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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라키 Jan 31. 2022

함께 자라기

결국은 사람

역시 책은 읽는 맛보다는 사는 맛이라는 걸 증명하듯 작년에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들을 이것저것 사모았다. 물론 아직 펴지도 않은 책들(얼마 안 읽고 덮은 책들도)이 여전히 쌓여있다. '함께 자라기'도 그중 한 권이었다. 좋다는 말도 많이 듣고 리뷰도 여러 번 보고 했지만 막상 책을 본 적은 없었는데, 작년 말쯤부터인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에 사서 책상에 올려두고는 얼마 전에야 펴기 시작했다. 다행히 내용이 쉽게 읽혔고 양도 그리 많지 않아 틈틈이 읽다 보니 어느새 다 읽었다. 기대보다 내용이 더 괜찮아서 복기도 할 겸 몇 가지 주제들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해본다.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경력과 실력은 무관하다.

매우 공감하지만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고 난 뒤 다시 바라보니 조금은 무서운 말이기도 하다. 졸업 후 첫 회사를 다닐 때 주변의 경력이 많은 누군가들을 보면서 저렇게 되면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어린 마음에 되바라진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첫 이직의 결심을 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고. 그런데 경력이 나름 쌓인 지금, 내 모습이 누군가에게도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종종 들곤 한다. 경력이 아니라 실력을 쌓아가는 노력을 해야겠구나 다시 한번 느꼈다.


잘 뽑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 - 시스템과 문화

일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물어보면 내 대답은 단연 사람이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도 그런 부분을 강조하기도 하고 제목에 있는 '함께'도 결국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도 사람을 잘 뽑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신중하게 뽑되 대신 들인 후에는 전적으로 믿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시스템과 문화일 수 있다는 것은 간과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분명 맞는 말이다. 잘하던 사람들 모여서 회사만 옮겼을 뿐인데 전혀 다른 결과를 내는 경험하기도 했으니까. 물론 반대의 경우도 흔하게 들을 수 있다. 사람이 분명 중요하지만 그만큼 그들이 능력을 잘 발휘하고 성장하도록 돕는 시스템과 문화도 중요하다.


작업 구분(A, B, C)과 복리 효과

더글라스 앵겔바트의 작업 구분에 의하면 조직 차원에서의 작업을 A, B, C 수준의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A는 그 조직이 원래 하기로 되어 있는 일, B는 A를 개선하는 일, C는 B를 개선하는 일이다. 예를 들자면 A는 서비스 또는 제품의 개발이고 B는 이런 개발 과정의 시스템이나 프로세스를 만드는 것, C는 만들어진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것이다. 작업 구분은 뒤로 갈수록 중요해지는데, 그 원리는 바로 복리와 비슷하다. A 작업을 반복할 때마다 같은 수준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매번 조금 더 나은 수준에서 시작하면 갈수록 그 결과의 차이는 커지기 때문이다.

이론적인 내용은 모르고 있었지만, 내용 자체는 새롭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게으르기 위한 효율'이라고 표현을 해왔는데 좋아하는 개발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알 수 없는 미지의 고객들을 만족시키는 것보다 실제 사용자에 포함되어 있는 나를 위한 개발이라 그 필요성과 요구사항이 나름 명확하고 그래서인지 의욕도 충만해지기 때문이다. 조직과 개인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전문성 형성에는 타당성과 피드백이 중요하다.

타당성(validity)이란 인과관계와 규칙성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는 위에서 언급한 필요성 혹은 동기 등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즉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으로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에 있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Why'인데 같은 의미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즉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인지해야 동기부여도 되고 시시때때로 발생하는 선택의 순간에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런 것 없이 하달된 일(스스로 공감도 되지 않는)을 하고 있으면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일이 잘 마무리될 리도 없다. 많은 조직에서 간과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피드백은 이 Why의 유효성 또는 그에 맞는 선택을 한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목적지에 가능한 효율적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그러려면 잘 가고 있는지 중간중간 계속 확인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의도적 수련의 필수조건, 적절한 난이도

타당성과 피드백에 더불어 중요한 한 가지가 적절한 난이도이다. 작은 성공을 반복하라고 하는 것과도 비슷한 내용일 듯하다. 이것도 경험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어떤 일을 할 때 너무 쉬운 일을 하게 되면 금방 지루해진다. 반대로 너무 어려운 일을 맡게 되면 불안함이 앞서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런 경우 난이도나 실력을 조절해야 하는데, 알면서도 실천하기란 쉽지 않은 내용인 것 같다. 업무에 대입해 보자면 결과를 내야 하는 입장에서 난이도 조절하기는 매번 사용하기 어려운 방법이고, 그나마 실력을 높이는 게 좋아 보이나 이 또한 한 번에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결국 적절한 난이도로 실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하나씩 해나가는 것이 중요할 듯싶다. 실력(A)을 높이는 실력(B, C)을 키워야 한달까.


