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빛나는 나의 제자들

by 눙디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몇 년 전 졸업한 우리 반 제자 ○○에게서였다.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왔다며 친구들과 함께 나를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점심 무렵, 시내의 한 백화점 식당가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멀리서부터 환한 얼굴로 걸어오는 아이들의 모습은 학창 시절 그때 그대로였다.
마치 교실에서 방금 나와 복도에서 마주친 듯한 착각이 들었다.


식당에 들어가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하고서야 비로소 아이들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볼 수 있었다.

몇 해가 지났건만, 웃는 얼굴도 말투도 너무도 익숙했다.

잠시, 시간이 거꾸로 흐른 것만 같았다.


○○이는 친구들이나 선생님의 부탁을 곧잘 들어주던 학생이었다.
심성이 착하고 배려심이 깊은 학생이었기에, 자연스레 '사회복지학과'로 진학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니던 학교가 폐교되어, 올해 다른 대학의 같은 과에 다시 입학해 과대표를 맡고 있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고등학교 땐 도서부 활동도 열심히 했었는데, 지금도 사서 선생님과 이야기하다 보면 ○○이의 이름이 종종 오르내린다.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믿음을 주던 학생이었다.


□□는 영상 제작과 편집에 재능이 있는 학생이었다.
고3 시절, 반 친구들 중 가장 바쁘게 뛰어다녔던 학생이기도 했다.
관심이 많았던 '방송영화제작과'에 진학을 했다.

최근 작업한 영상이 있다며 보여줬는데, 8분 남짓한 작품이었음에도 독립영화 한 편을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전문 배우를 섭외해 드라마 형식으로 제작했는데, 카메라 앵글도 흐름도 매우 자연스러웠다.

편집을 맡았다는 □□의 이름이 엔딩 크레디트에 올라온 순간, 괜히 뭉클해졌다.

정말, 잘 자라주었구나.


◇◇이는 우리 반에서 유일하게 대학 진학이 아닌 취업을 선택했던 학생이었다.
졸업 후에는 조금 쉬었다가 일할 계획이라고 했었는데, 그 말 그대로 중소기업에 취업해 지금까지 묵묵히 일하고 있다고 했다.

여학생이 많지 않았던 반에서, ○○, □□와 함께 삼총사처럼 붙어 다니며 유쾌하게 지냈었다.

무척 정중하고 예의 바른 성격이었고, 짧은 말 한마디에서도 선생님을 향한 존중의 마음이 느껴지는 학생이었다.
성실함으로 따지자면 으뜸이었기에, 사회에 나가서도 예쁨 받으며 잘 지낼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3년이라는 시간을 묵묵히 채운 그 마음이 참 대견했다.
자연스레 월급도 올랐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보다 먼저 □□가 목소리를 높이며 이직을 권했다.
나도 조심스럽게 부모님과 상의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의견을 보탰다.
◇◇는 고개를 끄덕이며, 요즘 그 고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역시, 신중한 아이였다.


우리는 밥을 먹고, 카페로 자리를 옮겨 그동안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시간은 정말 눈 깜짝할 새에 흘러버렸다.


무더운 여름날, 멀리서 나를 잊지 않고 찾아와 준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하지만 더 고마웠던 건,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가는 그 용기와 단단한 눈빛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참 마음이 따뜻했던 하루였고,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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