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에서 내가 밥을 먹는 동안, 엄마는 설거지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셨다. 대화는 엄마가 주식 프로그램 뉴스에서 읽었다는 정보에서 시작되었다.
"소금으로 양치하는 게 안 좋대."
"예전에는 칫솔에 소금 묻혀 닦을 때도 있었잖아."
"엄마 어릴 때는 칫솔이 없어서 손가락에 묻혀 닦기도 했었지."
"칫솔이 생긴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나 보네?"
"그렇지. 칫솔만 없었겠니? 이 수세미랑 세제도 없었지."
"수세미 대신 지푸라기를 썼을 것 같긴 한데, 세제 대신에는 쌀뜨물을 썼어?"
"쌀밥을 먹어야 쌀뜨물도 있지."
"아, 그러네. 그럼 뭘로 닦았어?"
"아궁이에 나무 때고 남은 재를 긁어서 쓰거나 연탄재를 썼지."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소금 알갱이가 굵어 치아 표면의 법랑질을 손상시키고 잇몸에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엄마는 방금 읽은 내용을 차근차근 설명해주셨다.
엄마는 평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홈 트레이딩 시스템에 접속하신다. 매수와 매도에만 머무르지 않고 관심 종목의 차트를 비교해 보고, 중요한 내용은 노트에 적어 둔다. 화면 아래로 흐르는 뉴스 자막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흥미로운 제목을 발견하면 기사를 클릭해 끝까지 읽어보신다.
엄마에게 새로운 '앎'은 곧 '즐거움'이다. 그렇게 알게 된 것들은 오늘처럼 대화의 주제가 되고, 어느새 내 안에도 차곡차곡 쌓인다.
돌이켜보면 엄마는 늘 그러셨다. 아침마다 배달되던 신문을 읽다가 유용한 정보나 칼럼을 가위로 오려 내게 건네셨고, 책을 읽다가 도움이 될 만한 페이지를 발견하면 모서리를 접어 보여주셨다. 새로운 것을 배워 하나라도 더 나눠주고 싶어 하는 마음은, 나의 10대 시절부터 지천명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문득 예전 생각이 났다. 세진컴퓨터에서 데스크탑을 사면 무료 교육을 해주던 시절, 엄마는 가방에 노트와 펜을 챙겨 수업을 들으러 다니셨다. 얼마 전 그때 이야기를 나누다 내가 물었다.
"엄마, 그때 컴퓨터 배워서 뭐 하려고 했어?"
"배워서 너희들 가르쳐주려고 했지."
담담한 그 한마디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엄마의 배움은 늘 우리를 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가끔 함께 TV를 보다 자막에 나온 영어 단어를 물어보실 때가 있다.
"비포(before)가 '~하기 전'이라고 했지?"
"응, 맞아. 그럼 애프터(after)는?"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답하신다.
"~한 후에"
호기심 많은 엄마는 내게 묻기도 하시지만, 여전히 알려주고 싶은 것이 더 많은 듯하다. 나는 무언가를 설명해 드리는 시간이 즐겁고, 엄마에게 배우는 순간도 좋다. 하나라도 더 배우고, 그 배움을 다시 내게 나눠주려는 엄마의 모습이 참 좋다. 그리고 존경스럽다. 나도 엄마의 그 배움의 자세를 닮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