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공개 May 09. 2023

아저씨의 눈물

중요한 면접을 망친 나 자신이 짜증이 나서 진탕 술을 마셔버렸다.


술에 취해 지하철을 반대로 타버렸고, 내가 그렇지 뭐, 속죄하는 마음으로 되돌아가는 지하철을 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승 후 또 반대로 타버렸고,


다시 되돌아가는 지하철을 타서,


다음 환승에서 또 반대로 타버린 뒤 되돌아가는 지하철을 탔다.


에라이 빌어먹을.


나와 함께 늙어버린 핸드폰은 이미 배터리가 나간 지 오래다.


마땅히 할 일이 없던 나는 최후의 지하철을 타면서 


'누구의 핸드폰을 구경할까나' 주위를 물색하며 자리에 앉았다.


마침 옆에 계신 아저씨가 가수 영상을 보고 계셨고, 사적인 메세지 나누지는 않아 보였다.


이 정도면 같이 구경해도 불편해하지 않을 만한 프로그램이겠다 싶어 은근슬쩍 구경했다.


........


끄ㅡ으ㅏ앙...


'...?????'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아저씨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생각보다 만취하신 아저씨였다.


흐ㅡ아ㅏㅏㅇ... 스ㅏㅏ아랑,,은 뜨ㅓㅏㅏ나ㅏ,,,


뭔가 참 애매했다. 


진상이라기엔 너무 매너 있게 흥얼거리며 잔뜩 수그러들어 가고 계셨다. 


이상한 사람인가 싶으면서도 갸우뚱했다. 


노래를 부를 거면 마저 부르던가. 혼자만 이어폰을 끼고 음악의 세계에 푹 빠져 계시길래,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하는 제 3자인 나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무슨 노래일까. 


이문세와 김윤아가 나오는 걸 보니 정말 좋은 노래인 건 맞을 텐데.


그ㅡ대ㅐ여ㅓㅓ, 나ㅏㅏ에...끄ㅡ에ㅔ,,


아저씨가 점점 앞으로 말려들어간다. 


앉은 채로 쏟아져 내렸지만, 용케도 고꾸라지지는 않았다. 


이걸 기특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내 바로 옆에 앉은 아저씨는 


취했지만 웅크러든 채로 두툼한 옷자락 속에 머리를 파묻으며 노래에 흠취했다.


ㅡㅓ어ㅔ..


노래가 점점 짧아지면서 드문드문 곡조가 끊기기 시작했다. 


혹시 다음 노래로 넘어간 건가? 


어차피 취하셨는데 대놓고 구경해도 모르겠지 싶어서 고개를 내밀어 보았는데, 


웬걸 그의 코 끝에 눈물이 맺혀있었다. 


고개를 떨군 안경 위로 동그랗게 눈물이 쌓여있었다.


어떡하지. 아저씨가 많이 슬픈 것 같다. 


소소한 주사가 웃겨서 바라봤던 아저씨는 어쩌면, 


내가 알지는 못할 슬픔을 꾹꾹 눌러 담은 곡조가 아니었나 죄송스러워졌다. 


그는 고개를 파묻고, 파묻고, 파묻다, 결국 고개를 들지 못했다. 


슬픔에 무너진 채로 꾸역꾸역 울어내고 계셨던 게 아닐까. 


맘 편히 울 수 있었던 곳이 지하철 막차 안이었던 걸까. 


뭉툭한 손가락에 끼워진 금반지가 내심 마음에 걸렸다.


"아저씨, 어디쯤 내리세요?"


이렇게 내버려두다간 종점까지 가시겠다 싶어서 술도 깨울 겸 말을 걸었다. 


그러자 그는 눈물을 닦아내더니 몽롱해진 정신줄을 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고개를 몇 번 휘저으다가 가까스로 힘을 주며 말하셨다.


ㅇㅡㅣㄸㅏ, 이뜨ㅏ, 좀 있다 느ㅐ려요.


눈을 꿈뻑, 꿈뻑. 


그러다 다시 눈물을 닦아낸다. 


그래도 아저씨가 마냥 취한 건 아니신 것 같아 마음이 놓이면서도, 


괜히 그가 슬픔에 젖어있을 순간을 깨트려버린 게 아닌가 조금은 후회가 되었지만.


"조심히 내리세여~"


한마디를 남기며 지하철에서 내렸다.



겨울밤이 참 짙다.


221207

Sincerely,

요정.

작가의 이전글 햇빛, 햇볕, 햇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