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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락 Mar 09. 2019

나는 무엇을 기억하는가

의식은 주관적일까

B의 스릴러

기억되는 것과 기억하는 것의 모호성에 대해 


 중학교 시절, 나는 꽤나 MBC의 주말의 명화나,  EBS 세계의 명화를 즐겨봤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취향이 참 특이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편식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실제로 그런진 모르겠지만) 막연한 환상을 채워주던 도구들은 책과 영화들이었고, 그중 어쩌다 부모님 몰래 본 영화들은 더욱 재밌게 본 기억이 난다. 예나 지금이나 일단 시작을 했으면 끝을 보는 성미인지라 웬만한 영화들은 다 엔딩을 봤는데(이러한 나름의 고집이 꺾일 뻔한 영화가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였다. 하지만 끝까지 버티고 있어 아직 오점은 남지 않았다. 아놀드..... 당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어요......  나의 추억에 대한 의리는 이것으로 남아있지 않을 듯하다. ) 10대였던 나에게 흑백영화는 밋밋했고, 연극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이해하기에는 어린 나이였으며, 로맨스 영화를 감상하기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다지(그래서 카사블랑카도 별 감흥이 없는 영화였다) 영화 가스등도 처음에는 별 기대 없이 봤던 영화 중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쩌다 부모님이 늦으시고, 동생은 자고 있고, 잠은 오지 않아 심심한데 뉴스는 보기 싫어하는 중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자는 것과 재미없어 보이는 영화였다. 막 시작한 영화는 음산하고, 불안정했다. 무표정에 포마드 머리를 한 남자 주인공은 색감이 없는 공간에서 흡혈귀 같은 느낌이 들었으며, 부드러워 보이는 피부의 여자 주인공은 불안하고 겁먹은 행동으로 이곳저곳을 배회한다. 
그런데 웬걸. 나는 자신을 과소(또는 과대) 평가한 걸까. 

 영화는 죽음과 사랑으로부터 시작했다. 

 유명 오페라 가수인 앨리스 엘퀴스트는 자신의 집에서 살해되었으나 경찰은 범인을 찾지 못하고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그녀의 막대한 재산은 조카인 폴라가 물려받았으나 태어나면서 어머니를 잃고 이모까지 살해당한 폴라는 상속받은 저택을 부담스러워한다. 이탈리아로 성악공부를 하기 위해 유학을 떠났으나 공부가 목적이 아닌 폴라는 마음이 공허하다. 이때 빈자리를 채우며 폴라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는 도자기 인형처럼 매끄럽고(속을 알 수 없고) 우아한 행동의(사진처럼 정적인 듯 한) 성악을 반주해 주던 그레고리였다. 허기진 마음의 폴라는 그레고리와 결혼하며 가족이라는 자신의 편을 만들고 애정을 쏟고, 결국 남편의 희망에 의해 이모의 저택으로 되돌아온다.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 폴라는 불안한 눈빛을 가진 소녀였지만 화면 속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결혼 후 런던으로 돌아온 폴라는 배경과 함께 희미해진다. 색감이 없는 흑백의 영화에서 질감을 더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달까. 다시 본 영화에서 흑백영화가 가지는 서사적 기법을 좀 더 확인할 수 있었다. 구별되는 색체는 사라졌지만, 그 때문에 형상은 더 부각되었으며 크로즈 업 되는 화면 속의 인물들의 표정이나 눈빛. 움직임의 라인들을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 되돌아온 저택에서 폴라는 철저히 고립된다. 희미하게 깜박이는 가스등.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물건을 잃어버리게 되는 상황. 다락박의 조용한 소음 등은 폴라를 혼몽으로 이끌고 외출조차 남편에 의해 금지된 폴라는 자신에 대한 의심으로 괴로워한다. 태생적으로 외로운 소녀, 살해된 친척의 저택을 물려받은 심약한 상속녀의 프레임을 통해서 바라본 폴라는 그레고리나 사용인들의 시선과 입을 빌리면 확실히 신경쇠약적인 모습이 보인다. 영화는 미쳐가는 ‘그녀’를 보여주는 것인지, 아님 ‘미치게 하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인지에 대해 친절하지 않다. 연결고리는 새로운 인물에 의해 풀리게 된다. 런던 경시청의 브라이언 캐머론 경위는 스쳐 지나간 폴라를 통해 자신의 우상이었던 성악가 앨리스를 떠올리게 된다. 앨리스의 미결 사건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던 브라이언은 폴라의 주변을 살핀다.(덕후는 위대하다) 그레고리에 대한 알 수 없는 적대감과 조용히 미쳐가는 우상을 닮은 폴라에 대한 연민으로 독자적으로 재수사를 시작한 브라이언은 폴라와의 대화와 주의 깊은 관찰을 통해 그레고리의 의심스러운 행동을 추리하며, 그가 10여 년 전 폴라의 이모인 앨리스의 살해범이며, 범행의 목적인 보석을 찾기 위해 폴라와 결혼한 후 다시 범죄현장으로 되돌아온 것임을 알게 된다.(CSI 미드에 익숙한 지금으로써는 사고 추리를 통한 범죄 해결이 미심쩍긴 하지만) 그레고리와 브라이언의 다락방 결투 후(기대는 말길. 액션은커녕 율동적 움직임도 없다. 닫힌 문만 화면에 가득 찬 장면에서 두 사람의 결투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듯. 거기다 결투 후 승리한 브라이언이나 의자에 묶여있는 그레고리나 셔츠 하나, 머리 스타일 하나 바뀐 게 없다.) 패배한 그레고리는 아내인 폴라에게 서랍 속의 칼을 꺼내 자신을 풀어달라고 명령한다. 이때 폴라의 핵 사이다 발언이 나온다.

