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바다의 음악세계
나는 주변 친구들에게 감히 주장하곤 한다. 아티스트(가수) 가치의 8할은 음색으로부터 나온다고. 물론 8할이나 되는 비율을 언급하면서 음색을 치켜세움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있을 테지만, 나는 '가치'에 더 초점을 맞추어서 논증을 펼치고 싶다. 아티스트의 가치는 결국 개성으로 귀결되고, 노래에 있어서 개성을 만들어주는 건 바로 음색이기 때문이다. 가창력? 하한선만 넘으면 그만이다. 곡의 완성도? 좋은 작곡가를 구하면 충분하다. 쉽게 말해서 시간과 자원으로 케어되지 않는 것은 음색뿐이며 이는 음악이란 함수에 있어서 거의 유일한 독립변수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음색 하나로 장광설을 늘어놓을 만큼 확실한 취향을 가진 나는, 특히 여성 솔로 가수들의 노래에 빠져들곤 했다. 해외 R&B 싱어인 즈네 아이코(Jhene Aiko)부터 영국 팝스타 찰리 엑스씨엑스(Charli XCX), 그리고 최근 컴백한 백예린, 하다못해 아이돌인 여자친구의 은하까지 목소리만 꽂힌다 싶으면 장르 구분 없이 그녀들의 팬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취향저격인 스타일을 꼽자면 간드러지는 느낌의 허스키한 목소리(소위 칼칼한 보이스라고 하더라)인데, 나는 어느 날 이를 아주 정확히 충족시켜주는 목소리를 가진 '이바다'라는 아티스트를 알게 되었다.
'바다'라는 이름에 한 번, 그리고 그 이름이 본명이라는 사실에 한 번 더 이목이 끌리는 아티스트 이바다는 최근 정규 1집을 발표한 5년 차 R&B 싱어송라이터이다. 처음 들었던 그녀의 목소리는 수란, 볼빨간사춘기의 안지영 등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그들과 비교해서 더 솔직하고 날것의 느낌을 주면서도, 음악적으로는 세련됨을 구사하는 이바다는 나에게 또 다른 신선함을 안겨다 주었다. 무엇보다도 끈적한 무드를 가감 없이, 게다가 거기에 가장 최적화된 섹시한 보이스로 풀어내는 건 이바다의 가장 큰 무기이다. 거기에 힙스터스러운 분위기의 외모까지, 어찌 빠져들지 않을 수 있을까. 나에게 있어 그녀는 음악과 이미지의 혼연일체를 자랑하는 '진짜 멋있는 누나'이다.
독특한 음색과 더불어 이바다 음악 자체의 다양함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고 직접 말한 그녀는 지금까지 음악의 '색깔' 시리즈로 여러 차례 EP를 발표해 왔다. 먼저 [Pink Ocean]에서는 팝 색채가 짙은 대중적 성향의 음악을 보여주는가 하면, 다음에 발표한 [Black Ocean]에서는 리드미컬한 느낌의 얼터네이티브 R&B를 중심으로 앨범을 꾸려나갔다. 이어서 [Blue Ocean]에서는 어쿠스틱이 주축이 된 잔잔한 발라드, 정규 앨범에서는 요즘 대세인 시티팝까지 아우르며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혀 왔다. 보통 뚜렷한 음색일수록 장르적으로 제한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바다는 꽤나 특이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이바다의 곡 중에서 특별히 애착이 가는 곡이 있다면 바로 "야몽음인 (夜夢陰人)"이다. 제목부터 야시시(?)한 분위기가 풍기는 이 곡에서는 얼터네이티브 R&B, 섹시한 가사 등 이바다의 대표적인 주제의식과 스타일이 밀도 있게 잘 드러난다. 특히 '그림자 사이 피어올라'와 같이 암시적인 비유는 아슬아슬하게 선을 타는 느낌이랄까. 이는 그저 퇴폐적인 쪽보다는 오히려 '설렌다'는 감상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이런 류의 주제를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풀어나가는 건 쉽지 않다. 여기에는 본인의 캐릭터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객관적인 시선을 필요로 한다. 이처럼 이바다만의 차별화된 세계관은 남들과 다른 음악적 방향성에서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발산하는 자연스러움에는 그에 못지않은 치밀함이 숨겨져 있다.
이바다의 음악에는 '너의 바다가 되어줄게'라는 가사가 자주 등장한다. 이것을 이름을 이용한 재치 있는 라인으로도 볼 수 있지만 어쩌면 그녀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함축해 표현하는 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푸르고 시원한, 여러모로 또렷한 이미지를 가지면서도 세상 여기저기에 다양한 빛깔로 존재하는 넓디넓은 바다의 모습 말이다. 나는 목소리 하나를 따라간 것뿐이지만 그 끝에서 무엇보다도 멋진 풍경과 조우한 셈이다. 혹시나 두서없는 큐레이팅에 무엇을 들을지 고민된다면 장르를 막론하고 음색을 한번 따라가 보면 어떨까. 음색은 웬만하면 배신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