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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허블 Aug 17. 2019

방송작가와의 소개팅을 위한 조언.

소개팅에서 직업이 방송작가라고 하면, 대게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용비어천가형.

“우와~ 방송작가세요? 대단하다. 그럼 연예인들 많이 보겠네요? 누구랑 친해요?

돈 많이 벌어요? 아, 방송작가 처음 보는데 영광입니다."


대체 어느 부분이 영광이라는 것일까? 

내가 연예인을 많이 봐서인지 아님 

그저 방송작가는 돈을 많이 벌 거라는 무조건적인 착각이 불러온 

경외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리 상대가 취향저격이라도 이런 반응을 보이는 순간 

호감은 급락하고, 호기심은 멀어진다.  

꿈과 환상으로 상대방을 제멋대로 포장해놓고 기대에 부풀어 

또랑또랑 나를 바라보는 상대에게 과연 뭐라고 말하겠는가?  


‘에라, 모르겠다. 니가 징을 울렸으니, 나는 꽹과리라도 치겠다’

하는 마음으로 장단을 맞춰 줄 수는 있다.


“네. 많이 보죠. 어제도 가수 000랑 녹화하고, 밤새 술 마셨어요. 일이야 재밌죠, 

억대 연봉은 아니지만, 친구들보다 늘 많이 벌어요” 


아, 내가 생각해도 재수 똥이다. 

‘옜다, 먹고 떨어져라’라는 마음이라도 절대 입 밖으로 뱉을 수 없는 말이다. 

거짓말은 아니지만, 진실을 호도했다.

대통령도 직업이 되면 3D 종사자일 뿐인데, 재미는 개뿔. 

꿈도 직업이 되면 현실의 시궁창에 빠지는 법이다.  


그렇다면, 진실에 가깝게 설명해 볼 수도 있다.


“그쪽보다 연예인을 많이 보기는 하지만, 일로 만나는 만남은 한계가 있답니다. 

현장에선 친한 척 굴어도 사실은 서로의 휴대폰 번호도 모르고 

돌아서면 욕하느라 바쁠걸요. 

돈이요? 프리랜서라 월차도 연차도 보너스도 없으니, 따지면 그렇게 많지도 않아요”


옘병. 이건 나서서 내 얼굴에 똥칠하는 경우다.


결국 대개의 경우, 나는 적절한 미소와 함께 침묵으로 일관한다.

그가 호기심으로 두어 번 연락을 더 해온다고 해도 

첫 번째 관문조차 넘지 못한 상대와는 당연히 안녕이다. 


두 번째는 시시비비형.

“방송작가요? 그거 비정규직이죠? 제가 아는 친구도 방송작간데 맨날 밤새고, 

연예인 커피 심부름까지 하더라구요. 솔직히 힘들죠?”
 

아놔. 파이터세요? 그럼 링으로 가셨어야죠.

이 정도 예의 쌈 싸 먹었으면 나쁜 남자가 아니라 그냥 나쁜 XX다.

이런 상대를 만나면 그의 저열함에 전의마저 상실한다.

약간의 시비와 자격지심과 무례함을 매력이라고 착각하는 건지,

아님 기선을 제압하고 싶은 건지는 몰라도 이런 상대를 만나면 나는 

기필코 그곳에서 젤 비싼 메뉴를 시켜버린다. 


대여섯 번의 소개팅이 전부 이런 것은 아니었다.

단 한번, 다른 경우가 있었다.

그는 유일하게 내 직업에 대해 별다른 코멘트를 달지 않았다.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얘기를 하다 심상하고, 담담하게 

“일하는 게 다 힘들죠?”라고 물었을 뿐이다.


평범한 외모에, 평범한 상식에, 평범한 시선. 

정릉에 사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시골내기인 내가 보기에 정릉은 기품 있는 서울의 옛 동네 같아 보였다.


그래서 나도 최선을 다했다. 

섭외를 하는 마음으로. 

그러니까 ‘어떻게든 그를 꼬셔서 내 프로에 출연시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일하듯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리액션을 하고, 궁금증을 쏟아내고, 적절한 유머를 구사했다. 


다음날부터 그는 여의도로 퇴근을 했다. 

어색했지만, 간만의 설렘이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와의 만남이 서너 번 이어지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만나보니까 내가 별로야?

“무슨 말이야?”

“변했잖아. 부담스러우면 말해. 연락 안 할게”


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건지 처음부터 복기가 필요했다.

처음에 나는 그를 출연자처럼 대했다. 

직업정신으로 무장했다기보단 낯선 사람을 대하는데 그쪽이 더 편했기 때문이었다. 

중간에 소개해준 사람이 있으니 예의를 지키고도 싶었다. 

그래서 아이템을 찾듯 광범위한 자료 조사로 최적의 장소를 예약했고, 

매니저에게 하듯 약도를 보내며 친절하게 설명했다. 


만나서도 다르지 않았다. 

섭외의 기본은 작업의 기본과 같다. 

적극성과 호감, 그리고 순발력.

나는 내가 체득한 직업적 특성을 다해 그를 대했다. 말하자면 직업적 가식이었다.


하지만 만남이 이어지자 나는 나를 내보이기 시작했다.   

내성적이고, 낯가리고, 감정 기복이 크고, 관계에 예열이 늦은 나를.

처음의 활달하고, 재미있고, 적극적인 나의 모습에 반했던 그는 

그런 내가 당혹스러웠던 거다. 그래서 달라진 모습에 실망했을 거고.


결국 나는 설명할 수 없었다. 아무려나 내가 진실하지 못한 일을 가지고, 

직업적 특성 어쩌고 하는 건 비겁한 변명일 테니까.


10대 때의 나는 나의 등수가 나를 규정한다고 생각했다.

20대 때는 나의 학교가, 30대에는 내가 하는 일이 나를 규정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나를 둘러싼 사람들만이 나를 규정하고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지만,

그것 또한 정답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대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응시’이다.

그것이 이해나 배려가 아니라 해도 섣부른 판단 대신 길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


방송작가와의 소개팅에서도.

아니 다른 누군가와의 만남에서든.

그저 따뜻하게 바라봐 주는 것만으로도 제대로 된 시작은 가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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