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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락 Mar 09. 2019

불확정성의 원리

우리는 무엇을 보고 어떤 것을 믿을 수 있을까

B의 개(인적)취(향)소(개란)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의 경계


 영화 스티그마타를 본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을지는 모르겠다. 취향 참 특이하다는 소리를 듣는 나 역시 처음에는 얼떨결에 보게 된 영화였지만(지금은 골동품으로 응답 시리즈 에서나 볼 수 있는 비디오테이프로 본) 오멘이나 엑소시스트류의 종교적 호러영화와는 다른 오컬트 장르를 접하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 거의 20년 전 (국내 개봉이 2000년이었으니. 그리고 이때는 영화관에 걸리는 것 보다 비디오로 출시되는 시기가 더 빠른 시대이기도 했다.) 오래된 영화이기에 기억에 남은 부분이 적어 오랜만에 다시 보니, 여전히 지인들에게 추천하기에는 주저하게 되지만 꽤나 취향의 영화임은 분명했다. (이때부터 나의 취향이 한결같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인간은 잘 변하지 않는다.) 영화의 제목인 ‘스티그마타’는 성서적 정의로 “종교적인 교리로 도저히 해석이 되지 않고 있는 일련의 미스터리 한 사건이나 증상 또는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입은 상처를 그대로 받는 현상” 즉 성흔을 말한다. 이는 극히 드문 현상이며 옛날부터 믿음이 가득 찬 소수의 신자들에게만 발현되는 예수가 받은 상처의 흔적인데, 이러한 징후는 신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는 영광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불교에서는 고승이 입적할 때 몸에 사리가 나온다는 사실과 비교해보면, 크리스트교는 꽤나 현세 지향적이라고 느껴진다.)
 영화를 혹시나 봤거나,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볼 기회가 있다면, 고스트 앤 크라임(2005 ~ 2011년)에서 알리슨 드부아 역을 맡았던 패트리샤 아퀘트를 알아볼 수 있을지도. 미드에서 꿈을 통해 영혼과 소통하는 주인공을 연기하는데, 무려 스티그마타에서는 20대의 발랄하고(믿음이 없고) 자유로운(욕도 잘하는) 미용사인 프랭키로 분한다. 종교와는 거리가 먼 프랭키가 성흔을 가지게 된 이유는 평범하다. 브라질로 여행 간 어머니가 기념 선물로 묵주를 딸에게 보내는데, 이 묵주는  한 소년이 장례를 치르고 있는 신부의 관에서 빼돌린 장물(?)이었다. 그런데 이 묵주의 주인은 과거 바티칸에서 교회의 정의에 맞지 않아 폐기될 위기에 처한 숨겨진 복음서를 들고 도망친 한 신부였다. 한 가난한 소년이 일용할 양식을 위해 도둑질한 묵주는 브라질 시골마을 교회에 은거하며 복음서를 번역하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삼았지만 도중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게 되는 그 집념의 성직자인 알라메이다 신부의 소유물이었다. 묵주를 따라 알라메이다의 혼까지 더블로 받게 된 프랭키는 빙의에 의해 알라메이다의 성흔을 그대로 가지게 된다.(여기서 이미 알라메이다는 성인의 경지에 이르렀고, 그의 소망은 신성한 것으로 간주된다. 크리스트교에 대한 비판이라는 논란은 이 영화의 개봉과 함께 한동안 바티칸을 불쾌하게 했다.) 등의 채찍 자국, 이마의 가시관 자국, 양 손과 발등의 못 자국, 옆구리의 창 자국으로 이어지는 성흔에서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첫 번째의 성흔이다. 지하철의 양 손잡이에 의지하며 매달린 여성과 등에 새겨지는 채찍의 흔적은 웬만한 공포영화의 장면보다 소름 끼쳤다. 그것이 ‘성흔’이라는 것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성스럽고 경외심이 생겨야 할 상황이 공포로 느껴질 수 있다는 이중성을 보여줬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런 경험은 프랑스 영화 ‘마터스 : 천국을 보는 눈’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참고로 상당한 각오가 필요한 영화니 추천은 하지 않는 걸로) 요란한 성흔 현상이 주변으로 알려지며 문제가 되자 바티칸에서는 프랭키를 조사하기 위해(교회도 다니지 않으면서 성흔을 지니게 되는 인물) 조사관 앤드류 신부를 파견한다. 알라메이다 신부로 빙의된 프랭키는 앤드류 신부의 양심과 신실성을 시험한 후 과거 바티칸에서 숨기려 애쓰는 복음서의 존재를 밝히고 자신이 끝맺지 못한 이후의 일을 부탁한다. 그럼 여기서 우리의 주인공인 프랭키는 어떻게 됐을까? 두 가지 버전이 쿠키영상처럼 나오는데 하나는 전달자의 역할을 끝낸 프랭키가 살아남는 장면과, 다섯 번째의 성흔까지 발현된 프랭키가 죽는 장면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주인공이 살아남는 것보다 죽는 결말이 더 인상적이었던 몇 안 되는 결말이었던 것 같다. 살아남은 것으로 보상이 되기에는 영화상의 프랭키의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 대한 너무 과한 설명이 필요한가 하는 고민을 했지만, 아마 애써 찾아보는 독자가 거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소개한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경향의 오컬트적 영화들이 소개되었다. 나홍진 감독의 [곡성]과, 강동원 주연의 [검은 사제들]이다. 여기서 [검은 사제들]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개인적으로는 강동원으로 충분한 영화이다.) [곡성]이야 워낙 유명하기에 덧붙일 필요성이 느껴지진 않는다. 보기 전 보다 보고 난 후가 더 알 수 없는 영화이기도 하고, 스포가 의미 없는 영화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마 영화를 본 사람들은 어떤 의미인지 공감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나의 취향이 특이하긴 하지만, 설마 혼자서만 특이할 거라는 외로운 상상은 하고 싶지 않다.) 신과 악마, 주술과 부적, 의심과 부정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무엇과 누구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는지에 관해서 시작과 끝을 촘촘히 채우고 있는 이 영화는 고립된 마을과 폐쇄적인 공동체 관계에서 등장한 낯선 인물과 이해될 수 없는 사건들을 한 가장의 상황을 통해 보여준다. 알고 있는 것과 알게 된 것, 알 수 없는 것과 알아볼 수 없는 것에 대한 질문들이 운무처럼 덮쳐지면서 우리는 존재하는 것과 존재할 수 있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을 영화를 통해 경험할 수 있다. 혹시 이러한 소재를 좋아한다면,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 있다. 나에게 [우부메의 여름]은 2014년부터 매 년, 입하를 기념하듯 읽게 되는 책이다. 여름마다 읽어야 할 것 같은, 의무와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책은 대학에서 점균을 연구하다가, 결혼을 계기로 생활에 전념하기로 한 소심하고 우울증이 있는 남자인 세키구치가 고등학교 때 원치 않게 얽혀버린 미스터리한 남자 ‘교고쿠도’에게 찾아가 ‘20개월 동안이나 아이를 밸 수 있다고 생각하나?’를 질문하면서 우리를 이상한 경계로 떠밀어 버린다. 