 “나는 미쳤어요. 미친 여자가 어떻게 남편이 탈출하는 것을 돕죠?”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그레고리이다. ‘보석’으로 상징되는 욕망을 수용하고 경계를 넘어버리는 과단성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 십여 년 동안 아내를 열렬히 사랑하는 ‘남편’으로의 가면, 한 사람을 정신병으로 몰아가기 위한 치밀한 설계는 악역이긴 하지만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가장 연민을 느끼는 인물은 폴라이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트라우마를 벗어나기에는 너무 많은 일을 겪지 않았던가. “아침에 해가 뜨면 밤이 있었다는 사실은 잊죠. 당신도 그럴 거예요 “라고 위로하는 브라이언의 말은 모순인 듯하다. 폴라는 평생을 잊지 못했으며, 사실이 아닌 사건들을 ‘잊었기’ 때문에 남편으로부터 고통받았다. 우리는 잊을 수 있는 일을 잊지 못하며, 오히려 잊지 못하기에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가스 라이팅

 상황을 조작하는 등의 방식으로 타인의 판단력을 잃게 만드는 행위를 말한다. 넓게는 상대방을 통제하기 위해 그가 자신을 의심하게 만드는 행위 전반을 일컫는다. 연인이나 가족 등 친밀한 관계에서 주로 나타난다고 알려졌다. 미국의 심리치료사 로빈 스턴(Robin Stern)은 저서 《가스등 이펙트》에서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을 조종하려는 가해자와 그를 이상화하고 그의 관점을 받아들이는 피해자가 만들어내는 병리적 심리 현상’을 ‘가스등 이펙트(Gaslight Effect)’라 설명했다. 
가스 라이팅 가해자는 거짓말, 사실에 대한 부정, 모순된 표현, 비난 등을 통해 상대방 스스로 자신의 판단력을 의심하게 만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스 라이팅을 당하는 사람은 점차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며 가해자에게 정신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가해자는 이런 심리적 상황을 이용해 타인의 행동을 통제하고 지배력을 행사한다. 가스 라이팅을 겪은 피해자는 우울증과 무기력증을 겪으며 사회적 관계에서 점차 고립된다. 특히 지속적인 가스 라이팅은 피해자 자신의 감정과 생각, 인지 경험까지 믿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심각한 정서적 학대에 해당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으로 살펴볼 수 있는 책이 피레르 르메트르의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이다. 조금은 낯선 스릴러인데, 프랑스의 스릴러 작가 중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와 함께 가장 대중적이며(응?) 영화화되면 좋을 것(이미 소문은 무성하지만) 같은 소설을 쓰는 작가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소피는 자신을 잃어가는 여자로 처음 등장한다. 자신이 어떤 경험을 가지고 살아왔는지, 지금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억 없이 ‘무언가’에 쫓기며 삶에 허덕이고 있다. 베이비시터로 등장하는 첫 쳅터를 보며, ‘이런 여자에게 아이를 맡기다니,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데?’라는 느낌으로 보고 있었는데 몇 장 지나지 않아 소피가 돌보던 어린 ‘레오’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한다. 살해된 아이를 처음 본 소피는 공포에 질린 상태로 도.망.을 친다. 단순히 신경질적이며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여자의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신고도 없이 자신의 짐을 싸며 무작정 도시를 떠나는 여자의 행위와, 어제의 기억이 없는 자신을 불안해하는 강박증이 여자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소피의 도주 길은 또 다른 죽음과, 어제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지금의 자신이 넘치기 직전의 면수(麵水)처럼 조급함과 긴장감으로 끈적인다. 하지만 미친년 취급하기에 소피는 매우 주도면밀하게 자신을 위장하는데, 일정한 거주지를 가지지 않고, 현금으로만 일당을 받는 직업을 가지며,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시간도 10분을 넘기지 않는다. 새로운 신분을 만들고, 정착하기 위해 ‘남편감’을 고르는 여자는 영리함과 비열함, 처연함과 비천함 사이를 왕복하며 호오의 선택을 불명확하게 한다. ‘단순히 여자가 진짜 이 모든 일을 한 사이코 같은 정신분열증 환자라면 너무 간단한 얘기가 아닌가? 아냐............. 혹시 이런 걸 노리고 쓴 건가? 뭐야. 프랑스 작가의 취향을 못 따라가겠어’ 뭐 이런 고민까지 하게 만들었다. 책의 딱 절반을 볼 때까지는.

