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고종사촌 누이가 지척에 살고 계신다.
사실 나는 고모님과 특별한 왕래가 없어 기억 속에 선명히 자리 잡은 분은 아니었지만, 부모님과는 오래도록 마음을 나누며 지내오신 듯했다.
내가 '고모'라는 존재를 새삼 인지하게 된 건, 해마다 들깨와 고춧가루를 주문하신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부터였다.
어느 날 무심히 고모님은 어떤 분인지 여쭤보자, 엄마는 칭찬 보따리를 한가득 풀어놓으셨다.
엄마에게 들려준 고모님은 한마디로 '멋쟁이 어른'이었다.
여든을 훌쩍 넘긴 연세에도 총기가 또렷하고 영민하시며, 배울 점이 많은 지혜로운 분이라는 것이었다.
흐트러짐 없는 꼿꼿함, 명확한 사리 분별력, 누구에게도 신세 지는 것을 경계하는 단단한 자존감까지.
그런 고모님의 성품은 매해 돌아오는 수확철이면 더욱 선명했다.
시집간 딸과 사돈댁에 보낼 들깨와 고춧가루를 준비하실 때면 "좋은 것을 보내야 한다." 하시며 언제나 남보다 일찍 서둘러 연락을 넣으신다고 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들깨 주문 전화가 걸려왔고, 이번에는 엄마와 내가 직접 가져다 드리기로 했다.
보통은 부모님께서 다녀오시는데, 그날은 아버지가 다른 일정으로 바쁘셨던 터라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내겐 세 번째 고모님 댁 방문이었다.
차에는 들깨와 함께 맷돌호박 세 덩이, 갓 뽑은 무 서른 개를 포대에 담아 실었다.
수확철이면 늘 덤을 챙겨드린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많은 걸 혼자 어떻게 드실까' 싶어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호박은 죽으로, 무는 썰어 말렸다 반찬으로 드실 거라고 하셨다.
설명을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들깨보다 덤이 더 많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아버지는 흙 한 톨이라도 바람에 날아갈까 걱정하실 만큼 욕심이 많으신 분인데 엄마는 참 욕심이 없다.
엄마가 시집와서 보니, 광에 감자가 가득 쌓여 있길래 '저 많은 걸 누가 다 먹나' 싶어 셋방 사는 이웃에게 조금씩 나눠드렸다 한다.
그날 저녁, 할머니께서는 "광게 있는 감자는 장에 내다 팔 것들"이라고 하셨다고 한다.
이제는 엄마와 내가 웃으며 꺼내는 옛이야기다.
지금도 엄마는 밭작물이 풍성하다 싶으면 주위에 나누느라 바쁘다.
아버지 역시 이런 나눔에는 아끼지 않으신다.
부모님의 모습이 그야말로 부창부수다.
차에 오르기 전, 엄마가 여러 색 국화를 꺾어 한 아름 꽃다발을 만드셨다.
며칠 전 집에 가져다 놓은 꽃이 아직 시들지 않아 물었다.
"엄마, 꽃은 왜?"
"가져다 드리려고 하지."
"고모님께? 꽃 좋아하셔?"
"얘는, 여잔데 당연하지."
나는 내 질문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뒤늦게 깨닫고 웃었다.
"항상 이렇게 가져다 드렸어. 너무 좋아하시거든."
고모님 댁으로 가는 길, 엄마의 말에 폭소가 터졌다.
"양파가 잘 됐으면 양파도 좀 가져다 드리면 좋은데."
엄마의 넉넉한 마음은 잘 알고 있어 속으로만 이야기했다.
'엄마, 이 정도면 이미 충분해.'
퇴근 시간 정체를 뚫고 도착하니, 고모님이 밖에 나오셔서 기다리고 계셨다.
여기까지 가져다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맷돌호박을 보시곤 작년에도 맛있게 먹었다며 올해도 잘 먹겠다고 인사하셨다.
무거운 무 포대를 보시곤 "뭘 이렇게 무겁게 가져왔느냐"라고 손사래를 치셨지만, 입가에 번진 미소에 내 마음도 덩달아 풍요로워졌다.
고모님을 가장 기쁘게 한 건 엄마가 준비한 국화 꽃다발이었다.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꽃다발을 품에 안으셨고, 그다음엔 꽃향기를 깊게 맡으셨다.
"향이 너무 좋아. 병에 꽂아 둬야겠네!"
소녀 같은 모습을 보니, 정이라는 게 거창한 게 아니라 이런 소박한 마음의 나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모님은 깨 값을 치르시고는 내게 커피 우유 두 개를 건네셨다.
잘 마시겠다고 인사하고 차에 오르려는데 고모님이 옆 좌석 엄마의 외투 주머니에 슬그머니 손을 넣으며 말씀하셨다.
"집에 가는 길에 짬뽕이라도 사 먹어!"
엄마는 손사래를 치며 한사코 거절하셨고, 고모님은 주머니에서 손을 못 빼게 힘을 꽉 주고 계셨다.
몇 차례에 걸친 두 분의 정겨운 실랑이에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고모님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출발하거라"라며 차문을 후딱 닫아버리시고는, 차에서 멀리 떨어져 손짓으로 얼른 가라고 재촉하셨다.
출발한 뒤 엄마는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세 장을 꺼내 만지며 미안해하셨다.
집 마당에 있는 감나무에는 올해 유난히 감이 주렁주렁 열렸다.
다 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라 틈틈이 장대로 잘 익은 감을 따기 시작했다.
엄마는 그중 흠집 없는 예쁘고 큰 감만 골라 박스를 채우셨다.
그러곤 아버지께 형님 댁에 가져다 드리라고 하셨다.
아마 그 상자 밑바닥에는 작년처럼 3만 원이 담긴 하얀 봉투가 살포시 놓여 있을 것이다.
나눔을 통해 삶의 풍요를 배우는, 마음 따뜻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