실수는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다.

이것도 알면서 실천하기엔 참 어려운 내용이다. 스스로에게 대입해보자면, 일단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아예 시작도 안 하는 편에 가까우니까. 물론 업무는 안 하기란 불가능하니 최대한 사전에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덕분에 얻는 장점도 있지만 분명 반대에 있는 무언가 들(스트레스라거나 업무시간이라거나)도 존재한다. 그렇다고 이런 것들이 잘못되었다는 의미이기보다는 부담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차피 실수를 완벽하게 방지하기란 어려우니 말이다. 당연히 조직적인 차원에서도 여러모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사회적 자본과 기술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신뢰, 커뮤니케이션과 같은 것들이다. (추가로 도움받기, 피드백 주고받기, 영향력 미치기, 가르치고 배우기, 위임하기 등이 있다) 아무리 혼자 뛰어나도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닌 이상 관계가 더 중요하다. 오래전부터 항상 느꼈던 부분이다. 개발을 잘하는 것과 일을 잘하는 것은 다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20년 가까이 배우는 대상에서는 제외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나도 많이 부족한 부분이라 노력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 중에 '사회적 맥락'이라는 낯선 단어가 등장한다. 공감대와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맘에 안 들면 뭘 해도 안 좋게 보이고, 맘에 들면 뭘 하든 좋게 보이는 현상은 아주 쉽게 접할 수 있다. 나와 있는 예들이 왜인지 많이 와닿는 것들이었다.


비용 개선 효과: 도구 < 사람 < 시스템 < 관리

연구에 의하면 비용 면에서 도구(2.97배)보다는 사람(10.55배), 시스템(25.76배), 관리(64배)로 갈수록 그 개선 효과가 커진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리자들은 위와 정반대의 순서를 선호한다. 스스로를 바꿔야 하니 아무래도 거부감이 커서이지 않을까 싶다. 관리를 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나름 신선한 내용이었다. 자신을 돌아보고 관리 방식 자체를 개선하는 것. 앞으로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모든 '공유'가 효과적이지는 않다.

일반적으로 공유는 신뢰를 쌓는 좋은 수단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항상 그렇지만은 않다고 한다. 공유를 조건에 따라 '하나 공유(한 가지 결과만 내서 공유)', '최고 공유(여러 결과들 중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만 공유)', '복수 공유(여러 결과를 모두 공유)'로 분류하고 그에 따른 신뢰도를 확인하는 실험에서 앞의 두 가지는 안 하니만 못한 결과가 나왔다. 한 가지는 스스로에 대한 불안감 생성과 상대를 평가하는데도 거부감을 들게 한다는 것이다. 아마 대부분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을까 싶다. 보통은 최선이라 생각하는 결과를 공유했는데 그에 대한 부정적인 피드백을 하는 것도 듣는 것도 마음이 편치가 않다.(쉬운 예로 코드 리뷰가 있지 않을까) 이에 반해 복수 공유는 여러 대안이 존재하고 그로 인해 대화도 더 잘 이루어진다. 신뢰성뿐 아니라 그 이후의 결과물에 있어서도 더 뛰어났다고 한다.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된 내용이었다. 단순히 공유는 좋다라고만 생각했지 그 방법에 있어서는 많은 고민을 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중요한 건 신뢰를 쌓아가는 공유다.


객관성의 주관성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가치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고, 그 대상은 사람(스스로를 포함한)이다. 그렇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객관이라는 말도 결국엔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좋다고 하면 좋은 이유는 수 없이 많고, 반대로 싫다고 하면 그 이유도 수 없이 많으니까 말이다. 기술은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과도 비슷할 것 같다.

