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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라키 Dec 26. 2021

예능으로 깨닫는 리더십

그리고 팔로워십

꾸준히 챙겨보는 몇 안 되는 TV 예능 중에 '뭉쳐야 찬다'가 있다. 처음엔 축구 예능이라 보기 시작했지만 보다 보니 단순 축구를 떠나 이른바 왕년에 각자의 종목에서 한 가닥 했던 전설들이 새로운 종목에 도전하고 성장해가는 걸 보는 게 재미가 있었다.


시즌1은 아무래도 시작이다 보니 축구 실력보다는 인기를 위해 유명한 선수들 위주로 멤버를 구성한 것 같았다. 감독보다 나이가 많은 선수들도 꽤 있었고 예전만큼 신체적인 능력도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어르고 달래면서 팀을 이끌어가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하지만 점점 늘어나는 실력과 최종 대회에서 이룬 성과를 봤을 때는 괜히 전설들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시즌2는 조금 달랐다.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젊고 능력 있는 선수들 위주의 팀이 구성되었다. 그런데 조금 의아한 멤버가 한 명 있었다. 바로 유도 출신 '윤동식'이었다. 농구 버전인 '뭉쳐야 쏜다'에서 영입돼서 어리바리한 모습들로 사실상 실력보다는 웃음을 담당했다. 이런 모습은 시즌2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존 뭉찬 멤버들을 제외하면 뭉쏜에서 뭉찬으로 넘어온 유일한 멤버인 데다가 오디션까지 거치며 힘들게 뽑은 실력자들 사이에서 그의 모습은 의아함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팀에서 고령층에 속하는 데다 실력은커녕 기본적인 룰도 숙지를 못하다 보니 보는 내내 본인도 버티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계속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때 안정환 감독의 리더십이 눈에 띄었다. 시즌1과 뭉쏜을 거치면서 본 안정환 감독과 선수로서의 모습에서 똑똑한 사람이구나 싶긴 했다. 하지만 팀이 일반인이 아닌 신체조건이 뛰어난 운동선수 출신들로 구성됐다는 점도 한몫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같이 들었었다. 그런데 시즌2에서는 조금은 다른 느낌이었다. 특히나 미운 오리였던 윤동식을 대하는 모습에서 발휘되는 리더십은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리더십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한다. 나누는 기준에 따라 그 개수가 많기도 적기도 하지만 어쨌든 각각의 유형에는 멤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장/단이 있다. 결국은 사람의 문제다 보니 정해진 답이 있을 수는 없겠지만은 좋은 리더인지 아닌지는 어느 정도 판단이 가능한 것도 사실이다(물론 주관적이겠지만). 내 기준에서 안정환은 아주 뛰어난 리더였다. 선수 출신 감독으로 축구에 대한 능력이나 이해는 당연하고 감독으로서의 전략/전술 등 지략도 훌륭했다. 적당한 타이밍에 선수들 개개인에 맞게 적당한 당근과 채찍을 구사하는 것도 전혀 부족해 보이지 않았다.(청춘 FC에서의 모습과 비교하면 더욱 드러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주변의 시선이 어떻든 팀원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고 지지해 줬다는 점이다.


시즌1과 다르게 시즌2는 명확하게 성과를 내기 위해 모인 팀이었다. 그 목적에 윤동식은 매우 부합하지 않는 선수였다. 사실 잘하는 선수 한 명을 영입하는 게 팀 차원에서는 훨씬 더 이득이다. 하지만 시즌을 계속 보다 보면 안정환 감독이나 이동국 코치가 윤동식을 따로 불러서 코칭도 하고 어드밴티지도 적당히 주면서 너무 뒤처지지 않고 따라갈 수 있게 배려해주는 모습들이 자주 보인다. 외부의 평도 워낙 안 좋았기 때문에 윤동식 본인도 힘들 것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인지 조금은 과한 칭찬과 격려를 통해 동기부여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팀원들에게도 영향이 미친 것 같았다. 시즌 초반에는 실수하는 윤동식을 보면 답답해하는 모습들이 자주 보였는데 지날수록 선수들도 같이 도와주고 격려하는 모습들로 변해갔다. 


그리고 결국 그 믿음에 보답하듯 윤동식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집념으로 골을 넣었다. 그리고는 안정환 감독에게 곧장 달려가 안겼다. 마치 2002 월드컵의 박지성과 히딩크의 모습처럼. 감독과 코치는 물론 모든 멤버들이 환호했다. 경기가 끝난 후 윤동식 본인도 항상 후배들에게 짐만 되는 것 같아 걱정이었는데 10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는 것처럼 시원하다며 감회를 전했다. 그 이후로 이어진 경기들에서도 비롯 교체로 출전하기는 했지만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키메이커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유도선수에서 격투기 선수로 이어진 윤동식 개인사와도 조금은 닮아 있는 것 같아 씁쓸하면서도 감격적인 장면들이었다.


리더의 믿음과 그 믿음에 보답한 구성원. 어찌 보면 성과를 내고 실력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치열한 세계에서 이상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누군가는 같은 상황에서 전혀 다른 선택을 내렸을 수도 있을 테니까. 실제로 그런 리더들을 몇 번 경험하기도 했다. 팀원들에 대한 신뢰가 없고 그러다 보니 외부의 압력에 휘둘린다. 특히나 뒤떨어지거나 조금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회를 주기보다는 강압과 일관성 없는 피드백을 준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 사람은 저절로 밖으로 밀려 나간다. 아무리 다른 게 뛰어나다고 한 들 그런 리더와 같이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은 절대 그렇게만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다짐해본다.


또 한 편으로 생각해보면 리더십이라는 게 명확하게 리더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만도 아니다. 팀원으로서 동료로서 서로가 서로에게 리더십과 팔로워십을 발휘할 수도 있다. 그게 자연스럽게 잘 이루어지면 좋은 팀이고 한 팀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벌써 연말이고 또 평가 시즌이 다가왔다. 과연 나는 누군가에게 좋은 리더이자 팔로워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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