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 리뷰
1. 미시 세계의 입자를 다루는 원자물리학, 양자역학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는가? 특히 양자역학은 반직관적이고 난해하다고 정평이 난 이론이다. 초기 양자역학 개념이 제시되었을 때도 저명한 과학자들조차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양자역학을 거부했고, 양자역학에 설명력을 더해준 파동방정식을 발표한 슈뢰딩거조차 이 이론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과학자들조차 이런 반응인데 물알못인 우리는 오죽하겠는가. 다행히도 <부분과 전체>는 심오한 제목과 달리 물리학을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으며, 당시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비하인드 스토리에 가깝다. 이 책은 닐스 보어와 함께 양자역학의 기초를 세우고 '불확정성의 원리'로 우리에게 친숙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자전적 에세이다. 그는 원자물리학이라는 큰 주제를 중심으로 양자역학에 대한 논쟁, 원자폭탄 개발, 철학적 태도, 정치적 행동 등 과학자로서 맞닥뜨렸던 고민들, 그리고 동료 과학자들과 나누었던 생각들을 솔직하게 풀어놓는다.
2. 천재는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던 것 같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갓 대학생 나이가 된 그는 플라톤의 <티마이오스>를 읽으며 원자 이론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음악가가 되길 원하는 지인들의 권유를 뒤로하고 조머펠드 교수 아래에서 원자물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거기서 과학자 인생을 함께하게 될 친구 볼프강 파울리를 만난다. 이후 막스 보른의 지도하에서 논문을 쓰던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을 이론화하는 데 성공하고, 코펜하겐에서 닐스 보어의 조수 일을 하다가 독일에서 한국 나이로 27세의 최연소 정교수가 된다. 그리고 5년 뒤 그는 양자역학을 창안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다.
3. 하지만 나치 치하에서 그의 삶은 평온하지 못했다. 유대인 출신을 포함한 동료 과학자들은 통제와 박해를 피해 외국으로 떠나기 시작했고, 하이젠베르크는 고민 끝에 독일에 남기로 결정한다. 나치 체제가 언젠가 파국을 맞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훗날 독일 과학계를 보전할 누군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2차 대전 발발 후, 그는 비공식 명칭으로 '우라늄 클럽'이라는 군대 조직에 들어가 원자물리학을 기술화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다행히도 당시 오토 한에 의해 처음 탄생한 핵분열 기술은 무기가 아니라 에너지 생산 관련 연구에만 집중되었다. 하이젠베르크는 핵분열 기술이 원자폭탄에 쓰이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알다시피 건너편 미국에서는 원자폭탄 개발이 성공하였고, 수십만의 희생자를 낳았다.
4. <부분과 전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양자역학의 해석에 대한 과학자들 간의 대담이다. '상보성'이라고 불리는 양자역학의 특징은 가령 물질의 입자성, 파동성을 동시에 허용한다. 불확정성 원리는 미시 세계에서의 위치, 운동량을 일성 수준 이상으로 동시에 파악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런 난해한 실험 결과들은 고전역학의 사고방식에 익숙한 물리학자들에게 '이해'라는 개념을 재고하도록 만들었다. 이해는 예측가능성인가? 양자역학에서 소립자들이 확률적으로 위치한다면, 우리는 위치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관찰의 개념도 새롭게 정의된다. 보어는 "이론이 비로소 무엇을 관찰할 수 있을지 결정"한다고 했다. 현상이 측정 도구에 영향을 미치고 관찰 결과에 이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관찰은 객관적이면서 주관적인 방법이다.
5. 과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부분도 꽤 흥미롭다. 과학을 엔지니어의 일처럼 연속적인 진보로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보어와의 대담은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암시하는 내용이다. 기존 설명을 덧붙이면서 발전할 수도 있지만, 설명력 이상으로 더 단순한 연관을 찾아내는 과학이 살아남는다는 이야기는 패러다임 이론과 거의 비슷하다. 양자역학은 칸트 철학과도 연관된다. 과학자들은 칸트의 인식론에서 다루는 시간, 공간, 인과성과 같은 선험적 차원의 범주들이 양자역학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일상적 영역을 넘은 경험(미시 세계)에서 지각된 것은 물자체 개념으로 정리할 수 없다. 원자는 사물이나 대상이 아니라 관찰 상황의 구성 요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칸트 철학은 고전물리학과 마찬가지로 거시 세계에서만 설명력을 가질 뿐이다.
6. 나아가 정치적 파국에서 과학자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하이젠베르크가 과학자의 윤리에 대해 역설하는 부분도 <부분과 전체>의 중요한 포인트다. 그는 기술적 진보로 중요한 과제 앞에 선 개개인은 "과학적, 기술적 과제를 커다란 발전의 일부분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자는 자신의 기술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이 있으며, 과학계 바깥의 사람들, 특히 정치·행정가들이 기술을 오해하거나 오용하지 않도록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피력해야 한다. 원자폭탄이 떨어진 이후로 과학자들은 더이상 무조건적인 과학의 진보를 옹호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과학의 진보는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7. 이처럼 <부분과 전체>는 에세이와 자서전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그 속에 숨은 논의는 간단하지 않다. 책은 물리학의 얼굴을 한 철학 서적에 가깝다. 그렇기에 독자들에게 어느 정도 종합적인 관심과 흥미를 요구한다. 한편 나에게는 한 주제에 대해 열정적으로 토론하고, 자신의 삶을 즐기는 과학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이야기는 항상 책상이나 학회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이젠베르크는 등산 애호가이자 뛰어난 실력의 피아니스트였으며, 따라서 책 속의 많은 이야기가 하이킹과 피아노 연주를 배경으로 한다. <부분과 전체>가 물리학에 대해 주절주절 논하는 책이 아니라 하나의 일기장, 에세이로 읽히는 것은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