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시립 도서관
카오산로드와 가까운 위치에 방콕 시립 도서관(Bangkok City Library)이 자리하고 있다.
숙소로 향하는 길에 있어 자연스레 눈길이 닿는 장소였다.
큰 대로변 교차로에 위치한 도서관은 밝은 노란색 외관이 단연 돋보였다.
높지 않은 건물이었지만 단단하고 견고하게 지어진 모습이 올드타운의 분위기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었다.
외출을 마치고 숙소로 들어가던 길, 도서관에 들러 보기로 했다.
1층 인포메이션 데스크에 여권을 내밀어 원데이 패스를 발급받은 뒤, 곧바로 옆의 수하물 보관소에 가방을 맡겼다.
가방의 무게를 내려놓자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부로 입장했다.
도서관 내부는 무척 밝고 생기 있었다.
커다란 창문 너머로 쏟아지는 채광이 공간 곳곳을 환하게 비추어 답답함이 전혀 없었다.
창밖으로 분주히 움직이는 차와 사람들의 모습은 고요한 도서관에 동적인 생동감을 더해 주었다.
정적인 공간일 것이라는 통념을 깨는 신선함이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사는 동네의 도서관이 떠올랐다.
주택과 고층 아파트가 공존하는 동네의 도서관은 도시숲과 근린공원 근처, 차량 통행이 뜸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곳 1층에는 커피숍이 있다.
이용해 본 적은 없지만, 이용객이 적어도 나름 잘 마련된 공간이라 생각해 왔다.
하지만 방콕 도서관의 1층 분위기를 마주하고 나니, 우리 동네 도서관도 카페 대신 열람실이 배치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2013년 방콕이 '유네스코 세계 책의 수도(World Book Capital)'로 선정된 것을 기념해 2017년에 개관한 도서관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자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이해되었다.
그 명성에 걸맞게 곳곳이 아름답고 세련되게 꾸며져 있었다.
특히 철제 구조물을 활용해 1층의 섹션을 분리한 방식은 시원한 개방감을 선사했다.
1층에는 신간 도서 코너를 물론 신문, 정기 간행물, 학술지를 열람할 수 있는 공간이 잘 갖춰져 있었다.
취미나 실용적인 도서(음식, 건강, 여행 등)도 다양하게 비치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시각 장애 이용자를 위해 점자 도서와 오디오북을 제공하는 별도의 구역이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 무척 인상 깊었다.
나 역시 오디오북을 즐겨 듣는 편인데, 몰입감과 접근성이 탁월한 매체라고 생각한다.
M층은 온전히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이었지만, 나는 그곳에서 예상보다 오랜 시간을 보냈다.
놀랍게도 여러 한국 동화책과 그림책이 비치되어 있었다.
요즘은 성인들도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즐겨 읽는데, 나 역시 그러하다.
몇 장만 넘겨도 결말이 예측되는 단순한 이야기일지라도 내가 굳이 찾아 읽는 이유는 분명하다.
다채로운 색을 입은 페이지 속 그림들이 보는 것만으로 기분을 좋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짧은 문장 한 줄이 때로는 깊이 있는 사유를 이끌어내거나 뜻밖의 지혜를 선물하곤 한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잔잔한 울림이 된다.
2층은 종합 자료실로, 다양한 일반 서적들과 외국어 도서 구역이 있었다.
그곳에서 한국어 책들도 만날 수 있었다.
서가 간격이 넓었고, 재질과 형태가 서로 다른 책상과 소파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이용자들이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공간을 찾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앉아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묘한 여유가 느껴졌다.
획일적이지 않은 책상 배치는 오히려 개개인에게 독립적인 공간감을 주는듯해 마음에 들었다.
내가 방문한 평일 오후에는 학생보다는 성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모습은 참 다양했다.
노트북으로 열심히 프로그램 코딩을 하는 젊은 남성, 눈을 감고 아주 작게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젊은 여성,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하는 중년의 남성, 그리고 독서 중 잠에 스르르 빠져드는 노년의 이용자까지.
도서관을 찾은 이유는 모두 다르겠지만, 이미 이들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하나의 일상처럼 느껴졌다.
3층은 태국 왕실과 관련된 자료들을 비롯해 방콕 시정부에서 발간한 공식 자료, 보고서 등을 모아 놓은 공간이었다.
역사적 기록들을 정갈하게 정리해 둔 모습에서 이 도시가 지닌 깊은 시간의 결이 느껴졌다.
숙소로 향하는 길에 도서관을 스쳐 지나치지 않고 들리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방콕 곳곳에 이렇게 많은 도서관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앞으로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가더라도, 도서관은 꼭 들러 보고 싶은 나만의 여행 루틴이 될 것 같다.
그곳에서 한국어 책을 만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