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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이 Sep 09. 2019

전통과의 경계(警戒)

현대음악에 대한 단상-2

항상 미술에 약간(혹은 아주 많이) 뒤처져 따라가는 음악에서, 20세기의 많은 작곡가들은 ‘전통’을 버리고 경계를 무너뜨릴 더 탁월한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어떤 작곡가들은 자국의 토속 음악의 특징을 투영시켜 이전과 다른 모양새를 만들어내는가 하면, 클래식 전통의 영향력이 미미한 미국의 작곡가들은 음악 내부의 기승전결부터 그 방향을 달리한다. 독일에서는 낭만주의와 후기 낭만주의적 경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12음기법과 음렬 기법을 창안해냈고 여기에는 전통의 계승이라는 명목이 있었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쇤베르크를 ‘현대음악의 아버지’로 불리게 할 만큼의 음악적 진보를 이끌어냈다. 마치 모네가 사진을 뛰어넘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가 평면성과 추상성의 미술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프랑스의 작곡가들은 언제나 주목할 만하다. 형식미를 중시하는 고전주의에서부터 별 관심이 없었던 탓인지, 아니면 당시에 많은 미술가들의 혁신이 프랑스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큰 영향을 받았는지는 모르겠다. 드뷔시는 구조적 바탕부터가 다른 음 소재(온음음계, 선법 등)를 통해 낡은 조성체계와 작별했고, 에릭 사티는 아카데미즘에 반감을 느껴 학교를 박차고 떠나더니 <가구 음악>이라든지 <바싹 마른 태아>와 같이 이상한 이름을 가진 곡들을 내놓기도 하고, 아예 다다이즘 운동에 동참해 전문지에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이 별난 작곡가를 따르는 ‘프랑스 6인조’는 한동안 프랑스의 음악계를 주도했다.



John Cage, <Variations II>(1961)

존 케이지의 작품 <Variations>의 악보는 마치 어느 추상화 작품을 보는 것과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점, 선, 면의 배치가 어떤 일관성을 내포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 수 없다. 아니, 그보다 먼저 오선지 위에서 늘 그려왔던 형태의 기호와 표식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이것이 ‘악보’라고 할 수는 있는가? 연주자들은 이 악보를 보고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어떤 연주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어떤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인지도 알 길이 없다). 답이 정해져 있거나 작곡가가 특정한 소리를 요구하지 않는 이 작품에서 반드시 우연성이 개입되기 마련이고, 어떤 ‘최선의 결과물’도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또 다른 질문을 얻을 수 있다. 음악은   가지 결과물을 좇기 위해 공유하고 있는 관습에 그렇게나 집착해야 하는가? <Variations> 마치 과거 관습으로부터 많이 빗겨난 작품처럼 보인다. 하지만 특별하게, 어떤 체계에 맞춰 구성된 것만이 최고의 음악은 아니며, 더군다나 최고의 음악이란 것은 없다. 공통된 관습으로써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여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그 점이 현대음악과 그 이전의 음악을 나누는 가장 큰 차이점이자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공통 관습의 부재, 그로 인한 다양한 창작 방법의 출현. 현대 작품들을 관통하는 개개의 가치관과 논리는 절대 모두가 다 같을 수 없고, 하나일 수도 여럿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없을 수도 있다.

(2021. 8. 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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