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호텔 창문 밖의 풍경은 생각보다 맑지 않았다.
옅은 안개가 내려앉아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었고, 멀리 보이는 수평선도 희미하게만 드러나 있었다.
길 건너로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늘어선 건물들이 바다 쪽으로 길게 뻗어 있었고, 그 옆으로는 나무들이 빽빽이 모여 숲을 이루고 있었다.
저 멀리 바다가 자리하고 있었지만, 아직 그곳의 빛깔도, 파도의 움직임도 뚜렷하게 알 수는 없었다.
다만, 이곳이 해안 도시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바다가 어떤 색을 띠고 있을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숙소를 옮기는 날이니, 우선 체크아웃부터 해야겠다.
체크인 시간보다 일찍 숙소에 도착해 가방을 맡겨두고 밖으로 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곧장 해변으로 가고 싶었지만, 배도 고프고 커피 한 잔도 마시고 싶어 조금은 천천히 움직이기로 했다.
도로 모퉁이에 자리한 식당은 막 영업을 시작한 참이라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고, 나는 그날의 첫 손님이 되어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메뉴판을 훑다 매운맛이 사진만으로도 전해지는 요리를 하나 골라 생수와 함께 주문했다.
주문을 받으러 온 직원이 조리를 맵게 해도 괜찮겠냐고 묻기에,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나는 기꺼이 맵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곧장 조리가 시작되었고, 주방장은 불맛을 입히느라 바삐 움직였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내 앞에 음식이 놓였다.
메뉴판의 사진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아직 맛보기도 전이었지만 매운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한 숟가락 크게 떠 입에 넣자, 조갯살의 쫄깃한 식감이 밥과 어우러져 씹히는 맛이 훌륭했다.
고추가 듬뿍 들어가 있어 매운맛이 진하게 올라왔지만, 계란 프라이를 곁들이니 매운맛이 중화되었다.
정말 맛있게 즐긴 한 끼였다.
누군가 후아힌에 간다고 한다면, 이곳만큼은 꼭 들러보라고 자신 있게 추천하고 싶을 정도였다.
커피는 어제도 들렀던 그 카페에서 마실 생각이었다.
내부보다 외부 자리가 더 매력적이지만, 더운 날씨라 실내 테이블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한쪽에 마련된 판매대에 놓인 작은 파우치가 눈에 들어왔다.
물이나 커피를 넣어 다니기에 딱 알맞겠다 싶어 하나를 구매했다.
다시 그 시점으로 돌아간다면, 몇 개를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눠주었을 것이다.
그만큼 유용하게 잘 쓰고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같은 카페에서는 다시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책은 몇 장 남지 않은 상태였고, 마침내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책장을 넘기는 그 순간이 내겐 참 좋았다.
바닷가를 향해 걷는 길, 꼬불꼬불한 글자로 적힌 낯선 언어의 간판들이 늘어선 상점 앞을 지나칠 때면, 그 호기심에 발걸음을 멈추고 안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늘진 길을 따라 걷다가 더위가 몰려올 때면 편의점에 들어가 잠시 쉬어가기도 했다.
시원한 공기에 몸을 식히면서 진열된 물건들을 둘러보다 보면, 여행길에 필요한 소소한 것들을 하나둘 챙기게 된다.
첫 번째로 들른 편의점에서는 작은 사이즈의 트리트먼트와 빵을 샀다.
주로 호텔 샤워부스에는 샴푸와 바디워시만 있기 때문에 편의점에서 사는 작은 트리트먼트는 여행 내내 유용하게 쓰인다.
빵은 당장 먹지 않더라도 가방 속에 넣어 두면 허기질 때 언제든 꺼내어 먹을 수 있어 여행길의 작은 버팀목이 되어준다.
빵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오래전 가족 여행에서 비롯된 습관일지도 모르겠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원데이 프로그램을 따라가느라 끼니를 제때 챙기지 못했던 경험이 있었다.
