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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추억 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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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Nov 10. 2015

햇살

가을날

- 너는 참 잘 자란다.


작은 화분 속 싱그러운 색을 띄고 있던 손톱만한 것을 향해 중얼거린다. 그는 그 앞에 한참을 쪼그려 앉아있었다. 그 뒷모습을 가만 바라보는데 귀엽다가도 징그럽기도 하고.


- 물만 먹고 참 잘 자라네.


'지겹지도 않은가?' 한참 전부터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 책을 탁자 위로 밀어뒀다. 이미 온기로 가득 찬 작은 소파에서 벗어나는 것이 조금 귀찮았지만 그와 화분이 함께 있는 베란다 쪽이 좀 더 따뜻해보여 마음이 동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날씨가 참 좋은 날이었다. 햇볕이 쨍하지만 바람이 맛있는 날. 물을 마시는 것처럼 종종 상쾌한 맛의 바람이 부는 날이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 뭐해?

- 그냥…….


그는 내가 다가서자 재잘거리던 입을 꾹 다물었다.


- 아직도 토라진 채구나?

- …….


괜히 손가락 끝으로 화분 속 잎들을 툭툭 건드려보는 모습에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화풀이 대상이 화분이야?' 묻고 싶지만 이 토라짐이 더 길어질까 그냥 나도 입을 다물었다. 그냥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누군가가 귀여운 가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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