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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추억 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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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Oct 07. 2015

여름밤

2010.08.29.

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의 야단법석에 한낱 눈물방울 따위는 끼어들 틈이 없다는 듯, 새차게 내리는 그 모양새가 참으로 무섭게 느껴질 정도였다.


밤.

깊고도 깊은 밤.


창밖을 내다보니 하늘은 온통 흑빛으로 물들어있다. 어둠은 어느 한구석에서 빛을 내고자하는 달의 그 귀퉁이 조각마저도 허용하지 않았다.


참, 근래에 들어 이렇게 늦은 시각까지 눈을 붙이지 못한 것이 의아하다고나할까. 나는 전혀 피곤을 느끼지 못한 채 그저 창밖을 멍하니 내다보고만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느닷없이 떠오른 '그'는,

한참을 나의 의식 속에서 맴돌다 그대로 주저앉은 듯 했다.


여름은 다 가는데.

나는 아직까지도 그를 생각할 적이면 춘삼월에 태어난 아이의 사랑스러운 혈색과 같은 빛을 가득 머금던, 바로 그 앵화를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는 그 환상 속에서, 한아름 풍성한 그 앵화의 가녀린 꽃가지를 꺾어 꽃잎 하나하나를 볼에 비비었던 지난 날의 추억을 다시금 되새겨보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 미련한 짓이다.


다신 돌아오지 않을 사람.

지나간 사람.


그리고 이렇듯, 빗물에 흐려진 사람.


웃음보다 울음이 늘 앞서기만 했던 그 수많은 기억들 속에서 굳이 웃음 가득했던 나날만의 추억을 끄집어내려는 것은, 미련하고도 미련한, 여자의 과분한 욕심에 불과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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