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깜뻥에서 만난 크리스마스
카페를 나와 길을 따라 조금 걷다 보니, 주차된 차량 몇 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내 'Maekampong Waterfall'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목적지에 닿았다는 안도감과 곧 눈앞에 펼쳐질 풍경에 대한 기대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무척 더운 날이었기에, '폭포'라는 단어만으로도 마음이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높은 곳에서 힘차게 떨어지는 물줄기와, 아래에서 튀어 오르는 물방울의 청량한 기운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 모든 상상을 품은 채, 나는 폭포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숲길을 조금 더 걸어 들어가자, 바위 사이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와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눈앞에 나타난 폭포는 내가 그려왔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물이 흐르긴 했지만 물줄기는 약했고, 주변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자연스러움을 넘어서 오히려 방치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 순간적으로 마음이 휑해졌다.
명소라 불리는 이름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실망감이 먼저 다가왔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밤하늘의 별을 보지 못한 날도 있었고, 저녁 노을을 보지 못한 날도 있었으니까.
모든 여행지가 늘 인상적이라면 참 좋겠지만, 때로는 이런 실망도 여행의 일부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숲속에서 자연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그 순간은 분명 나에게 필요한 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동안 더위를 잊을 수 있었다는 점이 고마웠다.
언젠가 기억의 어느 한 조각에서 '매깜뻥 폭포'가 다시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조용히 발걸음을 돌려 마을로 향했다.
마을로 내려가는 길목, 한 외국인이 길가에 핀 꽃을 열심히 찍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고, 나도 모르게 발길을 멈췄다.
나 역시 꽃을 좋아하는 편이라 기대감이 생겼다.
꽃의 이름은 포인세티아.
이곳에서 포인세티아를 만나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선명한 붉은색이 꽃처럼 피어 있었지만, 사실 그 붉은 부분은 꽃이 아닌 잎이다.
진짜 꽃은 가운데 있는 작고 노란 꽃송이들이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뜻밖의 순간이야말로 여행의 선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의 조용한 크리스마스였던 것처럼.
폭포를 향해 올라가던 길, 눈에 띄었던 한 카페로 들어갔다.
다행히 내가 찍어두었던 자리는 비어 있었고, 카페 안에는 손님도 많지 않아 2층 전체를 나만을 위해 빌린 듯한 기분이었다.
활짝 열어 놓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고요했고, 그 고요함은 곧 평온함이 되어 마음으로 스며들었다.
건물 옆으로 흐르는 시냇물 소리는 잔잔한 음악처럼 귓가를 스쳤고, 그 소리에 마음마저 차분해지는 듯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었지만, 우유 거품 위에 그려진 그림이 이 분위기와 더 잘 어울릴 것 같아 카페라떼를 주문했다.
조각 케이크는 사장님의 추천을 받아 함께 주문했다.
천상의 맛이었다.
물론, 분위기라는 감미료가 한 스푼 들어갔겠지만 말이다.
이곳에서 나는 노트를 펼치고, 머릿속 생각들을 꺼내어 노트에 옮겨 적었다.
이 시간이 참 좋았다.
세상 걱정 하나 없이, 나 자신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마을을 향해 내려가는 길은 한적했다.
햇볕은 따가웠지만, 나는 건물 그림자 아래 멈춰 서서 잠시 마을을 바라보았다.
햇살 아래 반짝이는 지붕과 담벼락, 집들이 정겹게 느껴졌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풍경은 마음까지 느긋하게 만들어주었다.
터미널에 도착하자, 밀랍이 섞인 꿀을 작은 통에 담아 파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연꿀을 즉석에서 덜어 파는 모습도 볼 수 있었는데, 솔직히 맛을 보고 싶긴 했지만 위생이 조금 걱정되어 밀랍이 들어 있는 꿀 몇 개만 구입했다.
태국은 날씨 덕분에 다양한 꽃이 피고, 그만큼 꿀 생산량도 풍부하다.
꽃의 종류에 따라 꿀의 맛도 제각각이라, 태국에 올 때마다 꿀을 고르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한국으로 돌아가는 내 캐리어 안에는 꿀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오늘도 참 좋은 날이었다.
천천히 걸으며 동네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