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크루즈 성당
왕랑시장을 둘러본 뒤, 다음 목적지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산타크루즈 성당까지는 도보로 약 40분.
큰길을 따라 걸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시장 어귀를 벗어나자 작은 카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냥 지나쳤다가 다시 발걸음을 되돌린 것은, 잠시 쉬어가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카페 문을 열자 주인이 환하게 맞아주었지만, 아쉽게도 테이블은 없었고 테이크아웃만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잠시 머뭇했지만, 카페의 분위기에서 커피 맛이 궁금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기다리던 중, 벽면에 붙은 세계 각국의 지폐들이 시선을 끌었다.
그 중 천원짜리 한 장이 반가웠다.
이곳의 커피는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압력을 이용해 바로 추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칵테일 쉐이커에 에스프레소를 넣어 거품을 낸 뒤 얼음과 물을 채운 컵에 조심스럽게 부어준다.
풍성하게 올라온 거품층이 인상적이었다.
카페 밖으로 나와 한 모금 머금었을 때, 깊고 묵직한 다크 로스팅의 향이 입안을 채웠다.
카페인 농도도 제법 강했다.
카페인에 약한 나는 절반만 마셨지만, 특별한 커피 한 잔을 만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룬사원 근처에 도착하자 전통 복장을 대여해주는 가게와 헤어·메이크업을 해주는 미용실, 그리고 사진관들이 줄지어 있었다.
주로 외국인들이 이용하였지만, 태국의 문화를 직접 경험하며 들뜬 표정을 짓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얼굴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마치 경복궁 앞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외국인들이 즐거워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성당 근처에 이르렀을 때, 구글 지도는 길이 없는 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어쩔 줄 몰라 하던 순간, 근처를 지나던 주민이 눈빛으로 내 목적지를 물었다.
성당 사진을 보여주자, 지도에 표시된 길 대신 다른 골목으로 걸어가라고 손짓해 주었다.
좁은 골목으로 접어드는 입구에는 성당 방향을 알려주는 작은 안내판이 있었고, 그 길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골목은 비록 좁았지만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다양한 건축 재료로 지어진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특히 대문들이 유난히 정겹고 사랑스러웠다.
스페인 프리힐리아나에서 알록달록한 문들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던 기억이 잠시 스쳤다.
몇 곳의 상점들 중에는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빵을 사가는 동네 빵집도 있었지만, 한 봉지를 사면 아마 저녁을 거르게 될 것 같아 그냥 지나쳤다.
겉보기에는 특별하게 보이지 않는 빵들이었기에 아쉽지는 않았다.
그 골목 끝에서, 포르투갈어로 '성스러운 십자가'를 뜻하는 산타크루즈 성당(Santa Cruz Church)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듯한 순간이었다.
1770년경, 태국 왕이 내어준 땅 위에 포르투갈계 가톨릭 공동체가 처음 이곳에 성당을 세웠다고 한다.
낯선 땅에서 신앙을 지키고자 했던 이민자들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을지, 그 시대의 시간들이 고요히 느껴지는 듯했다.
지금의 모습은 1913년부터 3년간 재건을 거쳐 새롭게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성당은 크지 않았다.
연한 분홍빛 외벽 위로 진한 핑크색 돔이 올려져 있는 모습은 아담하면서도 사랑스러웠다.
베트남 다낭의 핑크 성당이나 호치민 떤딘 성당처럼 이 산타크루스 성당 역시 여행자들 사이에서 충분히 랜드마크가 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느꼈다.
더군다나, 이 유럽풍 건축물이 강변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낭만적인가.
아쉽게도 성당의 문은 굳게 닫혀 있어 내부를 직접 확인해 볼 수는 없었다.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으로 스며드는 빛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유럽풍으로 섬세하게 장식되어 있을 내부 구조는 또 얼마나 고풍스러울까?
그 모습을 직접 눈에 담지 못한 아쉬움이 밀려왔다.
성당 앞에 서 계신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상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고, 골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