쭐라롱껀 대학교
우리나라에 서울대학교가 있듯, 태국에도 최고 명문 국립대학교가 있다.
그 이름은 바로 쭐라롱껀 대학교(Chulalongkorn University).
방콕에 위치해 있으니 '방콕대학교'라는 교명을 쓰지 않을까 잠시 생각했지만, 라마 5세(쭐라롱껀 대왕)를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이 붙인 이름이라 한다.
카오산로드에서 대학교까지 가는 길을 검색하자 한 번에 갈 수 있는 버스가 나왔다.
에어컨 없이 창문을 열고 달리고, 한국인 여행자들에게는 '8밧 버스'로 통하는 버스였다.
목적지에 따라 거리에 비례해 요금이 정해지긴 하지만, 기본요금이 8밧부터 시작된다.
카오산에서 대학교가 있는 빠툼완(Pathum Wan) 지역까지도 8밧이었다.
가격이 저렴한 만큼 서민들의 발이 되어주는 버스지만, 그만큼의 불편함도 감수해야 한다.
노후된 버스의 엔진 소리는 꽤 크고, 시커먼 매연은 매캐한 냄새를 뿜어낸다.
기름 냄새까지 섞여 있으니 때론 두통이 걱정될 정도다.
창문으로 바깥의 매연이 고스란히 스며들고, 마스크가 없다면 코와 눈, 목이 따가울 것이다.
연신 재채기를 하는 불편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고, 의자가 온전치 않거나 난폭한 운전사를 만나면 목적지까지 조마조마한 마음을 달래야 할 때도 있다.
위험하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에는 자연스레 앞 좌석 손잡이를 꽉 잡게 된다.
그럼에도 버스에서 내리고 타는 사람들을 보다 보면, '그래도 이 버스가 있어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대학교 시절의 일이다.
수업을 마치고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 가던 중 목적지가 가까워져 벨을 누르고 일어섰는데, 비탈길에서 급정거하는 상황이 발행했고, 의자와 봉에 몸을 여러 차례 부딪히며 승차 문의 계단에서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던 사고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끔찍했던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무섭다.
그 일이 있은 뒤로 나는 내려야 할 정류장보다 한 정류장 전에 미리 뒷문 근처로 가서 봉을 잡고 서 있는 습관이 생겼다.
나의 사고를 알지 못하는 친구는 "뭐가 그리 급하냐"며 웃곤 했지만, 내게는 오래된 버릇이 되어 버렸다.
승하차할 때도 잡을 곳이 있다면 반드시 잡는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는 말처럼, 8밧 버스를 탈 때만큼은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코로나 때부터 마스크를 쓰는 것이 익숙해져 매연을 조금이라도 막아주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2025년 11월부터 디젤 차량의 배출가스 기준을 강화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금씩이라도 방콕의 도로 사정이 나아지길 바란다.
버스를 이용할 때마다, 승객의 불편함보다 버스 안내원의 고된 하루가 더 눈에 들어온다.
좁고 불편한 버스 안에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이동하며 승객을 기억하고, 요금을 받고, 잔돈과 영수증을 챙겨주는 모습은 언제 봐도 놀라울 따름이다.
어깨에 멘 둥근 돈통도 가볍지 않을 텐데 균형도 잃지 않는다.
그들의 분주한 손놀림은 경이롭다 싶을 정도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 내 기억에도 버스 안내양(여차장)이 있다.
주로 시내로 나갈 때 엄마와 함께 버스에 오르곤 했는데, 그 시절 버스는 늘 만원이었다.
승하차는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사람들 틈에 끼어 미처 내리지 못한 사람은 소리쳤고, 승차 계단까지 사람이 꽉 들어차 버스를 타지 못한 사람들의 불평이 이어졌던 그 모든 상황을 통제했던 이가 바로 안내양이었다.
안내양은 출입문을 수동으로 열고 닫으며 승하차를 안내했다.
출발을 해도 좋다는 신호를 운전사에게 보낼 때에는 차체를 몇 번 치기도 했고, 때로는 "오라이(all right)"라고 힘차게 외치기도 했다.
정류장 자동 방송과 콜 부저가 생기면서 안내양은 사라졌지만, 그 시절 하늘색 작업복을 입었던 안내양의 씩씩한 모습은 태국 안내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시암(Siam) 근처에 다가서자 버스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서서히 움직였다.
시암은 방콕 교통의 중심지이면서 쇼핑몰이 밀집한 번화가다.
규모가 큰 고급 쇼핑몰인 시암 파라곤을 비롯해 시암센터, 시암 디스커버리, 시암스퀘어 등이 모여 있어 이 정체는 어쩔 수 없다.