 프랑스 소설이란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나는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미국 작가로는 딘 쿤츠(이방인과 심장 강탈자 추천). 존 그리샴(의뢰인. 타임 투 킬 추천). 제프리 디버(링컨 시리즈보다는 악마의 눈물 추천). 할런 코벤(숲 추천). 퍼트리샤 콘웰(스카페타 시리즈)의 팬이다. 미국의 스릴러는 인과관계가 깔끔하다. 미국 스릴러의 특징은 피해자가 특정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으며 분명한 목적이 있고 법과 제도하에서 일어날법한 사건들로 구성되어있다. 그러나 어디서나 예외는 있으며, 이 예외성 때문에 난 딘 쿤츠의 오래된 애독자이다. 아가사 크리스티나 아서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은 재밌게 읽어보긴 했지만 취향은 아니다. 어쩌겠는가. 안 당기는 걸... 나에게 20대의 추리소설은 미국이었다. 이런 좁은 시야를 넓혀 준 작가는 프랑스의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와 스웨덴의 스티그 라르손이다. 그랑제의 소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 영화화 한 [늑대의 제국]이나, [크림슨 리버] 일 것이다. 혹시 이 영화를 본 사람이 있다면(그리고 실망을 했다면) 원작을 볼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그러나 나는 그랑제의 소설 중 [황새]를 가장 좋아한다.) 스티그 라르손은 브라이언 드 팔머 감독의 영화로 친숙한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밀레니엄 시리즈]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매력적인(어디에도 없는 독보적인 캐릭터가 탄생한 것을 볼 수 있을 듯) 여주인공의 복수극으로 끝까지 질주할 수 있게 만든다. 유럽의 스릴러는 보다 개인적이거나 역사적이다. 일본과 미국의 스릴러에 익숙해져 새로운 자극을 원한다면 프랑스나 북유럽의 스릴러를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2부에 해당할 것 같은 절반이 넘어가는 뒷부분은 시점이 주인공인 ‘소피’에게서 갑작스레 등장한 ‘프란츠’라는 남자로 바뀐다. 이 뜬금없는 남자의 이야기를 몇 장 읽어보면 도대체 소피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런 괴물 같은 남자에게 스토킹 당하며 희생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행복한 결혼생활과 만족스러운 직장 활동. 따뜻한 친구관 계속에서 일상을 보내는 소피는  프란츠에 의해 불행에 매몰된다. 프란츠는 소피의 메일을 조작하고, 다이어리를 훔쳐 스케줄을 흩트리며 장바구니를 바꿔 치거나 집 안의 물건을 제멋대로 숨겨 소피가 스스로를 통제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게끔 조작한다. 사소한 건망증과 실수와 같은 일로 함정을 파고, 약물로서 우울증을 유도하며, 지인의 신뢰를 잃게 만들면서 한 여자를 고립시키며 이후에는 남편의 차 사고를 유도하여 그를 불구로 만들고 자살하게 하여 소피를 철저히 홀로 남긴다. 자신에게 닥친 불행과, 약물로 유도된 우울증과 불안에 흔들리는 소피는 한 중산층의 베이비시터로 일을 하며 일상을 살아보고자 하지만, 이 역시 프란츠에 의해 파괴된다. (울면서 아이를 죽이는 페이지에서 소피를 향한 진정성까지 느낄 수 있달까) 프란츠는 오직 소피를 붕괴시키기 위해 어린 레오를 살해한다. 도망친 소피가 결혼을 통한 안전가옥을 찾으려 하자 기꺼이 자신을 남편감 후보로 내세우며 소피에게 새로운 신분을 만들어준다. 신경쇠약에 불안증을 안고 있는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을 연기하면서 프란츠가 얻으려는 결말은 무엇일까? 또한 소피는 자신의 모든 불행이 현재의 남편을 통해서 촉발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까? 연약해 보이나 끈질기게 도망치며 살아남은 소피는 결국 모든 진실을 알게 되면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두께에 비해 빠르게 읽히는 소설이므로 맥주 한 잔과 함께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아마 읽고 나면 프로이트의 책을 뒤적거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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