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 학교는

경기도 교육감 2025 신년사를 돌아보며

by NUL BOM

경기도는 넓은 면적만큼이나 다양한 지역 환경으로 인해 발생하는 교육 격차를 감소시키기 위해 그 방안으로 공교육 3 섹터를 내세웠다. 1 섹터는 무엇보다 학교! 교사가 교육과정 속에서 학생의 미래를 준비하는 학교다. 학교에서는 학생의 기본인성과 기초역량 향상에 주력하며 하이러닝 고도화를 지원한다고 되어있다. 하이러닝을 통해 학생의 학습 과정을 면밀히 살핌으로써 학습 결손을 예방하고 맞춤형 수업을 제공하며 이를 통해 교사가 학생의 역량 향상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는 임태희 교육감이 자주 언급하는 '100명의 학생에게 100개의 성공모델을 만들어 가겠다'란 표현과도 일맥상통한다.


만약 학교 내에서 학생을 지원하기 어렵다면 경기 공교육 2 섹터, 경기공유학교가 이를 보완한다. 지역협력으로 지역사회와 함께 다양한 교육역량을 학교와 연계하여 학생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지역 자원을 활용하거나 기업이나 기관이 재능을 기부하거나 학생의 기획으로 운영이 되는 것 등을 모두 포함한다. 다문화 학생이나 배움이 느린 학생의 위탁 수업도 지역 자원과 연계할 수 있다.


더 나아가 AI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여 경기도는 공교육 3 섹터로 경기온라인학교를 내세우고 있다. 시공간의 제약 없이 양질의 교육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인적, 물적 자본이 부족한 학생의 교육을 지원하고 학교 밖 청소년까지도 책임진다.


교육 형평성을 최대한으로 하여 누구나 소외됨 없이 충분한 교육의 기회를 보장하고자 하는 경기 교육, 그러한 경기 교육에서는 교사의 역할을 매우 중요시 여긴다. 물론 전체적인 방향성은 학교의 학생, 교사뿐 아니라 학부모, 지역사회까지 모두가 함께 참여해서 이뤄나가는 공동재로서의 교육을 지향하지만 그중에서도 교사는 교육 혁신의 주체로써 역할한다는 것이다. 무궁무진한 교육 콘텐츠를 생산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소비하는 프로슈머로써 이들 교사의 전문성과 자율성이 존중되어야만 교사와 학생의 활발한 상호작용을 통해 미래교육이 실현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교육감의 신년사를 분석하며 나에게 학교는 어떠한 곳이었고, 나는 앞으로 어떠한 학교를 만들고자 하는지, 어떠한 교사가 되고자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2-30년 전의 내가 다닌 학교는 지금과는 많이 다른 교육이 이뤄졌을지라도 나에게 독립성, 성취성, 보편성, 특이성을 길러주었던, 일종의 사회화를 이루게 도와준 공간이었다. 나는 학교를 통해 학교의 규칙을 따르며 점차 독립적인 인간으로 자라날 수 있게 되었고, 학교에서 나만의 노력과 능력, 성취로 평가를 받음으로써 열심히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성취에 대한 뿌듯함을 느끼며 지속적으로 동기를 부여받고 매번 최선을 다하게 하는 원동력을 얻었다.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보편성이 존재하는 한편, 저마다의 역할과 능력이 있다는 특이성에 대해서도 알게 해 준 곳이 바로 학교다. 어쩌면, 학교는 그 당시 나에게는 전부였던 세계였다.


진로 교육이 체계적이지 않았던, 그저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제일이었던 그 시절에, 고등학교 선생님께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미래를 나에게 제시하셨다. 그냥 그 직업이 너의 성적에 걸맞고 적당해서란 이유라기보다는 나의 성향상 적합하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미래 직업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한 채 고3이 된 나는 당시 문과였기에 더더욱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미래를 꿈꿔보게 되었다. 사람의 생명에 책임을 지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껴 의학계열 쪽으로는 어렸을 적부터 배제를 해오던 나에게, 그만큼의 부담은 없되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따뜻한 마음, 뭐든 열심히 끝까지 해내는 성실한 자세와 잘 어울린다며 간호사라는 직업을 택해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제안하신 것이다. 그로부터 5년 뒤, 나는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손에 꼽는 상급종합병원에 입사한다. 그리고 누가 봐도 직업 사명감이 뛰어난 간호사로써 임상에서 10년 넘게 근무를 했다. 다시금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나의 이러한 미래를 꿈꾸고 실천하게 해 준 데는 학교와 선생님이 있었다는 것이다.


몸이 많이 힘들었던 10년이 넘는 임상 간호사 시절 동안 나를 버티게 해 주었던 건 나로 하여금 몸과 마음이 아픈 가운데도 순간순간 미소 짓고 행복해하며 고마움을 표현하는 환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내 고등학교 선생님은 이러한 나를 꿰뚫고 계셨을지도 모르겠다. 나로 하여금 다른 사람이 변화하고, 행복해하는 삶이 나에게는 가장 값진 것이라는 것을 선생님께서는 어쩌면 알고 계셨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마음은 지금도 변함없다. 아니 변함없기 때문에 이제는 교사로서 학교에 들어가고자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정신과 안정병동에서 만날 수 있었던, 일찍부터 마음의 상처를 입고 삶을 포기하고자 하는 아이들과의 교류로 더 그러한 마음이 간절해진 것 같기도 하다.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던 아이들, 그나마 이런 아이들은 치료의 기회라도 주어지는 반면, 학교에는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한 채 혼자 힘들어하고 있을까란 걱정이 앞섰던 것 같다.


내가 교육학 논술에서 늘 써먹던 결론 문구가 있다. '교사가 학생의 성장에 중심에서 역할할 수 있을 때, 학교는 미래사회가 필요로 하는 역량을 갖춘 학생을 길러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런 교사가 되고 싶다. 나로 하여금 학생들이 큰 변화는 아닐지라도 조금씩 변화하는 순간에 함께 기뻐하고 학교를 오고 싶은 곳으로 느끼게 하는 그런 교사 말이다. 학생들이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끼고 작은 행복을 되찾을 때 비로소 배움이 시작된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을 곁에서 지켜주고 함께 걸어주는 교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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