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수도, 방콕(Bangkok)_6

딸링찬 수상시장 그리고 썽크렁 수상시장

by 눙디

전날 미처 가보지 못했던 딸링찬 수상시장(Taling Chan Floating Market)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기왕이면 가까운 거리에 있는 썽크렁 수상시장(Song Khlong Floating Market)도 함께 둘러볼 생각이다.

어제 무료 셔틀버스에 함께 탔던 사람들이 썽크렁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고 궁금증이 생겼는데, 오늘 일정에 자연스레 넣을 수 있어 잘됐다고 생각했다.


랏마욤 수상시장을 다녀온 후 숙소를 카오산 로드 근처로 옮겼다.

카오산 로드에서 목적지 인근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는 걸 알고, 오늘은 버스를 타고 이동해 보기로 했다.

오전 10시 정각, 에어컨이 장착된 79번 버스에 올라탔다.

시장 인근 버스정류장에 내려 좁은 골목 방향으로 걷다 보니 집들이 드문드문 자리한 작은 마을이 나타났고, 주민들은 집 울타리 안에서 소박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 마을 어딘가에서 예상치 못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낡은 철도였다.

나무 위에 레일이 위태롭게 올려져 있었고, 흙바닥이 아닌 강물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었다.

녹이 슬어 붉은빛을 띠는 철길 옆으로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철길을 보며 지나온 세월을 떠올리고, '오래된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가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걸음 더 옮기자, 이번에는 상당히 높게 자란 바나나 나무 사이를 재빠르게 뛰어다니는 청설모가 보였다.

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움직임이 워낙 빨라 겨우 동영상만 담을 수 있었다.

동영상조차 찍히기 싫은 듯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는데, 뜻밖의 만남이라 참 반가웠다.


골목은 좁고 구불구불했지만, 안내를 해주는 작은 현수막이 걸려 있어 길을 헤매지 않을 수 있었다.

더군다나 한국어 안내까지 있어 얼마나 반갑던지.


카오산 로드에서 버스를 타고 시장 앞까지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35분 정도였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장 입구에는 꽃과 모종, 묘목 등을 파는 상점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태국에 오면 다양한 꽃을 만날 수 있어 늘 즐겁다.

이번에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처음 보는 색의 장미였는데, 밝은 인디핑크에 가까운 색감이 정말 예뻐 사진을 한 장 남겼다.


어제 다녀온 랏마욤 시장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랏마욤은 현지인과 외국인이 한데 어우러져 발 디딜 틈도 없이 북적이는 시장이라면, 딸링찬 시장은 더 로컬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시장 내부는 무척 깔끔했고, 양옆 노점에서는 파는 음식들도 정갈하게 포장이 되어 있거나,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었다.

북적임은 덜했지만, 한쪽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전통 악기 연주가 이어져 마음이 한결 여유로웠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실외 이발소에서 머리를 자르거나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만약 미용실이었다면 나도 머리를 단정히 다듬고 싶었을 것 같다.

수상시장이지만, 보트를 타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였다.

대신 먹거리와 식당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오렌지 주스를 사서 그 자리에서 세 모금에 나눠 마셔버렸고, 좋아하는 패션프루트 주스도 한 병 사서 저녁쯤 마시려고 아껴두었다.


이제 썽크렁 수상시장으로 향하기 위해 큰길로 나왔다.

느릿한 걸음으로 10분도 되지 않아 도착했다.

시장이 도로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으면 눈에 잘 띄었겠지만, 딸링찬 사원(Wat Taling Chan)의 안쪽으로 위치해 있어 찾아 들어가면서도 '내가 맞게 찾아온 건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나무에 새겨진 시장 이름을 보는 순간 안도할 수 있었다.


시장 이름 아래에는 사슴 조형물이 놓여 있었고, 위쪽에는 색색의 바람개비들이 바람을 타고 연신 돌고 있었다.

썽크렁 시장은 좀 전에 다녀온 딸링찬보다는 규모가 작고 시장을 찾은 사람들도 적었지만, 한쪽에서는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곳곳에 바람개비가 장식되어 있어 아기자기한 느낌이 들었다.

시장 바닥의 타일까지도 정성스럽게 꾸며져 있어 더 깨끗하고 세심한 인상을 받았다.


음식 종류는 딸링찬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상인들이 눈만 마주쳐도 환하게 미소를 건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것은 호객행위와는 차원이 다른, 친근함이었다.

특히 시장 옆으로 흐르는 강줄기가 참 마음에 들었다.

강폭이 넓고 물이 깨끗했으며, 유유히 흘러가는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다.

이곳 역시 보트를 타려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점심시간에 가까워 식사하는 사람들만 눈에 띄었다.


시장을 나와 사원 입구에 다다랐을 때, 왼편으로 벽화가 눈에 들어왔다.

벽화 위로는 딸링찬 시장 방향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놓여 있었다.

다시 딸링찬으로 갈 이유는 없었지만 궁금해서 그 길로 걸음을 옮겼다.


좁은 골목길 양옆으로 벽화가 그려져 있었고, 바닥에는 작은 화초들이 심어져 있었다.

깨끗하게 정돈된 골목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딸링찬 시장의 입구로 이어졌다.

썽크렁 시장으로 향하는 이런 벽화 골목이 있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이 길로 왔겠지만, 우연히라도 지나오게 되어 오히려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카오산 로드로 돌아가는 버스를 검색하니 다행히 근처에서 탈 수 있는 노선이 있었다.

구글 지도에서는 금방 버스가 올 것처럼 표시됐지만, 내가 타야 할 버스만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늘 하나 없는 38도의 열기 속에서 인내심을 시험받듯 버스를 기다렸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어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조차 없었다.


길 건너 복싱장에서 사람이 나왔다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실례를 무릅쓰고 고개를 내밀어 이 정류장이 맞는지를 여쭈었는데 맞다고 했다.

식사 중인 듯해 죄송한 마음으로 감사 인사를 드리고 돌아섰는데, 그분이 다시 나오셔서 휴대폰으로 버스를 확인하며 "곧 올 거예요. 조금만 기다리세요.”라고 말해주셨다.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잠시 뒤 멀리서 버스가 오자 그분이 "저 버스 타세요!"라며 손짓해 주었다.

나는 재빨리 길을 건너 그에게 아껴두었던 패션프루트 주스 한 병을 건네고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그렇게라도 감사한 마음을 전할 수 있어 다행이었지만, 마음을 전하기엔 부족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뜻밖의 순간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게 된다.

그럴 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방법이 없으면 오래도록 미안함이 남곤 한다.

하지만 오늘은 아주 작은 것이지만 감사한 마음을 전할 수 있었고, 덕분에 마음은 따뜻하고 기분까지 좋은 하루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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