고 살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독립서점에서 책 내용에 끌려 집으로 데려왔던 책들이 방치된 채 쌓여 있는 모습을 보며 스스로를 반성했다.

더는 미루면 안 되겠다 싶어 책장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읽다 보니 속도가 붙어 며칠 만에 방치되어 있던 책들을 모두 마저 읽어냈다.

처음에는 밀린 일을 처리하듯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마음을 흔드는 문장들과 깊은 여운이 남는 구절을 만나면서 책을 덮은 뒤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기도 했다.

마음에 닿은 구절은 필사로 남겼고, 생경한 단어들은 형광펜으로 표시해 두었다.


집에서 도보 15분 거리에 시설이 좋은 도서관이 있지만, 자주 찾지는 않았다.

주로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었기에 집 근처 도서관은 사실상 갈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문득 이유 모를 끌림에 이끌려 도서관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공부하거나 책을 읽고 있었는데, 대부분 연세 지긋한 분들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허투루 보낸 시간들이 떠올라 스스로를 채근하듯 반성하게 되었다.


도서관에서는 2주 동안 일곱 권의 책을 대여할 수 있었다.

읽고 싶었던 책을 검색했지만, 아쉽게도 이미 누군가 빌려간 뒤였다.

나는 대신 800번대 문학 코너로 가서 일곱 권의 책을 골랐다.

엄마가 좋아하는 범죄·미스터리 소설과 내가 읽을 에세이 몇 권.

키오스크로 간편하게 대출을 마쳤지만, 어르신들이 이용하시기엔 조금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엄마는 재미있게 읽은 책의 줄거리를 이야기해 주며 내게 또 다른 책을 권해 주셨다.

나는 형광펜 대신 펜을 들어 필사를 해 나가며 책을 읽었다.


책을 반납하는 날, 엄마와 함께 다시 도서관을 찾았다.

이번에도 800번대 문학 코너에서 엄마는 소설을, 나는 에세이를 골랐다.

그리고 어김없이 일곱 권을 가득 빌렸다.

도서관을 나서는 순간, 엄마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책을 한가득 빌리니 배부르네!"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한껏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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