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행동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가?
인간은 과학적 해석이 가능한 존재일까? 한 개인은? 하나의 집단은? 어떤 판단을 내릴 때 사람들은 자신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시킬 수 있을까? 아니면 기존의 관습적 패턴을 따라가는 것일까?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인간들이 왜 과격하고, 파괴적인 선택을 할까?
[세상만사를 명쾌하게 해명하는 사회 물리학의 세계]라는 부재를 가지고 있는 이 책은 인간의 행동방식에 대한 새로운 측면을 보여준다. 우리는 지금까지 개인의 선택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그런 설득이나 변명이 원하는 결과를 얻었는지는 확언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이 책은 설명해준다. 책 내용대로라면, 인간은 자기 조직화 과정을 통해 사회를 구성하는데, 이러한 조직화 과정에서는 세부적인 성질(개인의 윤리. 가치 등)이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버드 대학의 경제학자인 토머스 셸링은 인종 분리가 원리적으로 인종주의와 무관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에서 하나의 실험을 시도했다. ‘모든 사람들이 이웃에 다른 인종이 살아도 상관하지 않는다고 가정하지만, 다른 인종에 관대한 사람들도 절대적인 소수가 되기는 싫어한다고 정한다. 흑인 친구들과 잘 지내는 백인들도 주위가 온통 흑인인 곳에서 홀로 백인으로 살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인종주의라고는 부르지는 않는다. ’로 가정했다. 실험에서 토머스는 모든 사람들이 극단적인 소수가 아닌 한 이사를 가지 않는다고 가정하였고, 예를 들어 30% 미만의 소수가 되어야 이사를 간다는 조건을 붙였다.
모든 사람들이 완전한 인종 통합에 만족하는 상황에서는, 처음에 흑백이 잘 섞여 있으면 그 상태가 지속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컴퓨터 모의실험 결과는 처음에는 무작위로 섞여있던 흑인과 백인이 서로 분리됨을 보여주었다. 극단적인 소수가 되기를 꺼리는 것은 비난할 수 없는 현상이지만, 이것 때문에 조화로운 사회가 사라져 버리는 결과가 발생되었다. 즉, 미래에 인종주의가 완전히 사라진다고 해도, 물리 법칙과 비슷한 그 무엇 때문에 인종들이 분리될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 실험은 1971년에 실시되었고, 2017년 현재 인종주의가 사회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는 오늘날에도 인종적 분리는 여전히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이는 자유로운 개인이 각자 자기 뜻대로 행동할 수 있지만, 개인이 결합하여 구성하는 조직에서는 (조직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자발적인 규칙성이 형성되고, 이 패턴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주의해야 할 점은 인종주의와 인종분리의 의미가 다르다는 것이다.) 패턴을 알게 되면 사회가 움직이는 흐름을 유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도 물리적 법칙에 대입되는 존재이다. 물질의 기본 구성이 원자이듯, 사회의 원자는 바로 인간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패턴이란 무엇일까? 나름대로 정리한 결과 ‘패턴’은 사회적 공유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적합성을 의미하며, 이는 적응과 모방으로 확장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적합성이 합리성과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사회적 원자인 ‘인간’은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적용될 수 있는 경험치를 확보해왔는데, 보편타당하게 ‘인정받게 되는’ 경험이 합리성으로 포장된다. 그러므로 합리성이란 집단을 움직이는 패턴에 적응하는 적합성이라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생존에 유리한 패턴이 형성되면, 주변의 사회적 원자는 습관적으로 서로를 모방한다. 이러한 피드백 작용은 지극히 정상적인 윤리관을 가진 개인들이 집단 주의자가 되거나, 배타적 민족주의자가 되는 것을 무리 없이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리고 집단화의 규모가 커지면 한 사람에게 많은 힘을 주도록 스스로 조직화되는데, 그것은 이렇게 할 때 그 집단의 더 강력하고 적응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도적인 개인의 힘은 조직된 집단에서 나오며, 그가 재인으로서 특별히 위대한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2차 대전의 독일을 보면, 히틀러의 개인의 자질보다 잘 조직된 나치의 힘이 더 강력하게 독일 국민들을 국가의 가치에 동화시켰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이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1차 대전 후 경제적 붕괴와 함께 정치의 무능력, 민족 감정의 악화라는 독일의 외적 상황이 공포, 강제, 세뇌 또는 자신의 개성을 잃고 다른 사람들과 인간 대 인간으로 관계 맺을 수 없는 맹목적인 편견을 부추김으로서 극단적 민족주의가 발생하도록 했다. 이 점은 집단적 광기라고 여겨지는 이데올로기가 논리적이고 비정 서적인 과정을 통해 탄생됨을 보여주었다. 상반된 예시이겠지만, 다른 나라의 재난에 대해 서로 협력하는 점에서도 우리는 윤리성이 아닌 패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자발적인 협력이 집단 단위로 이루어질 때는 협력적인 개체는 집단 내 개체 간 경쟁에서는 불리하지만 그가 소속된 집단의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후대에 살아남는다는 해석은 인간과 사회는 도덕적인 가치로 행동한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부여했다.
영화관을 빠져나올 때의 사람들의 움직임에서, 지하철 환승을 알려주는 표지판의 배치에서, 최근의 정치적 집회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뉴스 기사에서도 사회를 변화시키는 패턴은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패턴들은 우리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가, 아니면 부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가?