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목소리가 보여

<콜> 리뷰

by mockingJ

전화기 울리는 소리에 서연(박신혜)은 수화기를 든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알 수 없는 누군가로부터 온 전화는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일찍이 아버지(박호산)를 여의고 병든 어머니(김성령)를 부양하기 위해 고향 집을 찾은 서연은 20년 전 같은 집에 살았던 영숙(전종서)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새엄마(이엘)에게 이유 모를 학대를 받고 있던 영숙과 과거의 사건으로 엄마와 앙금이 있던 서연은 서로의 공통점을 통해 급격히 친해지게 된다. 어느 날 영숙은 서연에게 과거를 바꿀 가설을 제안하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초조하게 영숙을 기다리던 서연은 갑작스레 공간이 무너지면서 처음 보는 장소로 이동하는 경험을 하게 되고 그곳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와 재회한다. 과거를 바꾼 영숙에게 고맙다고 거듭 말하는 서연 하지만 수화기 반대편 영숙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다.

장르의 특이점

영화의 스토리는 장르를 규정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콜>과 같이 시간을 다뤘던 영화의 대표작 <백 투 더 퓨처>는 SF란 공상과학의 거대 장르 안에 재미라는 코미디 요소가 균형 있게 공존한다. <콜>의 경우 시간을 다루는 영역을 상상에 기반한 판타지에 두고 미스터리와 스릴러가 함께 공존한다. 정확히는 공존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충현 감독 작품 속엔 장르의 균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언제든지 장르의 균형을 허물고 관객이 예상치 못하는 새로운 장르로 빈자리를 매울 준비를 하고 있다. <몸값>은 원조교제를 바라는 남자와 여학생의 드라마로 시작된다. 하지만 방을 나선 여학생을 따르는 카메라에 비친 충격적인 장면은 이야기에 특이점을 부여하고 그 이후 완전히 새로운 장르의 이야기가 채워진다. 서연과 영숙의 만남은 시간적 거리를 제외하면 여느 드라마처럼 일상적인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지만 서로의 존재로 균형을 유지하던 행복의 질서가 무너지는 순간 이야기는 슬레셔 무비에 버금갈 정도의 선혈이 낭자하기 시작한다. “빠르게 뒤집어지고 요동치는 영화가 좋다”는 이충현 감독은 장르란 이름의 무한한 우주를 창조하는 빅뱅과 같은 폭발력으로 영화를 자유롭게 창조한다. 하지만 그의 폭발력은 한순간의 반짝임으로 끝나지 않고 숨어서 기회를 엿보다 가장 예상치 못한 순간 관객에게 다시 그 위력을 과시한다.

<더 콜러> VS <콜>

이충현 감독은 영국계 감독 매튜 파크힐의 작품인 <더 콜러>의 틀을 빌려 <콜>을 제작하게 된다. 시간을 넘어 알 수 없는 이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은 주인공에게 일어나는 이야기는 이충현 감독을 만나 새롭게 재구성되었다. 의문에 전화를 받은 메리(라셀 르페브르)의 혼란에 집중했던 <더 콜러>와 달리 이충현 감독은 영숙이라는 한 인간이 어떤 경위로 냉혹한 살인마로 변해가는지를 주목했다. <더 콜러>의 살인마 로즈(로나 라버)는 영화의 말미까지 철저히 모습을 숨기며 관객의 서스팬스를 자극시켰다. 반면 영숙은 무당인 새엄마에 의해 끌려가는 첫 등장으로 일반적인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각인시키며 살인마가 되는 인물의 서사를 보다 자세하게 보여준다.
영숙의 변화에 서연은 동요하고 그녀로 인해 발생하는 타임 패러독스의 두려움을 겪게 된다. 타임 패러독스는 두 작품의 핵심을 이루는 개념이지만 이를 다루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서연은 과거의 사건이 변화하는 순간을 즉각적으로 감지할 수 있지만 예고 없이 자행되는 영숙의 폭력은 그녀의 무기력을 더하기만 한다. 영숙에 비해 로즈는 다소 예고를 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수수께끼처럼 제시되는 그녀의 예고는 마치 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하지만 순식간에 파국의 현장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 두 인물은 차이점뿐만 아닌 눈에 띄는 공통점도 있다. 소화기는 영숙이 즐겨 사용하는 무기다. 그녀는 마치 불에서 다시 태어나는 불사조가 연상되는 서연의 타임 패러독스를 스스로 소화시키고 범인이 될 증거를 불로 소각시키며 새로운 자신으로 부활하고자 한다. 로즈의 무기는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마체테다. 베트남 전쟁 당시 정글 지형에 방해물을 제거하기 위해 보급된 이 칼은 로즈가 첫 살인을 통해 얻은 전리품이다. 그녀는 자살로 마무리될 줄 알았던 삶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마지막 걸림돌인 메리를 제거하기 위해 이 칼을 휘두른다. 이 둘은 마치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의 레더 페이스나 할로윈의 마이클 마이어스처럼 상징적인 무기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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