조금 다른 내용이지만 객관성을 상식으로 변경해도 동일할 것 같다. 단어의 의미가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종종 자신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상식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누군가에게 당연한 것이 나에게 당연하지 않은 것들도 있을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모두에게 당연시되는 상식에 포함되는 것들이 거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한 사람이 모든 걸 알기보다는 협력이 쉽게 되도록

나이가 들고 경력이 조금 쌓이면서 깨달은 내용이다. 어릴 때는 뭐든지 다 알아야 하고 잘해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가능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게 나는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자유롭게 협력 가면서 알게 모르게 서로서로 발전해 가는 것이다. 책에서는 '삼투압적 의사소통'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심리적 안정감

팀에 누가 있는지 보다 팀원들이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자신의 일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더 중요하다. 무엇보다 심리적 안정감이 중요한데 이는 팀 토론과 같은 활동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한다. 전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다. 결국 개인의 열정이나 의지가 중요하고 이를 유지하는 데는 심리적 안정감은 크게 작용한다. 의견을 냈는데 안 좋은 말만 들으면 그 이후부터는 의견을 내는 것조차 하기 싫어지는 경험은 누구나 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일하는 데 있어 내가 잘못을 해도 괜찮을 것이라는 믿음 또는 의지할 만한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등은 꽤나 중요한 부분이다.


확률론

읽고 나면 당연한 듯 하지만 생각해보면 꽤나 유용한 설명이었다. 핵심만 보자면 좋은 일은 'OR'가 되도록 하고 나쁜 일은 'AND'가 되도록 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슈 해결(좋은 일)은 모두 공유해서 한 명만 방법을 찾아도 해결되도록 하고, 버그의 발생(나쁜 일)은 코드 리뷰를 통해 모두가 실수를 해야만 발생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아마 이외에도 적용할 수 있는 상황이 많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당연한 내용이지만 기억하고 적용하기 쉬운 아주 좋은 팁이 아닌가 생각했다.


애자일 그리고 애자일 코치

오래전에 'Agile'과 'agile'의 차이에 대한 글에 대해 읽었던 기억이 있다. (다시 찾아보니 그 내용도 저자인 김창준 님의 글이었다.) 대문자로 시작하는 'Agile'은 어떻게 해야 한다의 구체적인 방법들이라면 'aglie'은 어떤 추상적인 것을 의미한다. 흔히 말하는 애자일 정신 또는 애자일 선언문의 내용 같은 것이다. 나도 애자일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보기도 하고 책도 보고 했지만 항상 의문은 있었다. 정답은 없다는 게 기본적인 신념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좋은 방식이라며서 확정하고 권하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달까. 마침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공감이 많이 됐던 부분이다.

애자일(agile)의 성공적인 도입을 위해서는 애자일 코치가 필요하다. 위의 내용들을 인지하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당연하게도 나이나 경력 등등은 전혀 무관하다. 요약하면 애자일은 결국 '함께 자라기'이고 애자일 코치는 이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내 경험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좋았었구나를 깨닫는 어떤 팀(실제 조직 단위는 팀이 아니었다)이 있다. 대기업이다 보니 분명 보다 조직적인 차원에서의 프로세스들은 많았지만, 실제 업무를 하는 데 있어서는 딱히 정해진 것들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애자일에서 흔히 말하는 어떤 방벙론들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신기하게 개인적으로도 다들 뛰어나 보였고 조직적으로도 유기적으로 잘 돌아가고 있었다. 당시 주니어였던 나는 주위의 선배들을 보고 안정감도 얻었고 배우기도 많이 배웠다. 그런 분위기 덕분인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참 좋았다. 물론 외부에서도 인정받는 팀이었다. 점점 경험이 쌓이면서 그것이 진정한 애자일이고 좋은 팀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정해진 좋은 방법이라는 게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에 또 각 팀에 맞는 효과적인 무언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막상 그게 무엇인지 말로 설명하려면 참 쉽지가 않다. 아마 문화라는 것이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외에도 많은 내용이 있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은 사람을 위한 일이고 그 일을 하는 것도 사람이라는 사실일 것 같다. 고객도 고객이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나 팀원, 물론 스스로도 포함된다. 잘하기 위해 함께 자랄 수 있는 고민을 하고 실행해 가는 과정. 뭐라고 부르든 간에 그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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