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찾아왔다.
산자락 곳곳에는 노란빛과 붉은빛이 번지고, 파란 하늘에 몸을 맡긴 채 천천히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며 나는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밭에도 가을이 왔다.
이 시기가 되면 몸과 마음이 바빠진다.
열매와 곡식이 익어가는 속도에 맞춰 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경을 써야 하는 작물은 들깨다.
여름 내내 햇볕을 잘 견디며 자라준 들깨가 영글어 가는 중이다.
태풍이라도 한번 지나갔다면 쓰러진 줄기들을 일으켜 세우느라 아버지께서 큰 고생을 하셨을 텐데, 올해는 다행히 그런 일이 없었다.
허리가 좋지 않은 아버지를 생각하면, 다행스럽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10월 중순부터 며칠 동안 들깨 베는 작업이 이어졌다.
들깨가 내 키를 훌쩍 넘길 만큼 웃자라 있어 베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나는 그 일을 많이 돕지 못해 마음이 무거웠다.
낫으로 한 번에 힘껏 베어야 씨알이 흩어지지 않는다는데, 나는 아직 요령이 없어 서툴다.
깨알 하나라도 땅에 떨어질까 조심스레 줄기를 베어냈다.
베어낸 깻단을 눕혀 햇볕에 말리는 데에는 열흘 정도가 필요한데, 이때는 날씨가 정말 중요하다.
비라도 내리면 말리는 기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하루에도 여러 번 하늘을 올려다보며 날씨를 살폈다.
들깨를 터는 날은 베는 날보다 며칠 더 작업이 이어졌다.
새벽에 깻단에 내려앉은 이슬이 마르고, 해가 넘어가기 전까지만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정오쯤 시작해 오후 4시가 되기 전에는 서둘러 일을 마쳐야 했다.
바닥에 펼쳐놓은 큰 작업천 위로 깻단을 나르는 일은 엄마와 나의 몫이었다.
갓난아이를 품듯, 들깨가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옮겨두면 아버지가 도리깨로 깻단을 내리치고, 우리는 재빨리 뒤집어가며 일을 이어갔다.
엄마는 도리깨로 타작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작년보다 더 힘에 부쳐 보인다고 걱정하셨다.
내년엔 들깨를 조금만 심자고 약속을 받아내지만, 나는 알고 있다.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그랬듯이 아버지는 결코 이 땅을 쉬게 두지 않으리라는 것을.
타작이 끝나면 엄마는 어레미로 들깨의 잎과 줄기, 깻송이들을 부지런히 걸러내셨다.
어레미 구멍보다 작은 알갱이들이 걸러지긴 했지만, 그 안에는 아직 온전한 들깨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키에 들깨를 가득 담아 커다란 선풍기 바람에 날리내기 시작하셨는데, 몇 해를 보아도 늘 신기하다.
들깨는 제자리에 떨어지고, 검불들은 바람에 실려 저 멀리 날아가 떨어지니 말이다.
그 뒤로 엄마는 들깨를 맑은 물에 담가 헹구고, 또 헹구어 흙과 불순물을 걸러내기를 반복하셨다.
흙 한 톨 남지 않은 깨끗한 상태가 될 때까지.
천 위에 씻은 들깨를 얇게 펼쳐 널고, 긴 막대로 깨알들이 뭉치지 않도록 굴려주었다.
들깨를 말리는 이 순간, 햇볕이 얼마나 귀하고 고마운 존재인지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여름에는 깻잎을 따서 쌈채소로 즐기고, 소금과 간장으로 절여 사계절 내내 밑반찬으로 밥상에 오른다.
들깨가루와 들기름은 엄마가 만드는 모든 음식에 빠짐없이 들어가는 양념이자 고명이 된다.
매 끼니 맛있게 먹으면서도 정작 들깨의 농사 과정을 쉽게 잊어버리곤 했다.
씨앗을 뿌리는 일부터 다시 수확의 씨앗을 얻기까지, 그 모든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음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