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의 히피 마을 '빠이(Pai)'_2

밤부 브리지를 건너는 용기

by 눙디

비가 그치기만을 바랐던 그때, 문득 오늘 한 끼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터미널 근처니까 당연히 식당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숙소 방향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비에 젖지 않도록 우산을 펼친 채 걷다 보니, 오른편에 식당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곧장 우산을 접고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비 때문인지 식당은 한산했고, 인테리어는 통일감 없이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그 어수선함조차 '빠이답다'고 생각하니, 긴장감은 사라지고 느긋함이 밀려왔다.
이곳이, 내가 빠이에 왔음을 느끼게 해 준 첫 번째 장소였다.

테이블마다 서로 다른 테이블보가 덮여 있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테이블보가 깔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메뉴 두 가지를 주문했다.


손님은 나 혼자였다.
음식이 나오는 데는 시간이 걸렸지만, 마치 '느림의 미학'을 알려주듯 기다림 속에 여유가 스며들었다.
나도 그 느긋함 속에 자연스레 스며들었고, 이 음식이 분명 정성스럽게 만들어지고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정갈하게 담긴 음식이 내 앞에 놓였다.
쏨땀(Papaya Salad)이 담긴 그릇은 유난히 귀여웠고, 기다린 만큼 음식은 더욱 맛있게 느껴졌다.


나는 최대한 천천히 식사를 이어갔다. 비가 그쳐야 다시 길을 나설 수 있으니까.

30분쯤 지났을까. 굵게 쏟아지던 빗줄기가 점점 가늘어지더니, 이내 빗방울로 바뀌었다.

이 정도면 우산 없이도 걸을 수 있겠다 싶었다.
길바닥에 고여 있는 물웅덩이를 피해 조심히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계산을 마치고 다시 길 위에 섰다.


버스 터미널에서 숙소까지는 도보로 10분 남짓한 거리였다.
절반쯤 걸어왔을 즈음, 파이강 위로 다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눈앞에 놓인 건, 뜻밖에도 대나무 다리였다.

대나무를 엮어 만든 다리라니...!

비로 인해 불어난 파이강은 물살이 제법 거세게 흐르고 있었다.

대나무 사이사이로 보이는 물줄기를 내려다보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촘촘하지 않은 다리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고, 혼자서도 건너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하물며 나는 지금, 캐리어까지 끌고 있는 상황.

결국 다리 위에 올라서기까지 꽤 오랫동안 그 앞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때, 반대편에서 누군가 씩씩하게 다리를 건너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자 조금은 안심이 됐지만, 여전히 마음은 떨리고 있었다.
그래, 나도 이제 용기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내 다리 위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내 몸무게에 약 10kg쯤 되는 캐리어까지 더해지니, 누군가 먼저 건넌 뒤에야 다리를 건너야겠다 싶어 잠시 기다렸다. 그리고, 조심스레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한 손으론 캐리어를 끌고, 다른 한 손으론 난간을 꼭 붙잡은 채 두 걸음.
대나무를 넘을 때마다 캐리어는 덜컹거렸고, 이대로는 끌고 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어디서 힘이 났는지, 캐리어를 들어 올렸다.
한 손으로 캐리어를 들고, 다른 손으론 여전히 난간을 붙잡은 채 조심조심 걸었다.
너무 무서웠다. 정말로, 이대로 다리가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걷다 보니 결국 강을 건너오긴 했다.

하지만 앞으로 며칠 동안 이 다리를 오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난관은 거기서 끝인 줄 알았다. 하지만 곧 두 번째 난관과 마주하게 됐다.

아스팔트를 바란 것도 아니었다. 시멘트 바닥이라도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눈앞에 펼쳐진 건 비에 질퍽해진 흙길이었다.
땅은 캐리어를 끌 수 없을 만큼 질척거렸고, 다리를 건너며 캐리어를 들었던 무게 탓에 허리는 욱신거렸다.

이 길을 또 캐리어를 들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걸어서 10분 거리라 멀지 않다 믿고 예약했던 숙소는, 이 순간 너무도 멀게 느껴졌다.


숙소 앞에 다다랐을 즈음, 나는 이미 지쳐 있었고, 숨을 고르며 한참을 문 앞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이 보였던 걸까.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니, 숙소 주인이 환한 얼굴로 다가왔다.
말없이 내 캐리어를 번쩍 들어 리셉션 쪽으로 앞장서 걸었다.

"비 와서 많이 힘들었죠?"
그 말에 나는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웃으며 "괜찮아요"라고 대답했다.

사실은 괜찮지 않았지만.

그날 밤, 비는 새벽까지 끊임없이 내렸다.



대나무 다리 사진은 다음 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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