버스는 대학교 바로 앞 정류장에 멈췄고, 나는 그곳에서 내렸다.
정문은 아니었지만 다른 입구가 보여 그쪽으로 향했다.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보여 외부인은 입장이 어렵지 않을까 순간 걱정되었지만, 학생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출입하는 모습을 보고 안도했다.
입구 앞에는 알록달록한 꽃다발과 돈다발을 파는 자판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졸업식 때나 볼 수 있는 풍경으로 9월에 졸업식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방문한 9월 29일이 바로 공식 졸업식 기간의 첫날이었다.
1년에 두 번 졸업식이 있는 학기제 학교이지만, 이 시기가 가장 큰 공식 행사라고 한다.
무려 3일 동안 진행된다니 얼마나 큰 행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교내는 흰색 졸업 가운을 입고 졸업을 만끽하는 학생들과 그들을 축하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야말로 축제의 장이었다.
졸업생들과 축하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환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오래된 나무들의 푸르름과 어우러진 그 풍경이 참 보기 좋았다.
공부하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가족들은 묵묵히 응원해 왔을 테고, 오늘은 그 모든 노력이 빛을 발하는 날일 것이다.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논문과 졸업 시험을 준비하던 지난날이 문득 떠올랐다.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지낸 그 시절은 참 힘들었지만, 졸업식 날의 나는 그 모든 고생을 잊은 채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학교는 꽤 넓었다.
1,840,000㎡ 규모라 하지만, 서울대학교(4,109,000㎡)와 비교하자면 큰 편은 아니다.
하지만 방콕의 가장 비싼 상업 지구에 위치해 있으니 여러 가지 제약 속에서도 멋지게 구성된 캠퍼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캠퍼스에는 큰 호수와 울창한 나무들이 자리해 싱그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다양한 디자인의 건물들이 곳곳에 있으며, 고풍스러운 건물들도 눈에 띄었다.
다만 졸업식으로 사람들이 많이 몰린 날이라 통제 구역이 많아 자유롭게 둘러보지 못한 점은 조금 아쉬웠다.
슬슬 배가 고파져 자연스레 학교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현대식 건물로 지어져 있었고, 안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배식 방식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식당 안에는 여러 음식점이 입점해 있었고 각자 주문과 계산을 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그중 한 곳에서 카오 카 무(족발덮밥)을 주문하면서 계란프라이도 한 개 추가했다.
식사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빈 테이블을 찾기 어려울 것 같았지만, 운 좋게도 깨끗하고 넉넉한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눈길을 끄는 장면이 있었다.
식당 안에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는 것이다.
비둘기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니거나 테이블 위를 응시하며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유심히 보니, 떨어진 음식을 노리고 기회를 엿보는 듯했다.
테이블마다 투명한 플라스틱 덮개가 쌓여 있었는데, 사람들은 식사하면서 내내 이 덮개를 열었다 닫았다 하며 비둘기를 경계했다.
다행히 내가 식사하는 동안에는 비둘기가 불편한 상황을 만들지 않았고, 테이블 정리도 직원들이 수시로 해 주고 있어 괜한 걱정을 했나 싶은 생각에 슬며시 웃음이 났다.
식사 후 카페를 찾아갔지만, 카페마다 사람들이 가득 차 있어 커피생각은 접기로 했다.
학교를 떠나기 전, 학교 로고가 프린팅 된 기념품을 사고 싶어 교내 북스토어(Bookstore)를 찾았다.
위치를 찾기 어려워 흰색 가운을 입고 있던 학생에게 물었더니, 친절하게도 직접 건물 앞까지 안내해 주었다.
고마운 마음에 가방에서 쿠키를 꺼내 건네자, 그 학생이 "감사합니다"라며 한국어로 인사하는 것이 아닌가.
한국어를 들을 때마다 느껴지는 반가움처럼, 그 한마디에 나도 "감사합니다"라고 화답했다.
북스토어 안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기념품들이 있었다.
책갈피, 노트, 가방, 옷, 모자 등 여러 제품에 학교 로고나 교명이 새겨져 있어 고르는 재미가 있었다.
한참을 들여다보고 망설였다.
기내용 가방 하나만 들고 온 터라 무게 제한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사고 싶은 것들을 모두 살 수는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다 결국 노트와 파우치 몇 개만 계산하고 나왔다.
날씨도 좋았고, 운 좋게 졸업식 분위기까지 느꼈으며, 학식도 먹고, 기념품도 챙긴 하루였다.
교내 전체를 돌아보진 못했지만, 방콕 도심에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다시 올 수 있는 곳이니 미련은 남기지 않기로 했다.
다음번에 다시 오게 된다면 기념품도 넉넉히 사서 지인들에게도 나눠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