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또 다른 이름 '단호박'

by 눙디

"선생님은 단호박이에요."

학생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들은 말이었다.

아무리 내가 예쁘지 않다 해도, 대놓고 나를 '호박'이라 부르다니!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뭐라고? 흠, 너무한데? 호박이면 호박이지, 웬 단호박?"

속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호박 앞에 붙은 "단"은 뭘까? 혹시 달콤하다는 뜻인가?'

곰곰이 생각하던 끝에, 스스로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냥 호박이라 하기엔 미안해서, 조금 더 예쁘게 포장해서 단호박이라 부른 걸지도.'

그런데 학생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너무 단호하셔서, 단호박이에요."

그제야 퍼즐이 맞춰졌다.

순간, 내가 단호했던 날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선생님, 오늘 수업 조금만 일찍 끝내주시면 안 돼요?"

"안 돼. 오늘 수업 분량을 다 나가야 옆 반과 진도를 맞출 수 있어."


"선생님, 수행평가 한 주만 미뤄주시면 안 될까요?"

"안 돼. 옆 반도 이번 주에 보기로 했거든. 일정을 같이 가야지."


"선생님, 과제 오늘 못 냈는데, 내일까지 내면 안 될까요?"

"안 돼.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기한이니까, 지켜야지."


"선생님, 화장실 좀 다녀와도 돼요?"

"안 돼. 쉬는 시간에 다녀오지 그랬어? 조금만 참았다가 쉬는 시간에 가자."


나의 대답은 종종 “안 돼.”라는 말로 시작되곤 했다.

물론 그 뒤에는 이유를 덧붙이며 학생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하곤 했지만, 작은 틈을 찾고 싶었던 학생들에게는 그저 "단호한 선생님"으로만 보였을지도 모른다.


학생들은 부탁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걸 알면서도 살짝 웃으며, 작은 기대감을 담아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일관되게,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대답했다.

특정 학생에게만 관대하거나 엄격하게 대하지 않고,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학생들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아, 선생님은 원칙이 있으시구나.'

내 단호함이 학생들에게 규칙과 책임의 중요성을 자연스레 알려주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어떤 부분에서는 단호함을 잃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원리원칙, 규칙, 기준, 약속, 형평성에 대해서만큼은 늘 분명하고 일관되게 학생들을 지도해 왔다.


원리원칙을 세우고 지키는 일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는 종례 후에 하자"는 말처럼, 아무리 학교를 빨리 나가고 싶어 하는 학생들의 마음이 이해된다 해도, 담임인 내가 함께 있을 때 교실을 정리하는 것이 원칙이라면 그 원칙은 반드시 지켜야 함을 알려 주었다.


또한, 학급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규칙은 구성원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할 약속임을 강조했다.

교실에서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도록 하거나, 수업 중이 아닌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다녀오도록 지도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학생들에게는 항상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고,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적용했다.

특히 수행평가처럼 평가가 개입되는 부분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모든 학생이 같은 기준 안에서 평가받는 경험은 공정함에 대한 감각을 길러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약속에 대한 태도도 중요하다.

작은 약속이라 해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고자 하였다.

학생과의 면담 약속이 있다면 아무리 바쁘더라도 잊지 않고 지키려 하였다.


무엇보다 형평성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누군가에게는 엄격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관대하다면 학생들은 금세 눈치챈다.

감정이나 친분에 흔들리지 않고, 모든 학생에게 같은 원칙으로 대하려 노력해 왔다.


교과담임이든, 학급담임이든 원칙 없이 하루를 보내기 어려운 날들이 참 많았다.

특히 학급을 운영할 때는, 예상치 못한 일이 계속 생기기에 '원칙'이 없다면 금세 무너지고 만다.

내 단호함이 때때로 아이들의 기대를 채워주지 못할 때가 있지만, 한 달이면 습관이 만들어지기에, 그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학생들은 내가 지키고자 했던 원칙들을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존중해 주었다.


수업 중 학생들 사이에서 이런 대화가 오간다.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10분만 참아. 쉬는 시간에 가라고 하셨잖아."


나는 못 들은 척 고개를 숙이지만, 속으로는 웃는다.

규칙을 지키고자 애쓰는 그 모습이 참 기특하고, 또 예쁘다.

그래서 조용히 학생 기록지에 남긴다.


○월 ○일 ○교시 학생명: ○○○

학급의 규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돋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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