“이 세상에는 이상한 일 같은 건 아무것도 없다네, 세키구치 군........
원래 이 세상에는 있어야 할 것만 존재하고, 일어나야 할 일만 일어나는 거야. 우리들이 알고 있는 아주 작은 상식이니 경험이니 하는 것의 범주에서 우주의 모든 것들을 이해했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상식에 벗어난 일이나 경험한 적이 없는 사건들을 만나면 모두 입을 모아 저것 참 이상하다는 둥, 그것 참 기이하다는 둥 하면서 법석을 떨게 되는 것이지.”

 이렇게 초반부터 세상에서 이상한 일은 없다!라고 까놓고 시작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교고쿠도는 신사를 가지고 있는 신주이며, 넘쳐나는 장서를 파는 고서점의 주인이기도 하다. 역사, 종교, 신화, 전설에 해박하며 부업으로 주술과 굿을 행하는 인물의 입에서 과학과 심리학, 정신 분석학이라는 개념이 나오면 더 의뭉스럽기 짝이 없다. 

“뇌는 세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세. 눈이나 귀를 통해 바깥에서 들어온 모든 정보를 뇌라는 세관은 확실히 검열한다네. 그리고 납득이 가는 것만 통과시키지. 검열에 통과한 것만 의식의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거야.............
여기서 말인데, 이 완전무결한 세관이 부정을 저지르거나 모조품을 수입하면 어떻게 될 것 같나? 의식의 무대를 보고 있는 손님은 금방 그것이 가짜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나?”

