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에 나물을 뜯는 일부터 가을 들깨를 수확하는 시기까지는 부모님의 농장에 자주 가는 편이다.
8월이 되면서 빨갛게 익은 고추를 살피고 수확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농장을 찾는 횟수도 잦아진다.
그날도 뙤약볕을 피하기 위해 옷차림을 단단히 하고, 고랑 속으로 몸을 숙인 채 고추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붉게 익은 것들만 골라 수확했다.
이제 막 수확을 시작하는 시기라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예쁘게 잘 자란 고추를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아니, 오히려 반가웠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처음 사다 심은 고추 모종들은 줄기가 짙은 갈색으로 변하고 잎이 시들시들해 잘 자라지 않았다.
결국 다시 모종을 사 와 밭에 심어야 했다.
부모님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본 끝에, 그 원인을 알 것 같았다.
겨울 내내 얻어다가 밭에 뿌려두었던 커피 찌꺼기가 화근이 된 듯했다.
두 번째로 심은 모종은 커피 찌꺼기가 덜 뿌려진 곳에 옮겨 심었는데, 늦게 심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라는 속도는 훨씬 빨랐다.
처음 심었던 모종들은 그저 두고 보는 수밖에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갈색빛이나 검은빛을 띠던 줄기가 조금씩 녹색으로 돌아오기 시작했고, 마침내 꽃을 피우더니 고추를 매달기 시작했다.
비록 속도는 더뎠지만, 나름대로 애써 자라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특했다.
수확의 시기가 되자 빨갛게 익은 고추를 매달고, 마치 ‘나 이렇게 잘 컸어요!’ 하고 자랑하는 듯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비닐하우스 바로 앞에는 직사각형의 널찍한 스테인리스 테이블이 있다.
등나무 아래에 있어 그늘이 드리우니 더위를 피하기에 그만이다.
옆에는 우물가도 있어 쉬기 좋은 최적의 장소가 된다.
여름이 다가오면 농장 곳곳에서 꽃들이 피어나는데, 나는 농장에 갈 때마다 꽃을 꺾어 화병에 꽂아 이 테이블 위에 올려둔다.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면서 꽃을 보는 일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된다.
고추를 따놓고 잠시 쉬려고 테이블에 앉아 휴대폰을 보다가 무심코 화병 쪽으로 눈길을 돌렸는데, 화병 위에 툭 튀어나온 무언가가 보였다.
자세히 보니, 청개구리였다.
화병 속에서 얼굴을 내밀고 밖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부모님을 불러 함께 보고, 사진도 찍고, 심지어 말을 걸었다.
"안녕, 반가워! 화병 안이 아늑하니 좋니?"
나는 손을 흔들며 반가움을 표현했고, 눈을 마주한 채 이야기를 건넸다.
그런데도 청개구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모습이 마치 화답처럼 느껴졌다.
이후 농장에 갈 때마다 화병 속 청개구리와 자연스레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며칠째 청개구리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며 아쉬워하셨다.
다음 날, 집 나간 청개구리가 그리우셨던지 매실나무 가지에 앉아 있는 작은 청개구리를 잡아 화병에 넣어 두셨다고 한다.
그런데 또 하루가 지나자, 아버지가 한 톤 높아진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집 나갔던 청개구리가 다시 와서는 작은 청개구리를 내쫓고 떡하니 앉아 있더라."
작은 청개구리의 행방이 궁금했지만, 다시 화병으로 돌아온 청개구리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놓였다.
이후에도 청개구리는 가끔 집을 나갔지만, 다행히 이틀에 한 번꼴로는 꼭 돌아왔다.
'청개구리야, 앞으로도 자주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