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한 해

by 눙디

공부나 일, 혹은 그 둘을 병행하며 쉼 없이 달려온 나는 올해만큼은 작정하고 쉬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단 며칠도 백수였던 적이 없던 터라, 올 한 해의 목표는 아예 '무념무상'으로 정했다. 3월에 시작한 이 휴식이 벌써 10개월째다. 휘게(Hygge)와 욜로(YOLO) 사이 어디쯤, '쉼'이라는 이름 아래 그냥 그런대로 시간을 보내보기로 했다.


2년 전 10월, 모든 사람에게 한 번씩 찾아온다는 코로나19에 결국 나도 걸리고 말았다. 하필 부서에서 매우 중요한 일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 처음 해보는 업무였지만, 그만큼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퇴근 후에도 일을 집에 가져와 자정이 넘도록 매달리는 날이 많았으나, 결국 마무리를 짓지 못한 채 격리되어야 했다. 왜 하필 이 시기에 이런 일이 생긴 건지 화가 치밀어 올랐고, 벅차오르는 울분을 주체하지 못해 울기도 했다. 책임이라는 무게를 온전히 짊어지지 못한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고, 한동안 자괴감에 빠져 지냈다.


사람마다 증상이 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다. 가끔 앓던 감기몸살보다는 조금 더 아픈 정도였다. 일주일이 지나자 대부분의 증상은 사그라들었지만, 문제는 목소리였다. 목소리가 도무지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찾은 이비인후과 의사는 역류성 식도염 때문이라며 약을 처방해 주었다. 나는 처방받은 약을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챙겨 먹으며, 목소리가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목소리는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리 목소리를 끄집어내려 해도 원하는 만큼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심한 목감기를 앓는 사람의 쉰 목소리, 그 이상이었다. 생각하고 내뱉는 모든 말들이 입안에서 꼬여 발음은 엉망이 되었고, 사람들은 내 말을 듣기 위해 귀를 바짝 기울여야만 했다. 그 와중에 통증이 없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었지만, 기를 쓰고 말을 많이 한 날의 끝자락엔 어김없이 통증이 따라왔다.


이대로 목소리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무섭고 불안한 마음이 엄습했다. 주변에는 코로나 후유증으로 호흡기나 신경계 증상을 겪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나 역시 후유증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하자 신경은 점점 날카로워졌다. 병원을 다시 찾아 조심스레 가능성을 물었지만, 의사는 단호하게 선을 그으며 나를 안심시켰고 다시 똑같은 약을 처방해 주었다. 그렇게 '목소리를 잃은 사람'으로 두 달을 살고 나서야, 비로소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힘주지 않아도 목소리의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었고, 발음이 뒤틀리지 않으니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할 필요도 없었다. 머릿속 생각을 여과 없이 밖으로 꺼낼 수 있다는 사실이 눈물겹게 기뻤다. 심리적인 안정감이 찾아왔고 정신은 더욱 또렷해졌다. 불편했던 기능 하나가 회복되었을 뿐인데,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그 기분을 어떻게 다 형언할 수 있을까.


수업 시간, 듣기 불편했을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준 학생들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꼈다. 오랫동안 이어진 나의 불편함을 이해하고 걱정해 준 아이들에게 미안함과 감사함이 교차했다. 또한, 내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마주칠 때마다 안부를 묻고 배려해 준 동료 선생님들도 계셨다. 덕분에 수업 교환을 할 수 있었고, 병원 진료도 무리 없이 받을 수 있었다. 평생 잊지 못할 따뜻한 호의였다.


그리고 이듬해 4월.

살랑이는 봄바람에 따스함이 묻어나던 어느 날, 나는 또다시 목소리를 잃고 말았다.




몇 달 만에 다시 찾은 병원에서는 작년과 똑같은 병명을 말하며 약을 처방해 주었다. ‘또다시 두 달 동안 목소리를 잃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불안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작년과 증상이 판박이인 걸 보니 분명 코로나 후유증일 거라 확신하며 다시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여전히 같았다. 다만, 내시경 후에 덧붙인 의사의 한 마디가 나를 조금 안심시켰다.

"인후두부 상태는 아주 깨끗합니다. 별문제 없어 보이네요."


결국 한 달쯤 지났을 무렵, 확실한 답을 찾고 싶어 대학병원을 찾았다. 다행히 기존 진료 기록 덕분에 소견서 없이도 빠르게 검사를 받을 수 있었고, 드디어 진짜 병명을 알게 되었다.

'기능성 발성장애'. 처음 듣는 생경한 병명보다 나를 더 당황하게 만든 건 그 원인이었다. 긴장과 스트레스가 주된 원인이라는 것. 그 말을 듣는 순간, 복잡한 미로를 헤매다 빠져나온 듯했다.


돌이켜보니 작년 10월, 나는 업무로 고단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부서의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잘 해내고 싶다는 욕심과 책임감에 잔뜩 날이 서 있었고, 그 모든 긴장이 고스란히 스트레스가 되어 목으로 터져 나온 모양이었다.

올해 4월, 다시 목소리가 잠겼던 이유도 분명했다. 당시 13살인 반려견이 큰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노견이라 수술을 견디지 못할까 봐, '혹시나' 하는 무서운 생각에 며칠 밤낮을 목놓아 울었다. 반려견과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 시간이 얼마나 마음을 갉아먹는 고통이었는지, 그리고 내게 얼마나 큰 스트레스였을지를.

원인만큼 당황스러웠던 건 치료 약이 따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약 대신 일주일에 한 번, 30분씩 받는 '음성 치료' 3회 처방이 전부였다. 그렇게 치료를 받으며 또다시 두 달이 지나서야 겨우 내 목소리를 되찾았다.




하지만 돌아온 목소리는 그리 오래 머물지 않았다. 같은 해 7월, 두 팀의 여행 일정을 연달아 소화하던 중 목소리가 다시 가라앉기 시작했다. 평소 여행을 워낙 좋아했던 터라, 이게 스트레스일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목소리는 점점 더 낮게, 더 작게 갈라져 갔다. 설상가상으로 여행 중에 피싱 피해까지 당하며 나는 온전한 스트레스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말았다. 7월 말에 시작된 증상은 그해 12월 말이 되어서야 겨우 끝이 났다.


세 번의 증상을 겪는 동안, 나는 같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교과 수업은 물론 방과 후 수업까지, 내 상태가 어떻든 책임감을 느끼며 아이들을 지도하고 싶었다. 1학년 때 교과 교사로 만난 아이들을 2학년 때는 담임으로 만났고, 이제는 3학년까지 함께 올라 진학 지도와 졸업까지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문득 겁이 났다. '해가 바뀌고 또 똑같은 일이 생기면 어쩌지?' 더 이상 아이들에게 미안한 일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책임감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나는 과감히 한 해를 쉬어보기로 했다.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니, 정말 '무념무상'으로 지내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온전히 내 목소리로 말하며 지낸 지 어느덧 10개월째다.

목소리를 잃고서야 알게 되었다. 내 몸이 내게 하고 싶었던 말은, 정작 나 자신을 돌보는 데 더 이상 소홀하지 말라는 당부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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