 라는 이야기를 하다가 아인슈타인과 슈레딩거의 양자이론을 슬그머니 끼워넣기도 한다. ‘불사리 통에 들어있는 하얀색 고체 입자가 불사리인지 과자점의 마른과자인지는 뚜껑을 열어 먹어봐야 정의된다’라면서 관측자의 관찰 행위가 결과 자체에 영향을 준다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끌어오는 인물을 이렇게 기담 소설에서 보게 될 거라고 누가 예상을 했을까.(읽다 보면 잡학 다식한, 대화를 할수록 상대방을 이상하게 기분 나빠지게 만드는 이 호랑말코 같은 인물에 빠지게 될 것이다. 양자이론이라고 머리 아프게 생각하지 말자. 마블의 [엔트맨]에서도 양자이론의 내용이 차용되었다.) ‘일본’이라는 나라와 ‘태평양 전쟁 이후’의 시대, 신관 역할도 가능한 ‘인물’인 교고쿠도와 ‘밀실’에서 실종된 남편과 남편의 실종 후 ‘20개월’의 임신기간을 가진 산모의 등장은 곡성의 플롯만큼이나 어둡고 기묘하다. 삼류잡지에나 쓰일 소비적인 이 이야기는 밀실에서 실종된 남편이 후지노 마키오라는 고등학교 동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새로운 장으로 들어간다. 독일에서 유학하고, 전쟁에 징병되었다가 의사 면허를 취득한 마키오는 명망 있는 구온지 가문의 데릴사위로 장가가는데, 고등학교 때의 풋풋한 연애담으로 세키구치와도 안면이 있는 사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이에 교고쿠도는 세키구치에게 진보초의 탐정에게 가서 상담하라는 조언을 하는데, 그가 만나려고 하는 ‘장미십자탐정사무소’의 탐정인 에노키즈 레이지로 역시 상당히 독특한 인물이다. 집안 좋고, 잘생기고 능력도 좋은 이른바 ‘엄친아’의 표본인 레이지로는 교고쿠도의 말을 빌리면 ‘남의 기억을 재구성해서 보아 버리는 성가신 사람’이다. 교고쿠도는 ‘기억’이란 물질의 속성 그 자체라면 모든 사물에 ‘시간의 흐름에 따른 기억’의 속성이 있으며, 이는 ‘뇌’라는 한정적인 저장 편집기 밖의 무수히 많은 ‘사물’에도 시간과 기억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레이지로는 공간과 사물의 흘러 다니는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것으로 소개된다. 아마 가장 비슷한 용어가 사이코메트리가 아닐까. 
(사이코메트리 : 만지거나 보거나 듣고 그것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는 초능력의 일종. 과거, 현재, 미래의 정보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이 장면에서 세키구치와 교고쿠도, 그리고 교고쿠도의 여동생 아즈코의 대화를 통해 생물과 무생물의 정의를 언급하기도 하는데, ‘생명’과 ‘기억’이 생물적 요소가 될 수 있는가라는 과학적 질문을 읽어낼 수 있다. 여기에 관심이 있다면 후쿠오카 신이치의 교양과학서 [생물과 무생물 사이]를 추천한다.) 결국 삼류 가십거리가 될 기사는 ‘20개월 동안 임신한 여자’ 구온지 교코의 집안이 대대로 유명한 산부인과 의사 집안이고, 그 집안에 장가 가 실종된 인물은 고등학교 동창이며, 구온지 교코의 언니인 구온지 료코가 에노키즈에게 실종된 마키오의 행방을 의뢰하면서 추리 사건으로 바뀌고, 여기에 구온지가가 최근 산모들의 낙태와 신생아의 실종사건의 대상이 되어 경찰인 가바 슈타로까지 엮이면서 상황은 더욱 모호하게 전환된다. 이 사건의 중심은 인 외적인 것일까, 아니면 결국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 인위적인 것일까? 전설과 기담, 요괴와 빙의라는 증명할 수 없지만 존재하는 세계와 심리학, 불확실성의 원리, 기억과 감각이라는 과학적 증명을 시도하지만 불특정 한 이론들이 소심하고 우울증을 겪는 자존감 낮은 세키구치의 입장으로 서술된다. 

 초반의 고비를 잘 넘긴다면, 충분히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혹시나 호기심을 가지고 읽어 볼 소수의 독자들을 위해 더 이상의 책 소개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책 제목이 왜 [우부메의 여름]인지는 읽고 나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치맥보다는 향이 좋은 차와 따뜻한 구운 과자가 어울리는 소설이므로 비 오거나 흐린 날(나는 이 책을 세부의 리조트에서 처음으로 읽었다.) 읽어보면 좋을 책으로 추천한다.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보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한다 
– 율리우스 카이사르

사람들은 그들이 보고자 하는 것만 보지만, 또한 그들이 볼 수 있는 것만 보려고 한다
- 하인리히 뵐플린


선택적 지각

 : 외부 정보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기존 인지 체계와 일치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선택하여 지각하는 일.

칵테일파티 효과

 : 여러 정보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고 특정한 정보에 무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거나 의식하게 되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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