허기진 배를 붙들었던 그날 이후, 가방 안에는 언제나 간단히 배를 달랠 수 있는 요깃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두 번째로 들른 편의점에서는 아이스크림을 골라 입에 물었다. 더위를 잠시 멈출 수 있었던 작은 호사였다.
더위를 식히고 나와 바닷가로 향하는 길,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닥에서 뭔가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그저 기분 탓이라 생각하며 지나쳤지만, 시선은 바닥에 계속 머물렀다.
조금 뒤, 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내 시선을 바로 마주한 것은 몸집이 커다란 쥐였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몸체는 길이만 해도 30cm는 되어 보였고, 그에 비례해 길게 뻗은 꼬리까지 합치면 실로 위압적인 크기였다.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아,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그 쥐는 미동도 없이, 마치 나를 응시하는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후로도 비슷한 상황은 이어졌다.
짧은 시간 안에 비슷한 크기의 쥐들을 몇 차례 마주쳤고, 그 개체수는 언뜻 세어봐도 열 마리쯤 되는 듯했다.
'이 도시가 마음에 들지 않아.' 내 속마음이었다.
바닷가를 바로 눈앞에 두고 되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조심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 바닷가를 향해 나아갔다.
그 순간의 긴장과 불안, 그리고 알 수 없는 적막감은 꽤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해변에 도착했다.
도착한 해변은 푸른 빛도, 반짝임도, 넘실대는 파도의 매력도 느낄 수 없었다.
왕실의 휴양지라 할 만큼 아름다운 바다를 기대한 것이 나의 잘못이라면, 그 실망감은 필연적인 대가였다.
모래 위에는 작은 쓰레기들이 흩어져 있었고, 해변은 한산했는데 그 모습이 무척 쓸쓸해 보였다.
초라한 풍경이지만, 후아힌의 바다임을 인정하며 걸음을 옮긴다.
해가 저물 무렵, 숙소로 발걸음을 옮기던 길에 첫날 들었던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전선을 바라보았지만, 그 위에는 새가 한 마리도 없었다.
소리는 여전히 또렷하게 들려왔고, 나는 그 출처가 무척 궁금해졌다.
큰 도로변을 따라 걷다가 건물에 딸린 정원 옆을 지나자, 그 소리는 더욱 크게 울려 퍼졌다.
그때서야 나는 알았다. 그것이 새의 지저귐이 아니라, 쥐들의 울음소리라는 것을.
혹여 쥐들이 도로로 튀어나오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나를 엄습했고, 나는 저절로 잰걸음을 옮기고 말았다.
늦은 체크인을 마치고 방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구김 하나 없는 깨끗한 침구였다.
신축 건물에 막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호텔이라 그런지, 청결함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에 들었다.
숙면을 취한 다음 날 아침, 호텔 옆 간판도 없는 작은 식당에서 아침을 먹게 되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에 자연스레 끌려 들어갔다.
벽에 적힌 태국어 메뉴는 알 수 없었지만, 메뉴 옆에 붙은 사진 덕분에 손가락으로 가리켜 무난히 음식을 주문할 수 있었다.
밥과 함께 나온 작은 국그릇을 처음 보았을 땐 양이 부족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안에는 의외로 건더기가 가득했다.
쫄깃한 버섯의 식감과 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건강한 한 끼였다.
그렇게 후아힌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소박하지만 만족스럽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서둘러 짐을 챙겼다.
오늘은 북쪽으로 멀리 날아가는 날이라, 아침부터 괜스레 마음이 분주했다.
후아힌 공항은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수속을 마치고 항공기를 기다리는 공간 또한 한눈에 들어올 만큼 아담했다.
한 시간 전쯤 도착했어도 충분했을 텐데, 너무 일찍 온 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덕분에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고, 조용히 메모지에 몇 자 끄적일 여유가 있었다.
후아힌.
왕실 사람들이 왜 이곳을 휴양지로 택했는지는 여전히 궁금하다.
그러나 먼저 다녀간 사람들이 만족감을 표현하는 이유는 조금 알 것 같았다.
도시라기보다는, 아마도 호텔이 주는 휴식이 이곳의 진짜 매력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